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혁신마을 ‘절반의 성공’
이탈리아 남부, 10년간 청년 인구 반토막
주민참여율 60% vs 15%, 도시혁신의 실체
실패 원인은 ‘소통 없는 탁상・전시행정’
도시재생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독일 하펜시티. 항만 재생 프로젝트로 세계적 미항으로 거듭났다. ⓒ하펜시티 공식 웹사이트
독일은 재정·정책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주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 65~85%, 도시재생과 일자리까지 국가 평균을 뛰어넘었다.
이탈리아 남부와 스페인 남부는 분권의 이름만 남긴 채 1년 새 58만명 인구가 줄고, 청년 실업률 25%·출산율 1.18명·학교 1000곳 폐쇄가 현실이 됐다.
일본에서는 소멸 위기 한계마을 1700곳과 반대로 인구가 10% 반등한 ‘기적의 마을’이 나란히 등장했다. 해외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경계에 선 현장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30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단순 분권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자치력·데이터·실행력, 그리고 마을과 주민이 살아 움직이는 정책이 ‘지방의 미래’를 바꾸는 열쇠라는 것을 해외 사례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독일, 자치력이 만든 지역의 변화
독일은 지방자치의 힘으로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고 있다. 2024년 기준, 독일 16개 주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65~85%에 육박한다. 각 지역이 자체 세입과 독립적 예산 운영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독일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적극 펴면서 과거 동서 간 경제·사회적 격차를 35% 이상 축소하는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특히 베를린·함부르크 등 주요 대도시의 실업률은 5% 이하, 연간 인구 증가율 1.1%를 기록하며 도시재생·문화·스마트산업 일자리 창출 등 모든 핵심 지표에서 연방 국가 평균을 상회하는 성과를 냈다.
독일 지방정부들은 국가 전체 예산의 43%를 지역별로 직접 편성·집행하고 있다. 재정력 격차 해소를 위해 중앙이 주도하는 수직적 재정조정과 부가가치세 배분(주별 인구 비례) 등의 구조적 재설계를 지속해 온 것이다.
각 주·도시는 실질적 조세권을 확보했고, 교육·복지·도시계획 등 주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는 지방 의회 및 행정이 주도권을 쥔다.
베를린의 공동과업-지역경제구조개선사업(GRW) 사례만 해도 매년 30억 유로(약 4조3000억원) 가까이 투입된다. 이 예산을 활용한 신산업·일자리·도심재생 프로젝트들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마을에도 파급 효과를 주고 있다.
또 독일의 재정위기관리제도는 독립적 기구(안정성위원회)를 통한 주정부 재정개선 합의·실행 방식이다. 연방의 직접적 통제보다 각 지역의 자율성·기획력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방세 비중은 2022년 기준 57.2%, 전체 재정운영에서 지방자치단체 부담·권한 비중은 52.6%까지 높아져 중앙집권적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
결국 독일의 성공 요인은 재정 권한과 정책 집행 자율성을 담보하는 구조적 분권, 데이터 기반 지역 맞춤 지원, 중앙-지방 파트너십이 살아있는 행정문화에 있다.
이런 기반 위에서 대도시뿐 아니라 기초 자치단체까지 독자적 혁신 시나리오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실제 각종 통계·현장 지표에서도 자치력이 발현된 실질적 성장과 균형발전의 효과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와 스페인 남부는 중앙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지방자치의 실패가 얼마나 많은 악순환을 유발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남부·스페인 남부, 분권에서 벗어난 쇠퇴
이탈리아 남부와 스페인 남부는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도 가장 급격한 지역 불균형과 인구 쇠퇴, 청년 유출이 복합적으로 진행된 현장이다.
2024년 기준 이탈리아 전체 인구는 5890만명이다. 이 중 남부 8개 주는 1년간 58만9000명이 줄었다. 인구 감소율만 3.8%에 달한다.
남부 평균 출산율은 1.18명(2023년 기준)으로 유럽 최저치이자, 인구 1000명당 출생 6명·사망 11명, 자연감소가 두드러진다. 동시에 남부 청년 실업률은 북부의 12%에 비해 25% 이상으로 치솟았다. 15~39세 경제활동참가율과 취업률도 급락했다.
소득·경제 격차도 뚜렷하다. 북부 롬바르디아 1인당 GDP(3만6100유로)에 비해 남부 칼라브리아·캄파니아 등은 1만9500~2만1000유로에 불과하다. 남북 이동 인구는 지난 5년간 130만 명을 상회하고, 매년 15만~16만명의 청년이 북부와 유럽·영미로 이주하는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급기야 정부는 ‘PIANO SUD 2030’ 지역개발 정책에 2019~2024년 225억 유로(약 32조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산업혁신·교육·인프라 등 주요 분야의 실제 지역 생산성은 22%에 그쳤다.
