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정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인터뷰
오랜 보호자 경험이 만든 ‘환자 중심’ 진료 철학
“의료진에 익숙한 질환도 환자에겐 큰 두려움”
“생존 넘어 치료 후 삶까지 살피는 의료체계 필요”
환자를 향한 사'명'감으로 의료 현장을 지켜온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전'달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환자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분을 제보해주시면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김소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환자를 보면 자연스럽게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해야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그만큼 치료 과정도 잘 따라올 수 있습니다.”
김소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의 진료실에서는 종종 종이와 펜이 등장한다. 환자가 설명을 어려워하면 직접 위와 장을 그리고, 어디를 절제하고 어떻게 연결하는지 하나씩 짚어준다. 그림만으로 부족하면 해부학적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기도 한다. 의료진에게는 익숙한 질환과 수술도 환자에게는 처음 마주하는 두려움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진료의 기준이 된 한마디
지난 14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김 교수와 만나 그의 진료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오랜 시간 가족의 치료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이 녹아 있다. 의대 3학년 때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과 항암·방사선치료, 여러 차례 재수술을 받는 과정을 보호자로서 함께했다. 지난해에는 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으면서 주치의로 직접 치료를 맡게 됐다.
오랜 보호자 경험은 의사가 된 뒤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가장 가까운 보호자의 입장에서 치료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나 가족을 떠올리게 됐다”며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제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보호자였을 때 가장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의료진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생소한 의학용어가 쏟아지면 설명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진료실에서는 이해한 것 같다가도 돌아서면 내용을 잊곤 했다. 이런 경험을 했던 만큼 김 교수는 환자에게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도 다시 설명하고, 말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워하면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수술과 치료 과정을 하나씩 짚어준다.
김 교수는 “환자분들이 같은 내용을 다시 물어보거나 진료 내용을 기억하려 애쓰는 마음을 이해한다”며 “저 역시 보호자일 때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수술 이후의 회복 과정에서도 이어진다. 위장관 수술은 위나 장의 일부를 절제하면서 몸의 구조가 달라지는 만큼 식사량이 줄거나 체중과 근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달라진 몸에 적응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는 “위장관 수술은 수술을 잘 마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며 “수술 이후 식사와 영양 상태는 물론 근력과 빈혈 등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환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 치료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령 환자는 회복 과정에서 체력과 근육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수술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이후 체력과 근육이 크게 떨어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병원에서는 수술이 잘 끝났더라도 환자에게는 퇴원 후 달라진 몸과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정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수술 이후가 더 막막한 환자들…“관리 공백 메워야”
김소정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성모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문제는 환자가 병원을 나선 뒤다. 입원 중에는 의료진과 전담간호사 등을 통해 교육과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퇴원 후에는 식사와 영양, 운동 등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담할 통로가 충분하지 않다.
수술 직후의 회복을 넘어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환자도 있다. 식도암이나 두경부암 등의 치료 후 삼키는 기능에 문제가 남으면 오랜 기간 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른 신체기능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식사가 어려워 특수 영양에 의존해야 하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수술은 잘 끝났는데 오히려 퇴원을 두려워하는 환자분들이 있다. 집에 가서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 물어봐야 하느냐고 걱정한다”며 “치료가 끝나고 생존했다고 해서 환자의 삶이 모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퇴원 후에도 영양과 체력, 재활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후유증이 남은 환자를 어떻게 지원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를 살피는 데 필요한 시간도 충분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과 외래에서는 검사 결과와 치료 계획을 설명하는 것뿐 아니라 수술 후 실밥 제거와 소독, 상처 처치까지 한 번의 진료에서 이뤄진다. 처치에만 5~1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해 충분한 설명과 상담까지 이어가기 쉽지 않다.
김 교수는 “환자분들은 진료실에 들어오면 묻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며 “저도 최대한 이야기를 듣고 설명하려다 보니 외래가 한 시간 이상 밀릴 때가 있다. 의료진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쓰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결국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이를 뒷받침할 의료환경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충분한 설명과 처치, 수술 이후의 관리까지 이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의료진이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젊은 의료진의 유입이 줄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김 교수가 전문의가 된 이후 7년 동안 새롭게 들어온 전문의는 없었다. 기존 의료진이 현장을 지키는 사이 이를 이어갈 신규 인력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으면서 향후 진료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 교수는 “단순히 전체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특정 분야의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기존 의료진은 나이가 들고 있는데 새로 들어오는 젊은 의료진이 없다면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치료를 담당하는 분야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의 가치와 보상체계를 현실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환자가 치료 이후에도 필요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인력, 공간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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