노재원 “‘타짜4’ 박태영 악역이라 생각 안 해, 이해하고 싶었다” [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0.04 09:35  수정 2026.10.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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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 첫 주연작

차기작은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노재원은 작품마다 얼굴을 달리하는 배우다. 낯설고 불안한 청춘부터 욕망과 결핍을 품은 인물까지, 전작의 잔상을 다음 작품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익숙한 얼굴인데도 등장할 때마다 새롭게 보이고, 크고 작은 역할을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존재감을 남겨왔다.


그런 노재원이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는 장태영(변요한 분)의 오랜 친구 박태영으로 또 한 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동경과 애정, 질투와 결핍이 뒤엉킨 인물의 감정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며 극의 한 축을 책임진다. 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온라인 카지노 사업으로 성공한 장태영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박태영을 글로벌 도박판에서 다시 만나 벌이는 승부를 그린 작품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도 누적 관객 120만 명을 넘어서며 순항 중이다.


노재원ⓒCJ ENM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노재원에게도 남다른 작품이다. 오랜 시간 이어진 ‘타짜’ 시리즈에 합류한 동시에 상업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그럼에도 노재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분이 참 꿈만 같아요.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상업영화 첫 주연인데, 제가 당연히 캐스팅된 게 아니라 정말 운 좋게 찾아온 일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좋게 봐주셨다면 너무 감사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어요. 저는 그냥 최선을 다했습니다.”


‘타짜’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보다 노재원을 먼저 움직인 건 대본이었다. 앞선 시리즈를 답습했다면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박태영(이하 박태)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온 이유를 찾는 과정도 작품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분이 ‘타짜’ 시리즈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부담감보다는 대본 자체가 기존 ‘타짜’와 너무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상업영화 첫 주연이라는 걸 떠나서 ‘박태라는 캐릭터가 나한테 들어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나만의 세계로 한번 표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영화 속 박태는 목적을 위해 선을 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노재원은 완성된 영화에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원작과 촬영 과정에서 쌓아 올린 인물의 시간까지 품고 박태에게 접근했다.


“저는 박태를 절대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작에서는 박태의 서사가 훨씬 깊고, 촬영한 분량에도 장태를 닮고 싶어 하거나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이 더 있었어요. 그런 장면들이 편집되면서 영화에서는 훨씬 악인처럼 보이게 됐지만, 그것도 영화를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판단하지 않아요. 그럴 만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죠. 사람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잘못된 선택에도 자기 나름의 이유나 변명이 있을 테고요. 그래서 박태를 연기할 때도 적어도 이 사람의 변명은 찾아주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따라가면 결국 장태영에게 닿는다. 박태에게 장태영은 오랜 친구인 동시에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지닌 사람이었다. 동경과 애정, 질투가 한 사람을 향해 뒤엉키는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노재원은 자신의 경험을 끌어왔다.


“장태영을 계속 따라 하려는 모습이 저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축복이면서 큰 불행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제일 친한 친구인데 모든 걸 닮고 싶고, 배울 게 정말 많은 친구예요. 저를 누구보다 응원해주는 제 분신 같은 친구이기도 하고요. 박태를 연기하면서 그 친구와 저의 관계를 가장 많이 녹여냈어요.”


그러나 닮고 싶은 마음만으로 박태의 선택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가 넘어야 할 선은 높아진다. 배우에게 필요한 건 그 행동을 옹호하는 일이 아니라 박태라면 스스로에게 어떤 논리를 부여했을지 찾아내는 일이었다.


“결국 박태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잖아요. 그 행동에 대한 타당성을 찾는 게 어려웠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패배자로 살아왔다면 이번만큼은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성취해보자’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는 것처럼 ‘내 인생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한 건 칭찬받아야 할 일 아니야?’라는 식으로 스스로 합리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노재원 ⓒCJ ENM

그중에서도 태희와 마주하는 순간은 박태의 감정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직접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태희를 죽이는 장면은 지금도 잘 못 보겠어요. 원래 태희에게 구애하는 장면이 꽤 많았거든요. 선물을 주기도 하고 고백도 더 길게 해요. 박태는 태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신을 키워준 누나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어요. 굉장히 폭력적인 장면이기도 했고요. 결국 ‘내가 장태를 배신했다는 것,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쪽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박태가 태희를 향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순간은 인물의 감정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재원은 그 선택이 갑작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박태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이유를 찾았다.


“그 장면에서 하나의 트리거가 됐던 건 ‘악마 같은 새끼’라는 말이었어요. 박태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잖아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악마 같은 새끼지?’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족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악마 같은 새끼’라는 말을 듣고 뺨까지 맞았을 때 그게 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박태의 박탈감은 장태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쌓여간다. 투자처를 정하기 위해 동전을 던지는 장면도 그중 하나다. 운에 선택을 맡길 수 있는 장태와 달리 박태에게는 그 방식부터 불리하게 느껴진다. 결국 장태의 선택이 맞아떨어지고 직원들마저 그의 운을 치켜세우면서 박태는 또 한 번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반복된 경험은 두 사람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그럼에도 저는 박태가 장태에게 굉장히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계속 무시받고, 자기 살길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점점 작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여태까지 실패자로 살아왔고 계속 불행했다면, 이제 내 삶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장태의 그늘 속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장태를 배신하는 선택까지 갔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습니다. 그런 감정이 과거부터 켜켜이 쌓이다가 초반 동전을 던지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봤어요.”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몸에 익히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었다. 노재원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같은 준비법을 반복하기보다 그 인물에게만 필요한 방법을 새로 찾는다. 박태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작품마다 준비하는 방식이 달라요. 정해진 루틴은 없어요.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그 캐릭터만을 위한 창의적인 연습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때는 노량진에 많이 갔고 컵밥을 많이 먹었어요. ‘오징어 게임2’ 때는 연습실을 하나 잡아놓고 클럽 음악을 틀어놓은 채 혼자 춤을 추는 게 루틴이었고요. 박태를 준비하면서는 제일 친한 친구와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그 친구가 큰 영감이 됐죠. 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변요한이라는 사람을 마주하니까 질투라는 감정이 확 생기더라고요.”