가족 구조에서도 평균 가구인원은 2.6명(2004년)에서 2.2명(2024년)으로 축소, 2023년 남부 출생아 수도 2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스페인 남부 역시 인구연령구조 악화, 청년 유출, 실업률 상승 등으로 광역자치주 인구 순감소율이 4~12%대에 이른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지방 소도시·마을에서 매년 학교·병원·상점 1000곳 이상이 폐쇄되고 있다.
EU 통계에 따르면, 앤달루시아·무르시아·카스티야 등 남부권의 청년 인구 순감소율은 69% 내외, 25세 이하 실업률은 중앙정부가 17% 내외로 집계했다.
유럽연합과 현지 분석기관은 정책·재정 자율권이 ‘형식상 분권’에 그칠 경우 공공 인프라 붕괴, 인구 유출, 공동체 해체, 지역 소멸 위기가 가속화되며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고착된다고 지적했다. 포괄적 산업·복지 정책이 현장에 실제로 실행되지 않으면, 분권 구조도 오히려 불평등 심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일본 가와바 마을 파머스 마켓 현장 모습. 주민 약 700세대가 직접 텃밭에서 기른 농산물을 아침마다 마켓에 가져와 진열·판매하고 있다. 250만명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다. ⓒ가와바 마을 홈페이지
일본, 혁신 마을과 한계마을의 교차점
일본에서는 인구소멸과 출산률 저하, 고령화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별로 성패가 극명하게 갈리는 구조다.
‘잘되는’ 마을은 분권, 주민참여, 창의적 정책이 결합되어 눈에 띄는 반등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가와바 마을이다. 인구가 3500명도 안 되는데도 연 25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농업 융합모델을 구축해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도쿄 세타가야구와의 교류사업으로 매년 4억 엔의 실질 지원금과 6000여 초등학생 농촌체험 등 독자적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마을주민 700세대가 파머스 마켓에 직접 참여하며 연간 8억5000만 엔의 거래를 통한 지역소득, 취업, 청년정착률을 끌어올렸다.
가미야마는 2013~2023년 10% 인구 증가, 학령인구 316명(4년 전보다 12%), 5년간 전입청년·가족 110% 상승, IT기업 유치와 청년 임대주택·예술 프로그램, 자율주행차 도입 등 첨단·라이프스타일 혁신까지 실현했다.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는 2023년 일본 최초로 레벨4 무인자율주행차 사업을 실증·실용화해 관광과 교통 서비스 혁신 모델을 동시에 확보한 바 있다.
이들 혁신 마을 성공의 공통점은 실질 주민 거버넌스, 광역 연계 관광·경제 플랫폼 구축(DMO) 사업, 지역 고유자산과 브랜딩, 그리고 청년 정착에 중점을 둔 복합 지원구조다.
반면 ‘한계마을’은 일본 농산어촌 전체 36%인 1711곳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인구고령화 60% 이상, 연간 순감소율 –1.8%, 출산율 1.0 미만, 평균 가구인원 2.1명이라는 극심한 쇠퇴 지표를 기록 중이다.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생활비·이주·주거 지원은 평균적으로 85% 미만의 실제 유지·회복에 그친다. 최근 10년간 전체 폐교는 8800곳(연평균 400~450곳, 도시 포함)으로 농촌뿐 아니라 지방도시까지 공동화가 번지고 있다.
진입로, 공공서비스, 일자리 및 비즈니스 환경, 문화·공동체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인구 감소→서비스 약화→청년 유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흐름이다.
일부 한계마을에서는 복지 행정이나 공동체 플랫폼(폐교 재생, 텃밭·축산 등)이 재생의 마중물이 되는 사례도 있다.성공률은 전체 마을 중 15~20% 수준이다. 미나미오구니 DMО, 사루후츠·스즈시 등 최근 사례처럼 글로벌 연계, 주민교육, 경제활성화 모델이 결합될 때만 ‘소멸 방지와 새로운 성장’이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결국 일본은 실질 분권·주민역량 강화·지역 자산의 브랜드화가 결여되면 정부·정책의 단기 지원만으로 인구유출과 마을 쇠퇴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반대로 주민·외부 커뮤니티 협력이 연계된 작은 마을, 분권형 정책 실험 모델에서는 인구 반등, 경제 및 사회·문화 활력의 실질적 성공 사례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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