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휩쓴 ‘오디세이’도 2위…‘치이카와’ 천만 뒤에 가려진 日 극장가의 고민 [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18 08:28  수정 2026.09.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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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내수 경쟁력 이면에 커지는 글로벌 영화시장과의 온도차

외화 개봉작 늘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24.4%에 그쳐

일본 극장가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관객은 돌아왔고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극장으로 돌아온 관객들이 선택하는 영화는 세계 영화시장의 흐름과 사뭇 다르다. 자국 콘텐츠가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는 동안 전 세계를 휩쓴 할리우드 대작은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하 ‘치이카와’)과 ‘오디세이’다.


지난 7월 24일 일본에서 개봉한 ‘치이카와’는 52일 만에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흥행수입도 146억엔을 넘어섰다. 개봉 두 달을 바라보는 시점에도 흥행세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주말 동안 27만 1000명을 동원하며 관객 수 기준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누적 관객은 1009만명까지 늘었다.


'오디세이'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일본 포스터ⓒ유니버설 픽쳐스 ·도호

같은 기간 일본 극장가에 등판한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다. 세계 시장에서 대규모 흥행을 기록한 ‘오디세이’는 일본에서 개봉 첫 주말 24만 1000명을 동원해 관객 수 기준 2위로 출발했다. 흥행수입은 4 억 5200만엔으로 ‘치이카와’의 4억 2700만엔을 앞섰지만, 관객 수에서는 개봉 8주 차인 ‘치이카와’를 넘어서지 못했다. 9월 4일부터 진행한 IMAX 선행상영까지 포함하면 누적 관객은 32만 9000명, 흥행수입은 6억 5000만엔이다.


‘오디세이’가 일본에서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별관을 중심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며 첫 주말 흥행수입에서는 ‘치이카와’를 앞섰고 이제 막 개봉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시장에서 화제를 모은 신작이 일본에서는 개봉 8주 차 자국 캐릭터 영화보다 적은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최근 일본 극장시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도 세계 시장과 일본 사이의 온도차가 나타났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도 개봉 첫날 5억 6543만엔을 벌어들이며 올해 개봉 외화 가운데 가장 좋은 출발을 보였다. 개봉 27일째인 지난달 26일에는 누적 306만 5870명, 흥행수입 50억엔을 돌파하며 톰 홀랜드가 주연한 ‘스파이더맨’ 시리즈 가운데 일본 최고 흥행 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같은 시점 전 세계 흥행수입은 22억 2946만 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일본에서의 열기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일본은 미국과 같은 7월 31일 영화를 개봉했고 일본판 주제가를 별도로 선정하는 등 현지 마케팅도 진행했다. 개봉 지연이나 현지 프로모션 부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온도차다.


일본 극장가의 이 같은 풍경은 몇몇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영화제작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극장 전체 흥행수입은 2744억 5200만엔으로 전년 대비 32.6% 증가했다. 관객 역시 1억8875만 6000명으로 30.7%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흥행수입 2611억 8000만엔도 넘어섰다. 관객이 극장을 떠나 외화까지 함께 부진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시장의 성장을 이끈 것은 자국영화였다. 지난해 일본영화 흥행수입은 2075억 6900만엔으로 전체의 75.6%를 차지했다. 외화는 668억 8300만엔으로 24.4%에 그쳤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일본영화 54.4%, 외화 45.6%로 비교적 팽팽했다. 6년 사이 일본영화 점유율은 21.2%포인트 상승한 반면 외화는 그만큼 줄었다.


외화 공급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외화는 611편으로 2024년 505편보다 106편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영화는 685편에서 694편으로 9편 증가했다. 더 많은 외화가 극장에 걸렸지만 외화의 시장 점유율은 24.7%에서 24.4%로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반대편에서는 자국 콘텐츠가 잇따라 메가 히트했다. 2024년에는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 연간 흥행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391억엔을 넘기며 정상을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이상일 감독의 ‘국보’는 2003년 ‘춤추는 대수사선 THE MOVIE 2’가 세운 기록을 넘어 일본 실사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올해에는 ‘치이카와’가 다시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할리우드 대작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콘텐츠만으로 대규모 관객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일본 영화시장이 가진 분명한 경쟁력이다. 하지만 그 힘이 강해질수록 일본 안에서는 또 다른 고민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적인 흥행작과 일본 관객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일본의 존재감 역시 예전과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최근 ‘오디세이’의 프로모션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됐다. 놀란 감독과 주연 배우 맷 데이먼 등은 지난 8월 한국을 찾아 작품을 직접 알렸다. 일본 매체들도 일본 개봉을 앞두고 이들의 인터뷰를 보도했지만 취재가 이뤄진 곳은 도쿄가 아닌 서울이었다. 일본 영화 전문매체 영화닷컴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데이먼이 한국 서울에서 일본 언론의 취재에 응했다고 전했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의 주요 프로모션 시장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외화가 일본에서 개봉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글로벌 스튜디오가 일본 시장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없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만 해도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했고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을 펼쳤다.


그럼에도 외화 점유율이 20%대로 내려앉은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글로벌 스튜디오 입장에서 일본에 투입하는 마케팅과 프로모션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해외 대작의 일본 내 영향력이 줄고, 이에 따라 프로모션 규모가 축소되면서 다시 일본 관객과 외화의 거리가 벌어지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그렇다고 자국영화의 강세를 일본 영화산업의 약점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지난해 일본 극장시장이 역대 최고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데에는 자국 콘텐츠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귀멸의 칼날’처럼 일본에서 출발해 해외에서도 대규모 흥행을 거두는 IP도 존재한다. 일본영화와 세계 시장의 관계를 단순히 내수 의존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치이카와’와 ‘오디세이’가 만들어낸 엇갈린 풍경은 일본 영화계가 오래 마주해온 고민을 다시 선명하게 드러냈다. 일본 극장가의 고민은 관객이 돌아오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자국 콘텐츠만으로 극장시장을 움직일 만큼 탄탄한 내수 경쟁력을 갖췄지만, 세계적인 흥행작이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면서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일본의 위치도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강한 내수가 일본 영화산업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세계 영화시장과의 거리는 점차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치이카와’의 천만 흥행과 ‘오디세이’의 2위 출발은 오래된 질문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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