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 투자 늘리는 정부…지역에선 영화제 예산 두고 ‘갑론을박’ [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24 09:27  수정 2026.09.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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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자체 수입인가, 문화적 가치인가…지역 영화제 공공지원 시험대

정부가 영화·영상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독립영화 등 창작 생태계 지원을 강화하는 가운데, 지역에서는 영화제와 독립영화 기반을 둘러싼 예산 삭감이 잇따르고 있다. 한쪽에서는 문화산업의 기반을 넓히기 위한 공적 투자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재정 효율성과 자립도를 이유로 기존 지원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영화·영상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투자협력 이니셔티브'를 선포했다. 한국과 프랑스가 2027년부터 5년간 각각 5억 유로(약 8000억원)를 영화·영상산업에 투자하고, 공동투자와 공동제작 등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영화·영상산업이 직면한 과제로 극장의 위기와 인공지능(AI) 시대의 창작, 독립영화 지원을 통한 문화 다양성 확보, 로컬 콘텐츠와 글로벌 시장의 상생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기조는 내년 예산안에도 반영됐다. 2027년 정부 예산안에서 영화 지원 예산은 올해 1332억원에서 1726억원으로 늘었고, 독립영화 제작 지원 편수는 60편에서 79편으로 확대된다. 산업의 외연 확대뿐 아니라 독립영화를 포함한 창작 생태계의 기반을 정책 과제로 명시한 셈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

반면 지역에서는 공공재원이 투입되는 영화제의 운영 방식과 지원 규모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은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제1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다.


경기도는 재정난에 따른 세출 구조조정을 이유로 올해 영화제 도비 31억원 가운데 6억 5300만원을 줄이는 내용의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감액안은 아직 도의회를 통과하지 않았지만, 영화제는 감액을 전제로 행사 규모를 줄였다.


개막식은 부대행사 없이 개막작 상영으로 치러졌고, 출품 규정에 각 1000만원의 상금을 공지했던 특별상 3개 부문(예술상·연대상·신인감독상)은 폐지됐다. 주요 경쟁 부문 상금과 다큐멘터리 제작지원 프로그램인 'DMZ Docs 인더스트리 프로덕션 피치'의 상금도 줄었다. 대상은 3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최우수상은 2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각각 감액됐다.


영화계도 반발했다. 폐막일인 16일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22개 단체와 개인 619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개막 한 달을 앞두고 경기도가 자행한 일방적인 예산 삭감 통보는 영화인들이 그간 어렵게 쌓아온 연대와 민주적 가치를 훼손했다"며 "의회 의결 전에 영화제를 강제 축소시키는 것은 적법한 의결 절차조차 무시한 채 시민들의 축제를 난도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식 출품 규정으로 공지했던 특별상이 폐지되고 프로그램이 바뀐 점도 문제 삼으며 영화제 스태프들의 노동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청년 영화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제 축소 운영을 두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계약 파기"라며 "책임 있는 공공은 도의적, 신의적 파괴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이튿날 페이스북에 영화제의 예산 구조와 관객 수, 인건비 등을 공개하며 재정 효율성 문제를 제기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올해 영화제 전체 예산 40억원 가운데 도비는 31억원으로 77.5%를 차지한다. 티켓 판매와 후원·협찬 등 자체 수입은 1억 1100만원으로 전체의 2.8%다. 비상근 집행위원장과 정규직 10명, 단기 전문인력 60명 등 71명의 인건비에는 연간 14억원이 투입된다. 전체 예산의 35% 수준이다.


추 지사는 지난해 관람객을 1만 3760명으로 집계한 경기도 자료를 근거로 올해 예산 40억원을 단순 대입하면 관객 한 명당 약 29만원, 유료 관객만 놓고 보면 약 60만원이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다만 영화제 측은 지난 2월 경기도의회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관객을 4만여명으로 보고해 양측의 집계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올해 예산을 지난해 관객 수로 나눈 계산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추 지사는 "문화예술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문화예술이라는 이름이 방만한 운영의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영화제 지원 여부 자체보다는 공적 재원의 투입 규모와 운영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높은 도비 비중은 설립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제는 2009년 경기콘텐츠진흥원 산하 경기영상위원회의 사업으로 출발한 뒤 2014년 관련 조례가 마련되면서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조례에는 경기도가 영화제의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하고 사업비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출범 단계부터 경기도의 재정 지원을 전제로 운영 기반이 만들어진 셈이다.


영화제 측은 인력과 운영비를 연례행사 개최 비용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화제 기간 외에도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는 'DMZ Docs 인더스트리', 교육 프로그램 '독스쿨', 기획 상영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52개국 144편을 상영했으며 해외 초청 인사의 항공·숙박과 통역, 작품 상영 등 국제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비용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DMZ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영화제가 내세우는 차별점이다. 분단이라는 역사적·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 전쟁과 분쟁 등의 의제를 영화제의 정체성과 연결해왔다. 독립·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영화제는 상업영화 중심의 극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편, 제작지원과 피칭 등을 통해 작품의 제작과 유통에도 관여한다.


오동진 집행위원장은 추 지사의 게시글이 올라온 같은 날 자신의 SNS에 "그동안 무참한 심정으로 인내해 왔다. 18번째 영화제도 며칠 전 간신히 끝냈다"며 "지금 경기도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영화계 전체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영화제 위원장으로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반박 성명을 내겠다. 기다리시라"며 공식 대응을 예고했다.


지역 영화 생태계를 둘러싼 예산 갈등은 경기도만의 일도 아니다. 강릉시의회는 지난 7월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정동진독립영화제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비 2000만원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임차료·프로그램비 3000만원, 강릉영화문화미디어센터 설립 추진비 5000만원 등 영화문화 관련 예산 1억원을 삭감했다. 앞서 2025년도 본예산 심의에서도 정동진독립영화제 예산 1억2000만원 가운데 7000만원이 깎였다.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신영을 운영하는 강릉씨네마떼끄는 지난 8월 4일 성명을 내고 강릉시의회의 예산 심의 과정을 규탄했다. 심의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공공적 가치보다 수익성과 관광 효과를 중심으로 한 평가가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두 사례는 성격과 예산 구조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 문화사업에 투입되는 공적 예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라는 문제를 남긴다. 관객 수와 자체 수입, 지역경제 기여도 등은 예산의 효율성을 판단하기 위해 외면할 수 없는 지표다. 장기간 공공지원에 의존하는 사업이라면 조직과 예산이 적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검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원액이나 관객 수만으로 비용 효율성을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영화제마다 개최 기간과 사업 범위, 조직 운영 방식이 다른 데다 독립·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분야는 시장에서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려워 공공지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다.


정부가 키우겠다는 산업의 기반 역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독립영화와 인디게임, 인디음악을 '문화 강국의 토대'가 되는 기초 분야로 꼽았다. 상업 자본이 선뜻 투자하지 않는 영역에서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고 이를 선보일 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새로운 창작자와 콘텐츠가 등장하는 기반이 된다.


창작자를 지원하는 것만큼 이들이 만든 작품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의 창작 생태계 지원 확대가 제작에 머물지 않고 지역 영화제와 독립극장 등 작품과 관객을 잇는 기반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 공적 예산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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