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즈’ 전시와 ‘그날 지은 밥’ 사이 [기자수첩-문화]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9.28 08:01  수정 2026.09.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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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진·장원영 전시에서 돌아본 팬덤 사업의 책임

소상공인 판로까지 넓어진 팬심 활용, 소비 이후의 만족도 살펴야

조정은의 ‘그날 지은 밥’처럼 매번 소비자의 기대에 답해야

팬이 찾아올 이유가 분명할수록 기획은 더 치밀해야 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콘텐츠와 상품을 선택할 강력한 동기다. 그 애정에 어떤 깊이 있는 경험으로 답할지는 오롯이 콘텐츠를 만드는 쪽이 증명해야 할 숙제다.


이달 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성동구 더 서울라이티움에서 ‘안녕(An-Young) : 안유진×장원영 미디어아트 전시’가 열렸다. 아이브(IVE) 인기 멤버인 두 사람의 하루 차이 생일을 기념해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고 크리에이티브 멋이 기획·제작한 전시다. 수화기를 들면 안유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화면 앞에서 손을 움직이면 장원영이 ‘아궁빵’ 포즈로 반응했다. 미공개 사진과 디지털 참여형 장치들은 좋아하는 스타를 가까이 느끼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하나의 타이틀로 내세운 전시의 서사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즈원(IZ*ONE)에 이어 아이브까지 함께 활동해 온 이들을 팬들은 ‘안녕즈’라는 독보적인 대명사로 불러왔다. 그러나 각자의 화려한 비주얼을 나란히 보여주는 공간 구성에 비해 오랜 시간 쌓아온 두 사람의 관계성과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은 부족했다. 상징적인 조합명을 내걸었기에 팬들이 기대한 부분은 예쁜 화보집의 입체화가 아닌 그 이상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장원영 LED 미디어 아트.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팬은 사진 한 장을 보더라도 그 뒤에 숨은 무대와 비하인드, 함께 웃었던 수많은 시간들을 복기하는 존재다. 팬이 이미 간직한 기억에 당사자들의 진솔한 회고가 더해질 때 전시는 아티스트를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두 사람이 같은 활동을 어떻게 서로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는지 직접 들려줬다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활동 기록과 미공개 제작 과정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소속사라면 얼마든지 다채로운 서사를 구축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무엇을 내놓아도 소비할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 속에 좋아하는 얼굴을 감상하는 1차원적 즐거움 너머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 건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케이팝 팬덤의 입증된 강력한 구매력은 이제 엔터테인먼트의 울타리를 넘어 유통 및 공공 사업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추진한 ‘옐로우 플리마켓’이 대표적이다. 노란우산이 소상공인의 상품을 먼저 구매하고 엔플라잉(N.Flying), 에이핑크(Apink), 크래비티(CRAVITY) 등의 아이돌이 일일 영업사원으로 나서는 방식으로 아티스트를 향한 팬덤의 두터운 팬심을 소상공인의 실질적인 판로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계기로 생소했던 상품을 접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소비로 이어지려면 아티스트가 이끈 관심이 상품 자체의 품질과 만족도로 완성되어야 한다. 팬심은 선뜻 지갑을 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 정작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제품의 가치까지 대신 보장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팬들의 지갑을 열게 할 명분을 찾는 것 이상으로 소비가 이루어진 뒤 어떤 만족감을 안겨줄 것인지 기획 단계부터 세밀하게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전시장에서 느꼈던 한계 역시 이 소비 이후의 경험에 대한 무책임과 궤를 같이한다.


조정은 ⓒ오디컴퍼니

“어제 맛있게 먹었던 밥이라고 오늘 먹어도 똑같이 맛있는 건 아니잖아요. 밥은 그날 지어서 먹어야 제일 맛있으니까요”


팬들이 치른 비용과 기대에 기획이 어떤 무게로 답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에 최근 만난 한 아티스트의 철학은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관통했다. 뮤지컬 ‘드라큘라’의 미나 역을 맡은 배우 조정은은 관객을 맞는 배우의 준비를 ‘밥’에 비유했다. 2014년 초연부터 수년에 걸쳐 같은 역할을 반복했음에도 과거의 성공이나 익숙함에 기대지 않고 매 회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프로의식이었다.


그는 관객이 티켓을 구하고 공연장까지 찾아오는 수고스러움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티켓을 구하고 공연장까지 오시는 일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적어도 오셔서 ‘그냥 그렇네’ 하고 돌아가시게 만들 수는 없다. 구경만 하고 가시지 않도록 프로덕션 모두가 한 회의 공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말은 겸손이 아니었다. 관객이 지불한 티켓값과 소중한 시간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 순간 최고의 만족을 전달해야 한다는 창작자로서의 서늘한 자기객관화이자 책임감이었다.


그날 지은 밥이 맛있으려면 쌀을 씻고 물을 맞추는 준비와 정성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이는 무대 위 배우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이름을 걸고 전시와 콘서트, 각종 상품을 내놓는 모든 기획사가 가져야 할 태도다. 어제의 성공과 아티스트의 높은 인지도라는 재료에 안주해 대충 차려낸 기획으로는 오늘의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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