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전 행위 적용·비참여 피해자 판결 구속 여부 쟁점
“기존 과징금·손해배상 중첩 가능성…기업 부담 커질 수 있어”
전문가들 “옵트인 원칙·경제적 영향 분석 등 보완책 필요”
자유기업원은 곽규택 국회의원과 함께 30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집단소송법 제정안의 쟁점과 대안'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자유기업원
소액·다수 피해자의 실질적인 권리 구제를 위해 논의 중인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두고 소급적용과 옵트아웃(Opt-out) 방식 등을 보다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은 피해자 구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법 시행 이전 행위에 새로운 책임을 적용하거나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까지 판결 효력에 포함하는 방식은 법적 안정성과 기업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존 행정제재와 손해배상 책임이 중첩될 가능성과 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30일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실과 자유기업원이 공동 주최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의 쟁점과 대안: 피해자 구제와 법적 안정성의 균형을 모색하다'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최근 논의되는 집단소송제 확대와 관련해 소급적용과 옵트아웃 방식, 기존 행정제재와의 중복 가능성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현재 국내 집단소송제는 증권 분야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적용 범위를 손해배상청구 전반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곽규택 의원은 법 시행 이전의 행위까지 새로운 집단소송제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할 경우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법 시행 이전의 행위에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헌법상의 대원칙인 소급입법 금지와 법적 안정성에 배치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집단소송이 활성화될 경우 기업들의 소송 대응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특히 자체 법무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옵트아웃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옵트아웃은 일정 범위의 피해자를 별도의 참여 의사 표시 없이 집단소송의 구성원으로 포함하되 원하지 않을 경우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최 원장은 "본인이 명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소송 결과의 효력을 받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충돌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직접 참여 의사를 밝히는 옵트인(Opt-in) 방식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과징금에 손해배상까지…“중복 책임 따져봐야”
좌장을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예로 들며 행정제재와 집단소송에 따른 손해배상이 중첩될 경우 기업이 부담할 총 책임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을 이유로 SK텔레콤에 약 1348억원, 쿠팡과 계열사에는 총 6246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최 교수는 여기에 대규모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이 추가될 경우 배상액 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며 제도 설계 과정에서 중복 제재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해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피해자까지 일률적인 배상 대상에 포함할 경우 기업이 부담하는 금액이 실제 발생한 손해를 크게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옵트아웃 방식에 대해서도 "원고가 되기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사람을 중심으로 재판에 참여하도록 하는 옵트인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미국식 제도 그대로 도입해선 안 돼”
발제를 맡은 법학 전문가들은 해외 제도를 국내에 적용할 경우 각국의 사법 체계와 통제 장치 차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미국 제도의 본질은 옵트아웃 하나가 아니라 반세기 이상 판례와 입법을 통해 구축된 다양한 통제장치의 결합"이라며 "이 같은 장치 없이 옵트아웃 형식만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급적용과 관련해서도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행위까지 새로운 집단소송 절차를 적용하는 것은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주호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도 피해자의 선택권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소액·다수 피해자의 권리구제 편의성과 함께 소송 당사자로 참여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도 고려해야 한다"며 "옵트인 방식을 원칙으로 하면서 전자적 간편 등록 등 참여 절차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시행 전 행위에 새로운 집단소송절차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피해자의 명시적인 참가를 기본으로 하되, 소액의 동질적 피해 등 일부 사건에 한해 법원이 옵트아웃 방식을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토론에서는 집단소송제가 기업 경영과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의견도 이어졌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대규모 집단소송의 경우 자체 법무 인력과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이 더 큰 부담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대기업은 전문 법무조직이나 충당금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규모 소송이 발생하면 자금조달과 신용, 납품 관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AI 산업에 미칠 영향도 언급했다. 개인정보 활용에 따른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커질 경우 기업들이 데이터 활용 자체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 도입에 앞서 행정제재와 배액배상, 집단소송, 자료제출 의무 등이 동시에 적용될 경우 예상되는 기업의 총 책임 규모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 교수는 "피해자의 실질적 회복을 높이면서도 과도한 억지 효과나 소송 대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소액·다수 피해자의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소급적용 여부와 옵트인·옵트아웃 방식, 기존 행정제재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법리 검토와 경제적 영향 분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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