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카카오엔터와 10여 개 프로젝트·'K컬처 펀드' 논의
K팝을 둘러싼 콘텐츠 기업들의 움직임이 음악과 공연을 넘어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토리텔링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팬덤을 확보한 K팝을 다른 콘텐츠와 결합해 새로운 지식재산권(IP)으로 키우려는 시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흥행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 가운데,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디즈니도 K팝 IP를 활용한 장기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6월 공개된 '케데헌'은 K팝의 음악과 퍼포먼스, 팬덤 문화를 애니메이션 서사에 녹여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글로벌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넘기며 '오징어 게임' 시즌1을 제치고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작품에 올랐다. 공개 1주년을 맞은 올해 6월에는 CGV가 전국 30개 극장에서 단독 재개봉하기도 했다.
음악의 파급력도 컸다. OST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통산 8주 1위에 올랐다. 여성 K팝 가수의 노래가 이 차트 정상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는 통산 18주 1위를 기록했고,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 등 수록곡 4곡이 동시에 핫 100 톱10에 들었다. OST 앨범은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2주간 정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 스트리밍은 150억 회를 넘어섰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피스마이너스원, '토이 스토리' 협업 컬렉션ⓒ넷플릭스·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흥행은 시상식 성과로 이어졌다. '케데헌'은 올해 1월 골든글로브에서 애니메이션 작품상과 주제가상을 받았다. 2월에는 '골든'이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를 수상하며 K팝 장르 최초의 그래미 수상곡이 됐다. 3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함께 받았다.
넷플릭스는 이 성과를 극장으로 넓힌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0일 '케데헌' 속편을 광범위하게 극장 개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트리밍에서 탄생한 흥행 IP를 극장까지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K팝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SM엔터테인먼트는 '캐치! 티니핑' 제작사 SAMG엔터테인먼트와 애니메이션 '슈퍼히어로 아이돌 프로젝트'(가제)를 공동 제작한다. K팝 세계관과 슈퍼히어로 서사를 결합한 작품으로, 2028년 글로벌 OTT 공개가 목표다. SM은 음악 기획·제작과 가창, 퍼포먼스를 맡는다. 양사는 애니메이션을 출발점으로 음악, 콘서트, 매니지먼트, 영상 라이선스까지 사업을 넓힐 계획이다. 처음부터 여러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IP를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디즈니도 K팝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는 최근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를 중심으로 소비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새로운 아이디어와 협업이 시작되는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중심축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카카오엔터의 음악·아티스트 IP와 제작·유통 역량에 디즈니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글로벌 네트워크를 접목해 중장기적으로 약 10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음악과 콘텐츠는 물론 공연, 커머스로도 사업을 넓힐 방침이다. 이를 뒷받침할 'K컬처 펀드'(가칭) 조성도 논의 중이지만, 펀드 규모와 투자 대상, 출범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협업 대상은 카카오엔터에 그치지 않는다. 디즈니는 SM엔터테인먼트와 마블의 스토리에 소속 아티스트들의 세계관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하이브·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과도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픽사 '토이 스토리'를 결합한 컬래버레이션도 선보였다. 디즈니 캐릭터 옆에 아티스트를 세우는 수준을 넘어, 아티스트의 음악과 세계관, 팬덤을 디즈니의 스토리와 연결하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배경에는 글로벌 사업망이 있다. 디즈니 소비재사업부는 전 세계 180여 개국 파트너사와 약 630억 달러 규모의 리테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디즈니코리아는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파트너사의 상품 기획부터 마케팅, 유통, 해외 진출까지 지원하는 '슈퍼 서브' 전략도 추진한다.
K팝과 다른 콘텐츠의 결합이 '케데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이전부터 아티스트 세계관을 웹툰과 웹소설, 게임, 캐릭터 등으로 넓혀왔다. '케데헌'이 남긴 성과는 기존 팬덤 밖의 수요를 확인했다는 데 있다. 작품에는 실존 K팝 그룹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자체가 대규모 시청자를 모았고, 극 중 가상 그룹의 노래는 빌보드 정상까지 올랐다. 특정 아티스트의 인지도에 기대지 않고도 K팝을 기반으로 한 새 캐릭터와 음악을 시장에 안착시킨 셈이다.
이는 K팝 IP 사업의 방향도 넓힌다. 그동안은 이미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웹툰·게임·상품으로 옮기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케데헌'은 반대로 콘텐츠에서 출발해 음악과 캐릭터에 팬덤이 붙는 경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기존 팬덤을 다른 사업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로 새 팬덤을 만들어 음악·상품·공연으로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즈니의 움직임도 이 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디즈니의 강점은 캐릭터 하나를 영화에서 끝내지 않고 소비재와 테마파크, 공연 등으로 오랜 기간 운용해온 프랜차이즈 경험이다. 여기에 글로벌 팬덤을 가진 K팝 IP가 결합하면 '누가 누구와 손잡느냐'보다 하나의 결합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사업에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카카오엔터와 10여 개 프로젝트를 묶고 별도 펀드까지 논의하는 것도 이런 장기 사업 구조의 일환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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