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49표 그쳐 연내 입법 가능성 희박
규제 대응력 따라 디지털자산 시장 희비 교차 예상
클래리티법의 상원 표결 무산으로 규제 불확실성이 길어지면서 월가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미국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전통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알트코인 발행사와 블록체인 프로젝트 사업자의 경우 사업 방향을 정할 제도적 기준을 계속 기다려야 하는 반면, 자금과 법무 역량을 갖춘 월가 금융회사는 현행 규제와 당국의 해석을 활용해 토큰화 및 디지털자산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현지시간 15일 클래리티법 심의를 시작하기 위한 절차표결을 진행했지만 찬성 49표를 얻는 데 그쳤다.
법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려면 60표가 필요했다. 공화당이 보유한 53석을 모두 결집하더라도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가운데 최소 7명의 추가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이탈표가 나온 데다 민주당 의원도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서 법안은 본격적인 심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다.
표결 직전까지도 양측은 막판 협상을 벌였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최종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기존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가상자산 사업을 둘러싼 이해충돌을 막을 실질적인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가상자산 규제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를 보호하고 고위 공직자의 사적 이익을 막을 수 있는 초당적 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이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표결까지 마치면서 연내 입법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약 4주간 회기가 열릴 수 있지만 이미 초당적 합의에 실패한 법안을 다시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클래리티법은 가상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구분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을 명확히 하는 법안이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업자가 적용받을 규제와 등록 기관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SEC가 일부 코인과 거래소를 미등록 증권 발행·중개 혐의로 잇달아 제소하면서 규제기관의 해석에 따라 증권성 여부가 달라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등장한 법안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알트코인·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비트코인은 증권이 아닌 상품이라는 인식이 이미 자리를 잡아 증권성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반면 이더리움과 리플, 솔라나 등 주요 알트코인은 거래 구조와 발행·유통 방식에 따라 적용 규제가 달라질 수 있어 명확한 분류 기준이 필요하다.
클래리티법이 통과됐다면 이들 자산의 법적 지위가 보다 분명해지고 거래소와 금융회사가 취급할 때 부담해야 하는 법률 위험도 줄어들 수 있었다.
규제 기준이 명확해지면 가상자산을 취급하거나 관련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 시장의 저변이 넓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 경우 비트코인 역시 직접적인 수혜는 제한적이지만 시장 전체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이 좌초되면서 거래소와 디파이 사업자는 어떤 자산을 취급할 수 있는지, SEC와 CFTC 가운데 어느 기관의 감독을 받아야 하는지 불분명한 상황을 계속 감수하게 됐다.
특히 규제기관과 직접 협의하거나 소송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 블록체인 기업에는 불확실성 자체가 사업 진입과 투자 유치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월가 금융회사 입장에선 규제 공백이 상대적으로 견딜 만한 위험에 가깝다.
대형 금융회사는 SEC와 CFTC가 현행법 안에서 마련하는 규칙을 활용해 토큰화 상품과 수탁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
규제당국과 사전에 협의하고 법률 위험에 대응할 인력과 자본도 갖추고 있다.
이에 법안 불발이 월가의 디지털자산 사업을 중단시키기보다 일부 사업의 출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브라이언 비튼 시버트파이낸셜 수석 연구원은 “미국 기업들은 현재의 우호적인 규제 환경이 유지되는 동안 당초 2027∼2028년으로 계획했던 상품 출시와 토큰화 사업을 앞당길 경제적 유인이 있다”며 “클래리티법 불발이 일부 활동을 앞당길 수는 있어도 이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최고경영자도 클래리티법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SEC와 CFTC가 규칙 제정을 준비하고 있어 미국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 명확성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규제기관이 내놓는 규칙만으로 의회 입법을 완전히 대신하기는 어렵다.
법률은 규제기관의 관할과 가상자산 분류 기준을 안정적으로 확정할 수 있지만 행정부가 마련한 규칙은 정권이 바뀌면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클래리티법 좌초의 핵심은 규제 공백 자체보다 이를 견딜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시장의 희비가 갈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월가는 자본과 법무 역량을 앞세워 디지털자산 사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개별 코인과 블록체인 기업은 법적 지위가 정해지지 않은 채 사업과 투자 결정을 미뤄야 한다.
법률 대신 규제기관의 판단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전통 금융회사와 가상자산 기업 사이의 격차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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