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대형 전기 세단 ‘ES90’ 시승기
7천만원대 E세그먼트 플래그십…유럽보다 5000만원 낮춘 국내 가격
부드러움·단단함 오가는 에어서스펜션…110km/h에도 속도감 잊는 정숙성
마사지·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음영 루프까지…고급감과 실용성 모두 챙겨
볼보 ES90.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가성비를 따질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다. 가격을 낮추려면 기능을 줄이고 성능을 낮추는 등 어딘가에서 타협해야 한다. 이 불변의 법칙을 볼보 대형 프리미엄 전기 세단 'ES90'이 깼다. 가격은 한 발 물러섰지만 기능과 주행성능은 한치의 양보가 없다.
국내 판매 시작가는 7294만원.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막상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으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몸은 편안하고 귀는 조용하며 눈에 보이는 곳곳에서는 고급감이 느껴진다. 비싼 차를 샀다는 느낌보다 '이 가격에 이 정도까지?'라는 만족감이 먼저 덮쳐온다.
지난 15일 경기도 포천에서 서울 마곡 코엑스까지 돌아오는 코스에서 가격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ES90의 운전대를 잡았다.
7천만원, 정말 아깝지 않다
볼보 ES90 전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ES90의 국내 판매가는 글로벌 주요 시장 대비 약 5000만원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을 확보하기 위해 본사와 장기간 협의했고 수익성 부담까지 감수했다고 설명했다.
가격 경쟁력은 실제 시장 반응으로도 이어졌다. 6월 말 사전계약 이후 8월 말 기준 국내 계약대수는 3000대를 넘어섰다. 전기차 시장에서 한동안 '캐즘'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ES90을 두고서는 가격과 상품성을 함께 따져본 소비자들의 관심이 빠르게 계약으로 이어진 셈이다.
볼보 ES90 측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볼보 ES90 측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차의 첫인상은 가격만큼이나 절제돼 있다. 5m에 달하는 큰 차체지만 선과 장식을 과하게 덧붙이지 않아 군더더기가 없다. 중후한 대형 세단보다는 도회적인 느낌이 강하다. 실내도 같은 결이다.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기능을 정리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차분하다.
마치 철두철미한 비서 같다. 말이 많지 않고 앞에 나서지도 않지만 필요한 순간 운전자를 조용히 돕는다. 특별한 기능을 계속 과시하기보다 운전자가 차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하나씩 덜어주는 방식이다.
볼보 ES90 운전석.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볼보 ES90 1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그 성격은 운전석에 앉자마자 드러났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건 커다란 디스플레이였다. 정보량이 많아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시인성이 좋았다.
주행을 시작하자 가장 인상적인 건 승차감이었다.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설정하면 차가 한층 가벼워진 듯 움직였다. 가벼운 의자에 앉은 것처럼 노면의 굴곡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반대로 단단한 모드에서는 무게감 있는 의자가 몸을 붙잡아주는 듯 차체가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두 모드의 차이가 상당히 컸고 특히 조수석에서 변화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국도를 달릴 때는 도로의 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수십 종의 시승차를 타봤지만 승차감만 놓고 보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볼보는 듀얼 챔버 에어서스펜션과 차체 강성을 높이는 설계를 적용해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볼보 ES90 2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정숙성이 더해졌다. 계기판이 시속 110km를 가리켜도 몸이 받아들이는 속도감은 70~80km에 가까웠다.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고 전기차 특유의 모터 고주파음도 거슬리지 않았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빠르게 달린다는 느낌보다 조용히 이동한다는 감각이 강했다.
볼보는 모터 주변에 흡음 소재를 적용하고 모터 장착부에 대형 부싱을 사용해 전기모터에서 발생하는 고주파음과 진동을 억제했다. 공기저항계수 Cd 0.25의 차체 설계와 이중접합 차음유리도 정숙성을 높이는 요소다.
볼보 ES90의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주행에서 느낀 편안함은 실내에서도 이어졌다.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는 개방감과 실용성을 동시에 챙겼다. 유리로 된 지붕은 날씨가 좋은 날 탁 트인 느낌을 주지만 볕이 강하면 정수리가 뜨거워지기 쉽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커버를 닫아버리면 개방감을 포기해야 하고 다시 여는 과정도 필요하다.
ES90은 이 두 가지를 즉각적으로 오갈 수 있다는 게 편했다. 햇빛이 강하면 바로 음영을 만들고 답답하다 싶으면 다시 개방할 수 있다. 울트라 트림에는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가 적용돼 버튼 하나로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마사지 기능도 단순히 '있다는 데 의미가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강도와 패턴의 차이가 분명했고 실제로 몸을 눌러주는 느낌이 있어 장거리 이동에서 활용할 만했다.
볼보 ES90 대시보드의 바워스앤윌킨스 스피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오디오에서는 기능과 디자인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대시보드 위에 자리한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의 '트위터 온 톱'은 음향 장치이면서 실내의 디자인 요소 역할까지 했다. 스피커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면서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든 구성이다.
소리도 만족스러웠다. 자동차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카메라로 녹음하면 실제보다 소리가 거칠고 모래알이 섞인 듯 들리기 쉬운데 ES90은 한 단계 더 거쳐 들어도 음이 상당히 깔끔했다. 차를 사실상 개인 노래방처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만족도가 높을 만하다. 시승 설명 기준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는 25채널 1610W 출력을 지원한다.
볼보 ES90 볼륨 컨트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작은 디테일에서도 고급감이 느껴졌다. 화면 아래에는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볼륨 컨트롤이 자리한다. 손가락으로 도르륵 굴리듯 조작하면 음량이 바뀐다. 기능 자체는 단순하지만 디지털 조작이 대부분인 실내에서 이런 물리적인 촉감이 고급감을 더했다.
다만 깔끔한 디자인이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 물리 버튼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기능이 디스플레이에 들어가 있다. 처음 타면 어디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운전 중에는 원하는 기능을 찾느라 화면에 시선을 더 오래 두게 되는 점이 불편했다. 주차할 때 나오는 화면도 왜곡이 다소 크게 느껴져 직관성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볼보 ES90 360도 카메라 화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적재공간에서는 대형 세단의 체급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26인치 캐리어 1개와 24인치 2개, 20인치 1개, 20인치 플랫캐리어 1개에 토트백과 보스턴백까지 함께 실었다. 여행 짐을 한꺼번에 넣고도 짐으로 트렁크가 꽉 차 보였지만 버튼을 누르자 전동 트렁크가 무리 없이 닫혔다. 볼보는 최대 1445L의 적재공간을 제시한다.
볼보 ES90 트렁크.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볼보 ES90 트렁크.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ES90을 타기 전에는 7000만원대라는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적지 않은 돈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운전을 마치고 나니 가격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빠르고 화려한 전기차는 많지만 ES90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승차감과 정숙성, 실내의 고급감, 넉넉한 공간까지 어느 하나만 앞세우기보다 전체적인 완성도를 고르게 끌어올렸다. 한 번의 강한 인상보다 매일 탈수록 만족감이 차곡차곡 쌓이는 차다.
볼보 ES90 후면.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 타깃
-억대는 부담스럽지만 억대 '느낌'은 포기 못 하겠다면
-소리가 너무 좋아서 목적지 도착해도 못 내리고 한 곡 더 듣게 될 수도
-세단 몸매에 SUV 위장 하고 있는 트렁크
▲ 주의할 점
-너무 조용해서 속도계 안 보면 과속의 위험(?)이 있을 수도
-물리버튼 없는 실내, 기계치라면 적응 기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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