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혼자 바다 지키는 시대 끝난다…해상교통로 대응해야"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7.16 10:36  수정 2026.07.16 10:37

최종현학술원·해군 공동 포럼…"해상교통로 전략 다시 짜야"

전문가들 "해양안보는 국가 생존 문제…공공재 공급 역할 필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빌딩에서 열린 최종현학술원·대한민국 해군 공동 주최 포럼 '바다가 흔들리면 국가가 흔들린다: 공공재 질서의 균열,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서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해군

한국 경제와 산업의 생명선인 해상교통로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흔들리면서 국가 차원의 해양안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미국 중심의 해양질서가 약화하는 가운데 한국도 공급망·에너지·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종현학술원과 대한민국 해군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바다가 흔들리면 국가가 흔들린다'를 주제로 공동 포럼을 열고 국제 해양질서 변화가 대한민국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은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은 바다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해양국가인 만큼 바닷길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와 안보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산업계, 학계, 군이 함께 지속 가능한 번영을 뒷받침할 해양안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는 사실상 해양경제"…해상교통로가 제조업 생명선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은 사실상 '해양경제'"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수입 물동량의 99.9%, 수출 물동량의 97.9%가 해상을 통해 이동하고 에너지 수입의 약 96% 역시 바닷길에 의존한다는 설명이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항공으로 수출할 수 있지만,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와 원자재, 소재·부품·장비는 대부분 해상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다"며 "해상교통로 차질은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공급과 제조업 생산, 수출 경쟁력을 동시에 흔드는 국가 경제안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해상교통로는 한국 제조업의 생명선"이라며 "해양안보는 더 이상 국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제안보 변수"라고 강조했다.

"해양안보는 경제안보…AI 시대 바다 지키는 방식도 달라져야"

유재준 해군 대령은 "해양안보는 더 이상 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과 에너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제안보이자 국가 생존의 문제"라며 "대한민국은 동맹과 전략적 자율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첨단기술과 조선·방산 역량을 강화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령은 우리 해군도 AI 기반 지휘통제체계와 한국형 해양영역인식(MDA) 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미래 해군의 경쟁력은 함정을 보유하는 것과 더불어 정보를 가장 빠르게 연결하고, 가장 신속하게 결심하는 능력이 해군의 새로운 전투력이 될 것"이라며 "AI와 데이터 기반의 해양작전 역량 확보가 앞으로 대한민국 해양안보를 좌우할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빌딩에서 열린 최종현학술원·대한민국 해군 공동 주최 포럼 '바다가 흔들리면 국가가 흔들린다: 공공재 질서의 균열,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규 PADO 편집장,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재준 해군 대령,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해군
"미국도 더는 혼자 바다 지키지 않는다…한국도 역할 바꿔야"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더 이상 모든 해양 공공재를 혼자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통행료 부과 움직임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동맹국들과 해양질서 유지 부담을 나누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어 "미국이 모든 초크포인트를 무조건적으로 보증하는 시대는 사실상 끝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미국이 전체 질서를 설계하고 동맹국과 지역국이 역할을 분담하는 '하이브리드 질서'가 현실적인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한국 역시 해양질서의 소비자에 머무르기보다 공공재 공급에 기여하는 국가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행의 자유만으로는 부족"…국가통제선대·해군 연계 필요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만해협 등 전략 해역에서 위기가 현실화하면 운임과 보험료 급등은 물론 전략물자 수송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가 유사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국적 중심의 '국가통제선대(Nationally Controlled Fleet)'를 확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전쟁위험이 현실화된 해역에서는 군함의 호위를 받는 상선이 더 낮은 운송비와 보험료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가필수선대와 해군 호위체계를 연계한 국가 해상수송안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는 북극항로 개통 가능성에 주목하며 "지금까지는 중동에 의존해 석유를 수입했지만, 앞으로는 북극항로를 통해 에너지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이 항로를 이용하는 에너지 수송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앞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핵심 임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해양안보를 더 이상 군사 영역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경제안보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해상교통로의 안정이 에너지와 공급망,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산업·법·제도·조선·해운을 아우르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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