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까지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
린아·이지수·카이·서경수·고은성·노윤 등 새 얼굴 대거 합류
서사 정체성 지키고, 무대는 새롭게 변화
견고하고 장엄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전. 그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이면에는 엄격한 규율을 피해 끊임없이 완전한 자유를 갈망했던 여인이 있다.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무대와 의상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올 뉴’(All New) 프로덕션으로 돌아온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황후로 기록된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실존 역사에 ‘죽음’(Der Tod)이라는 판타지적 캐릭터를 결합한 작품이다. 완벽해 보이는 왕관의 무게에 짓눌린 한 개인의 고뇌를 억압적인 현실과 매혹적인 죽음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로 그려낸다.
극은 엘리자벳을 암살한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의 도발적인 변론으로 막을 올린다. 제네바 레만호에서 황후를 찔러 죽인 그는, 엘리자벳 스스로 죽음을 원했으며 죽음을 사랑했다고 주장한다. 자유분방했던 소녀 씨씨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사랑에 빠져 황후의 자리에 오르지만, 시어머니의 통제와 제국의 낡은 관습 속에서 서서히 시들어간다. 그 곁을 그림자처럼 맴도는 죽음은 엘리자벳의 짙은 고독이자 해방을 향한 갈증 그 자체다.
ⓒEMK뮤지컬컴퍼니
이번 시즌의 가장 큰 변화는 무대다. 엘리자벳을 상징하는 ‘부채’를 형상화한 거대한 세트가 무대 전체를 감싸고, 프란츠 요제프의 집무실과 결혼식장에는 고딕 양식의 육중한 돌기둥들이 선다. 화려하게 펼쳐진 부채와 차가운 돌기둥은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안에 갇혀 점점 자유를 잃어가는 엘리자벳의 처지를 비춘다.
무대 전면을 채우는 대형 영상은 씨씨의 자유로운 유년 시절에서 황실 정원,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까지 장면마다 공간을 넓힌다. 프롤로그의 대형 초상화는 화려한 머리장식을 본뜬 액자와 드레스 같은 오브제로 바뀌었다. 황후를 직접 그리는 대신, 흔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 한층 상징적이다.
ⓒEMK뮤지컬컴퍼니
여기에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가 탄생시킨 음악은 여전히 서사를 묵직하게 밀고 나간다. 자유를 억압당한 엘리자벳이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결정하겠다는 극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나는 나만의 것’, 결혼식 무도회에서 죽음이 엘리자벳의 마지막 춤은 결국 자신의 것이라고 선언하는 ‘마지막 춤’, 죽음과 황태자 루돌프가 부르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등은 고전적인 클래식 선율에 현대적인 팝, 록 요소가 섞여 객석을 압도한다.
새 얼굴들은 극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이번 시즌 엘리자벳 역은 이지혜가 이어서 맡고 린아와 이지수가 새로 합류했으며, 죽음 역은 카이·서경수·고은성이 모두 처음 맡는다. 루케니 역에는 박은태와 강홍석에 더해 노윤이 새롭게 합류했다.
ⓒEMK뮤지컬컴퍼니
특히 린아는 깊고 단단한 음색으로 거대한 운명에 맞서는 황후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천진난만한 소녀에서 처절한 절망을 겪는 황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노년의 짙은 허무함까지 인물의 변화가 린아의 목소리를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1막 후반부, 압도적인 성량을 쏟아내는 순간은 극의 카타르시스를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엘리자벳의 곁을 맴도는 죽음 역으로 새롭게 합류한 서경수 역시 매혹적이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고통이 깊어질수록 서경수의 죽음이 발산하는 매력이 짙어지는 역설은 이 극의 묘미다.
작품은 오스트리아 황후의 일대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국의 엄격한 규율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집중한다. 억압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지키려 한 인물은, 모든 걸 잃은 뒤에야 비로소 완전한 해방을 마주한다. 새로 지은 부채 모양의 무대는 결국 그 역설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공연은 11월 15일까지 블루스퀘어 우리은행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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