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금융만이 할 수 있는
발로 뛰는 관계형 금융
점포 소형화·저비용화로 풀어야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지방은행의 위기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줄을 지키며 버텨왔지만, 돌아온 것은 부실이라는 낙인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각자도생뿐이다. 수도권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지방은행의 현실은 단순한 개별 금융사의 위기를 넘어 '지역 경제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방은행이 처한 구조적 딜레마를 짚어보고, 공존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방 경기 침체와 인구 소멸 여파로 수익성만 따지면 점포 폐쇄가 불가피하지만, 지방은행은 쉽게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 폐쇄를 이어가면서도,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라는 공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고령층을 지탱해 온 '관계형 금융'이 지방은행의 수익성 딜레마 속에서 새로운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방은행은 지난 수년간 점포 축소를 통해 체질 개선을 시도해 왔다.
지난 2020년 48.0%에 달했던 적자 점포 비율은 최근 5년간 전체 911개 점포 중 111개를 정리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끝에 17.6%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여전히 남은 점포들의 구조적 적자를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의 점포는 아무리 규모를 축소하고 인력을 최소화해도 임대료와 전산망 유지 등 고정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지역 고령층과 골목 상권 소상공인을 고려하면 무작정 대면 창구를 폐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방은행이 오프라인 거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핵심 배경에는 관계형 금융이 있다.
관계형 금융은 재무제표나 담보 같은 단순 정량적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아온 신뢰와 대표자의 경영 의지, 업계 평판 등 정성적 비재무 정보를 종합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 다수는 기술력과 사업 전망이 양호함에도 담보 부족이나 낮은 신용등급 탓에 제1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빈틈을 메우는 곳이 지방은행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 내 기업 다수는 오랜 거래로 다져진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영업을 이어간다"며 "현장에서 직접 사업성을 파악하면 수치화된 서류보다 훨씬 정확한 대출 판단 기준이 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금융감독원의 관계형 금융 평가에서 지방은행권 1·2위를 나란히 기록한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광주은행은 단순 대출 규모뿐 아니라 ▲지역 기업과의 업무협약 체결 건수 ▲맞춤형 경영 컨설팅 제공 실적 등 정성적 지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관계형 금융이 지역 경제의 안전판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 독일 중소기업은 지역 기반 금융기관과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유지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형 일반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할 때 독일의 지역 기반 금융기관들이 오히려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며 독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도 '주거래은행 제도'를 통해 지역 중소기업 특성에 맞춘 대출 상품을 공동 개발하고 장기 파트너십을 다져왔다.
지방금융 관계자는 "장기 거래처와의 관계와 지역 경제 파급효과 때문에 지방은행은 임의로 대출을 축소하거나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있다"면서도 "이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아주는 강력한 사회적 완충 장치"라고 설명했다.
수도권 일극 집중 심화로 지방의 청장년 유출과 세수 기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최근 전남광주통합 특별시 출현 등 정책 차원의 위기 대응책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지역 경제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지방은행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지적이다.
대면 채널이 적은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 신용평가 모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정성적 현장 정보를 활용하는 관계형 금융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즉 대면 접점에 기반한 관계형 금융은 지방은행만이 발휘할 수 있는 독보적인 경쟁력이자 차별화된 돌파구인 셈이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한 기업이 오랫동안 주거래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지방은행의 노하우를 환경 변화에 맞게 정밀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점포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철수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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