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삶은 좋아졌는가? [정상환의 시대읽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10.01 07:00  수정 2026.10.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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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당부 전에 결과부터 보여야"

개혁은 목적 아닌 수단일 뿐

10월 2일 검찰청 폐지…삶은 나아지나

"목표엔 숫자와 기한 있어야"

공소청·중수청 설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검찰 개혁 입법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3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검찰청은 오는 10월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된다. ⓒ뉴시스

"생살을 찢고 가죽을 벗겨내도 환자가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수술이 아니라 의료사고다."


개혁(改革)이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는 일이다.


애초부터 아프고 피가 난다.


그래서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은 불안하다.


다른 방법으로 고칠 수 있다면 굳이 칼부터 들이댈 필요가 없다.


고통 때문이 아니다.


"수술이 끝나면 나는 살아남는가. 아니, 전보다 더 건강해지는가."


그것이 의문이기 때문이다.


가죽을 벗겼다고 새 피부가 저절로 돋아나는 것은 아니다.


수술실을 나왔다고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니다. 수술 후의 다운타임도 짧아야 한다.


수술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과감하게 메스를 휘둘렀느냐가 아니라, 환자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느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혁을 이야기한다. 가죽을 벗겨야 할 것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개혁하기 위해 개혁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하기 위해 개혁하는 것이 아닌가.


살자고 하는 수술이지 죽자고 하는 수술이 있는가.


개혁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국가의 발전과 국민 삶의 회복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정치의 세계에서는 종종 수단과 목적이 손쉽게 뒤바뀐다.


정치인에게 '개혁'은 참 매력적인 알리바이다.


바꾼다고 하면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고, 기득권을 손본다고 하면 정의로운 것처럼 들린다.


생각이 깊으면 복잡하고 우유부단해 보인다. 반면 개혁은 과감하고 명료해 보인다.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그 결과에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다.


실패해도 반개혁 세력의 저항 때문이라고 하면 된다.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적 수사로 소비된다.


최근 미국·멕시코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명 대통령도 다시 개혁을 강조했다.


개혁의 동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며 댓글과 메시지, SNS와 '좋아요' 같은 참여를 당부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좋아요'를 당부하기 전에, 국민이 먼저 '좋아요'를 누를 만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


문득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따르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從)"


말하자면 믿을 만한 사람이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하면 국민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말은 신뢰할 수 있는가.


그 개혁이 자신의 정파적, 사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는가.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품어내는 설계를 갖추었는가.


국민이 그 개혁의 필요성을 납득하고 있는가.


이것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동참을 당부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다.


국민은 지도자의 그럴듯한 언변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믿을 만한 삶과 행동을 보여주었을 때 '좋아요'를 누르지 말래도 누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성과를 제시하지 못하는 개혁은 독단일 뿐이다.


이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가죽을 벗겨낸 사법체계가 오는 10월 2일부터 시행된다.


기존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면서 수사와 기소가 제도적으로 분리된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분리하고 상호 견제하는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럼 그 개혁으로 우리는 더욱 정교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


사건 처리 기간은 줄어들 것인가.


수사의 전문성과 공정성은 높아질 것인가.


경찰과 중수청, 공소청 사이에 책임 떠넘기기나 사건 핑퐁은 생기지 않을 것인가.


수사 지연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일은 없는가.


국민의 인권과 안전은 실제로 더 나아졌는가.


아직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 우려를 결과로 해소할 수 있느냐이다.


부동산 정책과 국토균형발전도 다르지 않다.


세제와 규제를 몇 번 고쳤는가, 공공기관을 몇 개 옮겼는가가 개혁의 성과일 수는 없다.


주거비 부담이 줄었는가.


지방에 진짜 일자리가 늘었는가.


사람과 기업이 지방으로 움직일 만한 이유가 생겼는가.


그 결과가 개혁으로 이루려는 목적이어야 한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국정의 최고 목표는 국민의 더 나은 삶과 국가의 더 밝은 미래이며, 개혁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삶'과 '더 밝은 미래'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개선할 것인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개혁은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측정할 수 있어야 하며, 달성 시점도 분명해야 한다.


목표에는 숫자가 있어야 하고, 숫자에는 기한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정부가 어디까지 왔는지, 약속한 곳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개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제도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국민의 삶이 좋아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이제 이 대통령은 '새 대통령'이 아니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할 대통령이다.


임기의 4분의 1이 지났다.


이제 이 대통령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간다.


개혁은 과거를 바꾸는 일이고, 발전은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내 삶은 무엇이 좋아졌는가?"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요구했다면, 그 뒤에는 더 건강한 삶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개혁은 그저 흉측한 수술 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

글/ 정상환 자유시장연구소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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