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기구 전달·내시경 유지 등 의료진 보조 역할 확대
다관절 로봇손에 촉각·힘 제어 기술 발전…정교한 작업 가능성
“아직 연구 단계…안전성 검증 거쳐 단계적 적용 필요”
‘내일의 닥터’는 의료산업의 혁신 흐름을 읽습니다. AI·로봇·데이터가 바꾸는 병원 생태계,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정책·시장 트렌드를 심층 분석합니다.
삼성서울병원이 9월 16일 오후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삼성서울병원
사람처럼 걷고 말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쟁이 ‘손끝’으로 옮겨가고 있다. 물건을 단순히 집고 옮기는 수준을 넘어 촉각을 느끼고 힘을 조절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활용 범위도 제조·물류에서 의료현장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환자와 의료기구를 직접 다뤄야 하는 의료 분야에서는 얼마나 정교하고 안전하게 손을 사용할 수 있느냐가 휴머노이드의 실제 활용을 가를 핵심 기술로 꼽힌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의료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단순 운반이나 안내가 아닌 의료진의 업무를 직접 보조하는 데 활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수술기구를 전달하거나 내시경을 잡는 것부터 향후 의료진의 감독 아래 보다 정교한 처치까지 사람이 손으로 하던 업무의 일부를 로봇과 나누는 것이 목표다.
실제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이 공개한 수술보조 휴머노이드 시연에서는 로봇 2대가 담낭절제술을 가정해 의료진과 함께 움직였다. 한 대는 집도의의 음성 명령에 따라 필요한 수술기구를 찾아 전달하고 사용이 끝난 기구를 회수했다. 다른 한 대는 내시경으로 수술 시야를 유지하면서 수술용 집게로 조직을 견인했다.
그동안 의료로봇은 다빈치와 같이 특정 수술에 최적화된 전용 장비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반면 휴머노이드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기존 의료환경에서 의료진과 함께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술실의 구조나 의료기기를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고 사람 대신 기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거론된다.
삼성서울병원이 9월 16일 오후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장에서 공개한 에이딘로보틱스의 에이딘 핸드 2세대 다관절 로봇핸드.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문제는 ‘손’이다. 수술실에는 가위와 집게 등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기구가 사용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도구도 계속 달라진다. 단순히 정해진 위치에서 물건을 집어 옮기는 것과 달리 기구를 정확하게 잡아 의료진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네고, 환자와 접촉한다면 조직에 따라 힘까지 달리해야 한다.
정규환 삼성서울병원 지능형의료로봇연구센터장은 “환자를 직접 접촉하거나 의료기구를 다루는 역할에서는 정교한 손 기술이 핵심적”이라며 “의료행위는 정확한 위치로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조직의 상태를 감지하고 힘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기구를 잡더라도 피부와 혈관을 다룰 때 필요한 힘은 다른 만큼 촉감에 반응해 안전하게 힘을 조절하는 능력까지 구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 업계의 기술 경쟁도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초기 휴머노이드 개발이 안정적으로 걷고 균형을 잡는 데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여러 손가락을 개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덱스터러스 핸드’와 촉각센서가 주요 개발 분야로 떠올랐다.
올해 CES에서도 국내 로봇기업들이 20개 안팎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DoF)를 갖춘 로봇손을 잇달아 공개했다. 원익로보틱스는 21자유도, 테솔로는 20자유도의 로봇손을 선보였다. 자유도는 관절 등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관절의 움직임을 세분화하면서 사람이 손가락을 각각 움직이듯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넘어 ‘촉각’을 구현하는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손끝이나 손바닥에 센서를 넣어 물체와 접촉할 때 발생하는 압력과 힘, 미끄러짐 등을 감지하고 이를 움직임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손끝의 감각을 바탕으로 물건을 쥐는 힘을 조절하듯 로봇도 접촉 정보를 활용해 보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손.ⓒ케이엔알시스템
이 같은 기술은 환자와 직접 접촉해야 하는 의료현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의료진은 기구를 움직이면서 손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과 촉감에 따라 힘과 움직임을 조절한다. 다만 로봇손이 반드시 사람과 같은 형태일 필요는 없다. 수술 방식에 따라 집게 형태의 그리퍼를 사용하거나 기존 수술도구를 로봇 팔에 연결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당장은 수술기구 전달·회수나 내시경 유지처럼 반복적인 보조업무가 현실적인 활용처로 꼽힌다. 향후 기술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면 의료진의 조작이나 감독 아래 봉합이나 상처 처치 등 보다 정교한 업무까지 역할이 넓어질 수 있다. 반복적인 작업을 로봇과 나눠 의료진이 환자 상태 판단이나 돌발 상황 대응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정 센터장은 “의료현장의 기준으로 보면 현재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단계이며 환자에게 일상적으로 적용하려면 검증이 더 필요하다”며 “정교한 동작을 반복해도 안전한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즉시 통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멸균과 감염 관리, 임상적 효과, 비용까지 확인하면서 위험도가 낮은 보조업무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검증하되 너무 보수적인 기준으로 새로운 기술의 임상 적용이 지연되지 않도록 규제에서도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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