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가계대출 급증·하반기 대출 셧다운 우려…실수요자 자금조달 여건 악화
선진국은 총량규제보다 역주기적 자본완충·은행·차주별 차등 자본규제 운용
획일적 총량규제보다 은행별 자본·리스크 반영한 완충자본 강화 필요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상담창구에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에 급격히 불어난 가계대출이 벌써 연간 목표의 80%를 소진하면서, 은행권이 하반기 ‘대출 셧다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고, 대출모집인 채널을 중단하는 등 사실상 신규 가계대출 영업을 접는 분위기이다.
총량규제라는 단일 잣대 아래 가계대출 공급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주택 구입과 전세자금, 생계자금 등 실수요 차주의 대출 여건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문제는 ‘상반기 급증 – 하반기 셧다운’의 구조적 패턴이 최근 몇 년동안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초에 금융당국과 은행이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를 정하고 나면, 상반기 중 신용·주택대출 수요가 빠르게 몰리면서 목표치의 상당 부분이 조기에 소진된다.
그러면 하반기에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거나 상환분 범위 내에서만 운용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및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시나리오를 점점 더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대출총량은 규제로 묶여 있어 자금 접근이 어려운데, 이미 받은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 부담은 금리 인상만큼 추가로 늘어나는 구조다.
‘대출은 막히고, 금리는 오르는’ 이중고가 주택 실수요자와 취약 차주에게 동시에 가해지는 셈이다.
은행은 연간 대출총량이라는 단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차주의 소득·자산·상환능력과 관계없이 신규 가계대출 전체를 조이게 된다.
금리 상승 등 대출 조건이 나빠지며 상환능력이 높은 중산층 실수요자가 제도권 은행을 떠나 비은행권이나 고금리 상품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규제의 의도와 결과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선진국은 거시건전성 정책을 중심으로 우리와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유럽과 영국, 미국 등은 대출총량을 직접 할당하기보다는, 은행의 자본적정성과 위험가중자산 관리, 차주 단위의 상환능력에 대한 규제를 결합해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바젤Ⅲ 이후 도입된 역주기적 자본완충(countercyclical capital buffer)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경기가 좋고 신용이 과도하게 팽창할 때 은행이 추가 자본을 쌓도록 하고, 경기 침체·위기 시 자본확충의 부담을 덜어주어 손실을 흡수하고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제도다.
선진국들은 신용·경기 사이클에 맞춰 자본규제 강도를 조정함으로써, 실수요자에 대한 자금공급은 가능한 유지하는 구조이다.
또 다른 선진국의 대출 규제 핵심은 은행별·차주별 차등 규제에 있다.
선진 규제 체계에서는 은행의 부실율, 포트폴리오 구성,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자본 요구 수준을 차등화한다.
건전성이 우수한 은행은 상대적으로 낮은 추가 완충자본을 요구받는 대신 실수요 대출을 더 공급할 수 있고, 리스크가 높은 은행은 높은 완충자본과 위험가중치 상향을 통해 고위험 대출을 자연스럽게 줄이게 된다.
한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이와 대조적이다.
은행별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라는 총량 규제가 핵심이고, 은행들은 이 목표를 넘지 않기 위해 상반기에는 비교적 느슨한 기준으로 대출을 취급하다가, 목표가 소진될 즈음 갑자기 문을 닫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는 대출시점 간 비일관성을 초래할 뿐 아니라, ‘누가 대출을 받느냐’보다 ‘얼마나 증가했느냐’를 규제의 중심으로 삼기 때문에 대출의 질적 구성에 대한 관리가 부족하다.
고위험 신용대출이 늘어난 뒤에도 총량만 맞추면 된다는 식의 인센티브가 형성될 수 있고, 그 대가를 하반기의 실수요자가 치르는 구조가 된다.
이제 정책의 축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핵심 수단을 획일적인 총량규제에서, 은행별 상황에 맞는 거시건전성 공급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자본규제 강화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은행별 자본비율과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반영한 차등적인 완충자본 요구제를 도입해야 한다.
둘째, 역주기적 자본완충 체계를 본격적으로 도입·운용할 필요가 있다.
경기와 신용 사이클을 고려해 완충자본을 상향·하향 조정한다면, 신용 과열기에 은행의 위험 선호를 자연스럽게 제어하는 동시에, 침체기에는 신용 공급을 뒷받침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계부채 관리의 궁극적 목표는 숫자상 총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과 실수요자의 금융접근권을 동시에 지키는 데 있다.
현재처럼 총량규제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실수요자는 제도권 은행에서 밀려나고, 비은행·고금리 대체상품이 그 공백을 메우며 또 다른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정책의 초점이 ‘얼마나 빌려줬느냐’에서 은행별 자본과 차주별 상환능력을 중심으로 한 거시건전성 공급규제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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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rmjiseo@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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