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최근 세계적인 인기작을 연이어 내놓는 한국 콘텐츠업계의 경쟁력은 정말 기이하다. 어쩌다 한두 편 정도가 돌출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작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점이 특히 놀라운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제작비를 대단히 많이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서양 문화처럼 지구촌 곳곳에 퍼진 세계적 주류 문화권도 아닌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 나라에서 또 다시 세계적 화제작이 등장했다. 이번엔 SBS 금토드라마인 ‘김부장’이다. 국내에서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8회엔 23%선까지 돌파했을 정도다. 주말 가족드라마가 아닌 장르물이 20%를 넘는 건 요즘엔 정말 보기 드문 사건이다.
SBS 방송 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는데 사흘 만에 세계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3위에, 그리고 2주차에 1위에 올랐다. 그 후 3주 연속으로 정상을 지켰고 마지막 회까지 아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2일 기준으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카타르·볼리비아 등 19개국에서 1위, 73개국에서 톱 10에 올랐다.
국제적 히트작의 특징이 해외 유튜버들의 리액션 콘텐츠들이 이어진다는 점인데 ‘김부장’ 관련 리액션 영상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워낙 시청자의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한 방을 터뜨려주는 작품이기 때문에 리액션 영상 제작에 적합하기도 하다.
그 한 방을 터뜨려주는 사람이 바로 ‘아저씨’인 김부장이다. 과장도 아닌 부장이라는 설정에서 주인공이 확실한 중년남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성이 김 씨다. 김은 한국에서 흔한 성씨의 대명사라서 김부장이라고 하면 어느 한 특수한 존재가 아닌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그런 평범한 아저씨로서 저축은행에 다니던 김부장(소지섭)이 딸이 위기에 처하자 숨겨왔던 힘을 드러내며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설정이다. 알고 보니 김부장은 남파공작원이었다가 남으로 귀순해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한 요원이었다. 요원도 보통 요원이 아니라 북에서 특별히 길러진 인간병기로서 전략 자산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했다.
그런 사람이 평범한 아버지로 살다가 딸을 위해서 악의 무리들에 맞서 주먹을 폭발시킨다. 과거 김부장과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2명이 조력자로 나서는데 이들도 역시 평범한 소시민 아저씨들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안경을 쓴다는 점이다. 보통은 처음에 안경을 쓰다가 본격적으로 힘을 개방할 땐 안경을 벗는 설정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김부장’에선 계속해서 안경 스타일을 지킨다. 옷차림도 이 3인의 평상복 차림을 계속 유지한다. 그것을 통해 평범한 아저씨들의 판타지라는 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바로 이 판타지에 시청자들이 반응했다. 일상에 억눌려 살던 일반 서민이 한 순간 힘을 폭발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정 말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억눌려 살기만 할 뿐 폭발시킬 힘이 없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의 강력한 한 방에 대리만족이 발생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후련함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한 것이다. 도파민을 발생시키는 사이다 액션의 힘이다. 작품 속에서 범죄자가 자신은 촉법소년이라고 하자 김부장은 ‘난 무법중년’이라고 하면서 무자비하게 제압하는데 이런 액션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주말 드라마에선 보통 아줌마 판타지가 많이 등장한다.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무시당하던 아줌마가 갑자기 화려하게 변신해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설정이다. 주부 시청자들이 주말드라마의 주시청층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속에서 ‘김부장’은 모처럼 나타난 아저씨 판타지다.
아저씨나 아버지가 딸이나 그에 준하는 어린 여성을 강력한 힘으로 보호하는 설정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다. 이 작품은 그런 설정을 소지섭의 액션을 통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런 설정은 여성 시청자에게도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김부장’은 여성과 남성 시청자를 모두 만족시킨 작품이 되었다.
이런 K-아저씨 판타지가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김부장’이 보여줬다. 한국 드라마는 판타지적 대리만족을 주면서도 그 배경의 리얼한 사회적 묘사가 특징이다. 현실의 사회문제와 애환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그것을 판타지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감·몰입·감정이입과 각별한 후련함을 만들어낸다.
미국보다 훨씬 적은 제작비로 소규모 액션을 했는데 시청자가 블록버스터급의 후련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감정이입이 선행됐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의 힘으로 해외 시청자들까지 한국의 아저씨에게 몰입하게 한 것이다. 그러한 K-드라마의 제작 역량과 액션을 호쾌하게 표현하는 소지섭의 존재감이 ‘김부장’의 세계적 인기를 견인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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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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