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가 비춘 케이패션의 두 얼굴
지난 주말, 무신사 스토어에 들렀습니다. 성수나 한남 거리에서 마주치던 20대들의 옷차림—서걱이는 파라슈트 팬츠, 하늘하늘한 레이어드 이너, 쇠맛 나는 크롭 상의들이 2~3만원대 가격표를 달고 행거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은 죄다 여기에 있구나.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무신사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피팅룸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핸드폰 번호로 웨이팅을 등록해야 했고, '대기 30명, 예상 시간 28분'이 화면에 선명했습니다. 피팅 거울 한복판에는 무신사 로고가 박혀 있었고, 조명 조도는 직접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옷보다 브랜드가 먼저 보이는 구도. 셀카를 찍으면 거울 속에 자연스럽게 로고가 담깁니다. 바이럴은 자동입니다. 유니클로의 단정한 정리정돈, 자라의 경쾌한 고급감, H&M의 넘쳐나는 행거—글로벌 패션 제국의 피팅룸에는 각국의 브랜드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있습니다. 무신사의 피팅룸은 철저히, 한국적입니다.
한국 브랜드를 해외에 수출하고 현지 파트너들과 마주 앉는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마주칩니다. 무신사를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젓습니다. 그런데 마르디 메크르디는 압니다. 마땡킴은 압니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싶다고 말하는 그 스타일, 그 감각을 묶어 부르는 이름은 무신사가 아니라 'K-패션'입니다. 2024년 기준 무신사의 연간 거래액은 4조 5천억원, 매출은 1조 2,427억원으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돌파했고, 매장을 찾은 방문객의 국적은 136개국에 달합니다. 숫자는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무신사라는 이름에 대한 글로벌 열망인지, K-패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열망인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이 구조의 본질적인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마르디 메크르디도, 마땡킴도, 결국 플랫폼이 키운 브랜드들입니다. 무신사의 데이터와 유통망, MD의 기획력과 마케팅 지원이 디자이너들을 글로벌 브랜드로 밀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해외 파트너들이 이 브랜드들을 구매하는 경로는 무신사가 아닙니다. 브랜드의 자사몰입니다. 선물로 마르디 메크르디 티셔츠를 건네면 어느 나라에서든 탄성이 나오지만, 그 구매 여정에 무신사는 없습니다. 플랫폼이 키운 브랜드가 플랫폼 없이 세계로 나가는 것.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 타 플랫폼 입점 제한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까지 받은 구조를 생각하면, 브랜드들이 독립을 선택하는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저자 촬영
그러니 무신사가 PB에 집중하고 오프라인 매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해됩니다. 브랜드들이 바깥으로 나가는 동안, 무신사는 반대 방향의 전략을 택했습니다. 세계가 한국으로 오게 만드는 것. 지난 4월 성수동에 오픈한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는 개장 첫 사흘간 4만 2천여 명이 몰렸고, 외국인 구매 비중이 약 23%를 기록했습니다. 성수를 테마파크로 만들고, 관광객이 인증샷을 찍게 하고, 피팅룸 거울에 로고를 박아두는 것. 전부 같은 논리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곧 미디어이고, 관광객이 곧 글로벌 마케터가 되는 구조입니다.
이 맥락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24 파리올림픽까지, 두 차례 연속 국가대표 단복을 제작한 브랜드가 무신사 스탠다드였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당혹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가장 정직한 케이패션의 초상이었는지 모릅니다. 헤리티지 없이 속도로 쌓아 올린 제국. 해외에서 무신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거울 앞에 서본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플랫폼이 관광지가 되는 동안, 브랜드는 누가 키울 것인지. 그리고 그 둘이 K-패션이라는 이름 아래 건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그 질문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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