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의 ‘실낙원’, 낙원을 벗어난 인간처럼… AI 시대 진짜와 마주한 모성의 심연 [현장]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18 13:12  수정 2026.09.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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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개봉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AI로 죽은 아들을 기억해온 엄마 앞에 진짜 아들이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균열을 통해 기억과 현실, 모성의 심연을 파고든다.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실낙원’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연상호 감독과 배우 김현주, 배현성이 참석했다.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심리 스릴러다. 김현주는 아들을 잃은 뒤 AI 프로그램 속 선우를 만나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류소영을, 배현성은 9년 만에 살아 돌아온 아들 류선우를 연기했다.


배현성 ·연상호 감독· 김현주ⓒ방규현 기

지난해 ‘얼굴’을 13회차 만에 촬영했던 연상호 감독은 ‘실낙원’ 역시 14회차로 완성했다. ‘얼굴’에서 직접 투자하며 경험한 자유로운 제작 방식이 이번 작품까지 이어졌다.


연 감독은 “투자를 받으면 이 돈을 어느 정도 불려야 한다는 책무감과 부채감이 생긴다. ‘얼굴’은 직접 투자하다 보니 마음이 편했고, 내 마음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 수 있었다”며 “거기에 중독돼 ‘실낙원’까지 오게 됐다. 이번에도 배우, 스태프들과 우리가 원하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작품의 시작에는 연 감독의 어머니가 있었다. 평소 아들의 창작 활동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직접 연습장에 적은 세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가 ‘실낙원’의 원안이 됐다.


연 감독은 “어머니가 명절마다 ‘이야기를 쓰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셔서 ‘자기가 할 이야기만 있으면 한글만 알아도 다 쓸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명절에 갔더니 연습장에 세 페이지 정도 되는 이야기를 써놓으셨더라”며 “그 이야기를 샀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가격은 조금 낮춰서 샀다”고 웃었다.


원안을 영화로 옮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세 가지 정도 버전으로 이야기를 썼고 그 끝에 지금의 ‘실낙원’이 나왔다. 아내도 영화를 본 뒤 자신의 이야기를 장문의 메시지로 보내면서 이것도 써보라고 했다. 온 가족이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목은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가져왔다. 낙원에서 쫓겨나 불완전한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AI가 만들어낸 완전한 기억과 현실의 불완전함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했다.


연 감독은 “낙원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세계로 들어오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완벽한 상태의 기억과 불완전한 현실 사이에서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선택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제목은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가져왔다. 낙원에서 벗어나 불완전한 세계로 들어서며 인간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원작의 의미를, AI가 보존한 완벽한 기억과 불완전한 현실의 대비로 확장했다. 연상호 감독은 “결국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선택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계에서 모자 관계의 복잡한 감정을 끌고 갈 류소영 역에는 처음부터 김현주를 떠올렸다. 단순한 모성보다 아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층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인물이 필요했다는 연 감독은 “여러 번 작업해 어떻게 연기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본을 보냈는데 2~3시간 뒤 ‘해볼 만하겠다’는 답이 왔다”고 캐스팅 과정을 전했다.


‘지옥’ 시즌1·2, ‘선산’에 이어 연 감독과 다시 만난 김현주는 “경력에 비해 연기 기술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감정에 많이 매달리는 편이라 처음 대본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이 거의 전부”라며 “제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연기의 결이라고 생각해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현주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도 9년 동안 떨어져 있었고, 소영의 시간은 10살 아들에게 멈춰 있다. 눈앞에 나타난 선우는 자신이 기억하는 아이와 명확하게 달랐다”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기로에 놓인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류소영을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배현성은 ‘지옥2’ 특별출연 이후 연 감독과 다시 만나 첫 스크린 주연에 나섰다. 연 감독은 “당시 출연 분량이 짧아 제대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딸이 ‘조립식 가족’의 팬이기도 해서 대본을 건넸는데 흔쾌히 답을 줬다”며 “지금까지 배현성이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선우는 9년 동안 자신을 대신한 AI와 살아온 엄마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은 인물이다. 배현성은 “선우는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는데 엄마는 AI 선우와 나름대로 잘 지내왔다고 느꼈을 것 같다. 거기에서 오는 원망과 서운함, 복잡하고 어두운 감정을 많이 드러내려고 했다”고 캐릭터에 접근한 방식을 밝혔다.


김현주와 배현성은 촬영 전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도 했다. 9년 만에 재회한 모자의 낯섦을 실제 첫 만남의 공기로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김현주는 “눈빛을 많이 주고받고 친숙해지면 첫 만남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받은 힘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 대화를 자제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듣던 배현성은 “저는 그때도 친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실낙원’은 최근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됐다. 연 감독은 “AI와 가상현실이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사회적 이슈가 됐기 때문에 해외 관객들도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며 “일상에서 한 번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이라고 가정해볼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현지 반응을 짚었다.


‘얼굴’과 ‘실낙원’으로 저예산 제작 방식을 연이어 택한 연 감독은 앞으로도 이 같은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연 감독은 “상업영화를 하면 상업영화만의 스트레스가 있고 저예산 영화를 하면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다. 상업영화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저예산 영화로 풀고, 다른 나라에서 시리즈를 만들면서 또 다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며 “여러 작품을 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푸는 창구다. 일을 일로 푸는 셈이다. 멈추면 큰일 난다”고 웃었다.


끝으로 극장에서 ‘실낙원’을 봐야 할 이유로는 관람 이후의 대화를 꼽았다. 연 감독은 “우리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법한 딜레마가 담긴 세계관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한 분들이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한다”며 “함께 온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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