장태영을 연기한 변요한과는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당시에는 함께하는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작품이 끝난 뒤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변요한이 건넨 응원은 훗날 두 사람이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 다시 만난 뒤 더욱 특별한 기억이 됐다.


“변요한 선배와 다시 만난 건 감회가 굉장히 새로웠어요. ‘삼식이 삼촌’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셨어요. 어느 날 밤 갑자기 전화해서 ‘나는 네 연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네 연기를 존중하고 리스펙한다. 네가 빨리 주연을 했으면 좋겠고 네 연기가 궁금하다. 꼭 주연 해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하고 싶어요’라고 했죠. 그런데 정말 1~2년 뒤에 ‘타짜’에서 다시 만난 거예요. 그것도 가장 친한 두 캐릭터로요. 감회가 새로웠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어요.”


존경하던 선배와 이번에는 극을 함께 끌어가야 했다. 더구나 장태영과 박태는 서로의 감정을 받아내야 하는 관계였다. 반가움만큼 긴장도 컸다.


“제가 너무 좋아하고 뜨거운 배우를 이제 친구로서 마주해야 하잖아요. ‘나는 어떤 무장을 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죠. 결과적으로는 너무 좋았고 선배님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정작 자신이 주연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건 촬영에 들어가기 전과 모든 작업을 마친 뒤였다. 한 배우의 이름이 작품 제작과 투자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이번에 새롭게 체감했다.


“영화를 만들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잖아요. ‘과연 노재원이라는 이름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투자가 돼야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피부로 깨달았어요. 감독님이 어느 날 전화해서 ‘재원아, 우리 투자받게 됐어’라고 했을 때 정말 기쁘고 감사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그 감사함을 까맣게 잊고 제 연기에 고립돼버렸죠. 다 끝나고 돌아보니 결과와 상관없이 정말 감사한 일이고, 언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붙잡았던 박태도 촬영이 끝난 뒤에는 조금씩 멀어졌다. 배우로서 인물을 이해하려 했던 시간과 관객의 위치에서 완성된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도 거리가 생겼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는 오히려 ‘왜 이렇게 못나 보이지?’ 싶은 장면이 많았어요. 제가 바라봤던 박태와 달리 너무 안타깝게 보였어요. 지금은 저도 박태에서 많이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더라고요.”


변요한은 베트남 분량을, 노재원은 자신의 분량을 따로 소화하면서 서로 어떤 감정과 연기를 쌓아왔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게 떨어져 있던 두 배우가 다시 마주한 장면이 마지막 카드 게임이었다. 극 중에서도 박태가 장태영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속내를 처음으로 꺼내놓는 순간이다.


“마지막 게임을 위해 딱 만났는데 제가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원래 대본에는 ‘맹수 둘이 눈을 마주친다’는 지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하려니까 가짜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감독님도 처음에는 ‘왜 눈을 안 쳐다봐?’라고 하셨다가 ‘이게 좀 리얼한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장태가 ‘너 나한테 왜 그랬어?’라고 묻고 박태가 ‘운으로 먹고산 새끼는 이해 못 해’라며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잖아요. 변요한 선배 쪽을 먼저 촬영할 때는 너무 미안하고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제 쪽으로 카메라가 돌아오니까 선배가 의도적으로 연기를 다르게 하더라고요. 저도 영향을 받아서 눈물이 하나도 안 났어요. 선배가 ‘이 장면은 이렇게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그 선택이 맞았던 것 같아요. 저도 끝까지 박태의 입장에서 차갑게 장태를 마주한 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습니다.”


노재원은 ‘D.P.’시즌2,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살인자ㅇ난감’, ‘삼식이 삼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오징어 게임’ 시즌2,3, ‘메이드 인 코리아’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왔다. 이제 그가 기다리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의 인물이다.


“평범한 역할도 너무 하고 싶어요. 사랑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에게 미움이 아니라 위안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간절히 하고 싶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라는 1인극도 굉장히 따뜻한 캐릭터예요.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많이 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 아껴두고 있다가 제가 정말 헌신할 수 있을 때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외모도 가꾸고 관리도 받고 있어요. 이제야 관리의 중요성을 알았거든요. 여태까지 살은 빼본 적이 있어도 관리를 해본 적은 없었어요. 요즘은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제 자신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 작품을 기다리면서요.”


마지막으로 노재원은 앞으로의 연기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조금 더 즐겨보려 한다고 했다. 현재 준비 중인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역시 그런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다.


“예전에는 제 연기를 너무 박하게 봤던 것 같아요. 그게 제 단점이었던 것 같고요. 요즘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그냥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준비하는 연극은 ‘연극을 하고 싶다’는 이유보다 대본이 너무 좋아서 선택했어요. 읽자마자 엄청난 위안을 받았어요. 정말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지금의 제가 이 작품을 만났다는 게 참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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