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상상력 빈곤이 낳은 대참사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10.03 06:08  수정 2026.10.0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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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는 패륜적 발상, 영화적 상상력과 무관

"과도한 상상, 인간에 대한 예의 아냐"…진보 진영서도 우려

상상력, 철저한 사실 바탕으로 정제한 사유의 결과물이어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하이브미디어코프

1974년 8월15일. 당시 10대 초반이던 필자는 흑백 TV를 틀어 놓고 광복절 경축식을 보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 지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실내가 어수선해지면서 객석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달려 나가고 경호실 직원들이 바삐 대응했다. 조총련의 사주를 받고 현해탄을 건너온 재일교포 문세광이었다. 박 대통령은 연단 밑으로 몸을 숨겼지만 한복을 입고 앉아 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급히 실려 나갔다. 그 날의 생중계 영상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해 장기독재(북한의 전체주의 수령독재와 대비되는 권위주의 독재임)를 했다는 오점에도 불구하고 중화학·철강·자동차·전자 등 주요 산업 발전, 경부고속도로 건설, 국민의료보험 시행 등 숱한 업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압도적인 기여를 했다. 지금까지 다른 모든 대통령들의 공적을 합쳐도 박정희 한 사람을 쫓아갈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27년 전 육영수 여사와 결혼할 때 선물로 받은 시계를 1979년 서거할 때까지 차고 다녔다. 10·26 이후 국군서울지구병원의 담당 군의관은 박정희의 양복이 20년도 더 된 낡은 것이었고 혁대는 닳아서 실밥이 밖으로 나와 있었고 와이셔츠는 양팔 소매가 닳아서 너덜너덜했으며 넥타이도 10년은 훨씬 지나 탈색돼 있었다고 했다. 담당 군의관은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평범한 제품이었고 넥타이핀의 도금이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어 대통령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평소 “인권, 민주 모두 다 좋은 말이오. 그러나 참다운 인권과 민주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옵니다. 당장 배고파 죽어가는 국민 앞에서 말장난해서는 안 됩니다. 인권이나 민주는 경제가 해결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두고 보시오. 모든 결실은 나보다 오래 사는 세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야당'으로 불렸던 육영수 여사는 한술 더 뜬다. 오늘날 좌파 인사들조차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영부인"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눈물겨운 스토리가 많다. 역시 지금까지 모든 영부인들을 다 합쳐도 육영수 여사가 받았던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 두 사람이 갑자기 '암살자(들)'이란 이름의 해괴한 영화 때문에 국민들에게 다시 소환되었다. 마치 남편이 아내를 죽인 범인인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인데, 과연 그런가.


흔히 사람들은 '상상력(Imagination)'이라는 말에 대해 오해를 한다. 예전 어느 미국 학자가 "한국인은 성실하지만 상상력은 부족해"라고 지적하자 어느 국내 기업에선 직원들을 반나절 놀이동산 같은 시설에서 마음껏 놀게 하면서 기발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라고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상상력이란 제멋대로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치열한 업무 현장에서 떠오르는 개선점을 발견하여 적용하라는 의미인데 이걸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다.


영화에서 상상력이란 사실들 간의 비워 있는 공백을 메꿔 인간과 사건의 심연을 탐구하는 예술적 도구이지, 이미 확정된 사실을 임의로 왜곡하는 알리바이가 아니다. 상상력과 왜곡·망상은 분명히 다르다.


왜곡(Distortion)은 명백히 검증된 객관적 사실을 정치적 선전이나 상업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은폐하거나 반대로 뒤집어 사실처럼 믿게 만드는 기만행위다. 또 망상(Delusion)은 사실적 근거와 보편적 합리성에서 단절된 채 주관적인 환상이나 확증 편향을 객관적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상태다.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를 두고 '영화적 상상력'이라 부르는 것은 창작자의 게으름이거나 악의적인 면피에 가깝다.


창작의 자유는 어떤 주제든 상상하고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지만 역사와 실존을 다루는 예술은 거기에 반드시 윤리적인 긴장을 동반해야 한다. '암살자(들)' 제작진은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이며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의도가 아님을 직감한다. 좋은 '영화의 상상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과 반대되는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나 '기존 사실을 부정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사실 사이를 채우는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가상의 이야기라면 감독은 거의 무제한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UFO와 외계인이 나타났다"라고 해도 SF 영화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정치적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객은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사건이 실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사실과 허구를 섞으면 관객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아직 유족들이 살아 있는데 "대통령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고의로 어머니를 죽였다고 왜곡하다니"라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유례없는 패륜영화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영화적 상상력'은 그저 '상상력의 빈곤'일 따름이다. 연예기획자 김영민씨는 "영화적 상상력이란 핑계로 작정하고 음모론 부추기는 쓰레기 영화"라며 "감사를 모르는 패륜의 시대, 후손들이 남긴 기념비적 만행"이라고 적었다. 누구나 상상은 자유이지만 그 상상을 사실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순간 책임이 발생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상상력을 언급하기에는 확고한 팩트가 너무도 많다.


문세광이 1974년12월 20일 사형 직전에 했던 발언은 객관적 사실이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박 대통령께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육 여사와 죽은 여학생의 명복을 저승에 가서도 빌겠습니다. 조총련에 속아서 이러한 과오를 범한 나는 바보였으므로 사형을 당해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2002년5월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서 김정일을 만났을 때다. 콧대 높던 김정일이 문세광 사건을 두고 "하급자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일로, 상부에서는 알지 못한 일"이라면서 사실상 사과를 했다. 최근 공개된 CIA 보고서의 내용도 동일하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급기야 진보 진영에서도 영화가 제기하는 의혹이 과도한 상상이라면 선을 그어야 한다고 촉구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최승호 전 MBC 사장은 페이스북에 중학교 1학년 당시 아내의 영구차에 손을 올리고 망연한 표정을 짓던 박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이 영부인을 죽인 범인이라는 의심을 하다니,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흔히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영화적 상상력'으로 유명한 집단이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엄청난 상상력의 세계를 발휘하면서도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바로 '후손들에게 선조들은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라'는 것이며 성경이나 미쉬나·게마라 등에 모두 강조하고 있다. 상상력이란 그렇게 마음대로 벌이는 생각의 춤이 아니라 철저한 사실을 바탕으로 고도로 정제하는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진중권 평론가의 "뭔가 했네. 뻔데기 아이큐 수준의 허접한 음모론 시나리오 들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간판급 배우들을 줄줄이 섭외한 감독의 능력에 찬사를......그냥 배우들이 똥 밟은 사건으로 이해하렵니다”라는 글이 지금까지 나온 모든 평가 중에서 가장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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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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