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감싸느라 '노무현 소환' 초래한 민주당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6.10.07 11:38  수정 2026.10.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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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성역 박정희 모욕, 진보의 성역 노무현 향한 역공 이어질 줄 몰랐나

소환된 노무현, 짜인 진영…한동훈 검찰 폐지 향한 공세 판 깔아줘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암살자(들)’로 촉발된 진보와 보수 두 진영 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게 북한의 사주를 받은 공작원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 전개와 제목에 들어간 복수 접미사 ‘(들)’이 보수 진영의 심기를 건드렸고, 진보 진영이 ‘창작의 자유’를 내세워 옹호에 나서며 싸움이 본격화됐습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스타벅스 탱크데이, 배재고 야구부의 5·18을 희화화한 응원으로까지 불거졌습니다. 이 사안들이 보수 진영의 반격의 소재가 됐고, 진보 진영은 다시 발끈해 반격에 나섭니다.


문제의 본질은 각 진영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성역’,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발작버튼’에 해당하는 부분의 민감성과, ‘창작의 자유’의 범위를 판단하는 시각입니다.


좀 유치하게 표현하면 “여긴 절대 건드리지 마” “창작의 자유라는 게 있는데 뭐가 어때서” “그럼 나도 니가 예민해하는 부분 건드릴거야” “그건 도를 넘어섰지” 이런 식의 말싸움이 두 진영 간 오가고 있는 겁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보수의 성역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였지만,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빠르게 복구하고 고도성장의 길로 진입할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비슷한 시기 정권을 잡은 다른 나라의 독재자, 심지어 민주화 혁명,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온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르고서는 부패하고 타락해 국민을 억압하고 나라를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자들과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암살자(들)’은 박 전 대통령 시절의 비극을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설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을 암살의 배후로 직접 지목하지 않지만, ‘열린 결말’이란 것 자체가 여러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감독의 의도는 아닐지라도 당시의 시대상과 일부 대사, 장면이 얽히면 ‘배후는 박정희였다’고 연상하는 관객이 나오는 게 무리한 일도 아닙니다.


성역을 침해당한 쪽의 반발은 불가피합니다. 특히나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은 지지층을 하나로 뭉치게 할 아이템이 절실하던 차였습니다. 암살자들을 탄생시킨 허진호 감독과 제작사도 어느 정도의 논란은 예상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보수 진영의 공세와 창작자 측의 해명이 오가는 선이었다면 이슈화의 동력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창작자 쪽으로 동정의 시선이 몰릴 수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참전하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창작의 자유’를 앞세운 맹목적인 감싸기는 보수 진영에 이슈를 더욱 키울 빌미를 제공해 줬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민주당이 제대로 하이파이브를 해준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 있어 '노무현'은 성역이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8월 19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보 진영으로부터 성역을 침해당했다’는 명분을 얻은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의 성역 파헤치기에 나섭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의 소환입니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호감도 순위 1·2위를 다투는 분들입니다. 그만큼 양쪽 진영으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중도층으로부터의 호감도도 높습니다.


노 전 대통령 사망을 둘러싼 사안은 진보 진영의 발작버튼입니다. 보수 진영은 육 여사 암살 배후에 의혹을 제기하는 게 창작의 영역이라면 노 전 대통령 사망 경위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그 버튼을 누르고야 맙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보수의 성역 ‘박정희’를 욕보이는데 거드는 모양새가 되면서 자신들의 성역 ‘노무현’을 소환하는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


이 이슈가 하필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중수청 출범’과 맞물립니다. 검사 출신이자 보수 진영의 강력한 스피커인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나섭니다. 민주당이 검찰 폐지에 집착하고 검찰에 대해 극단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근원이 ‘노무현 신화’에 있다고 거론한 겁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의원들과 논쟁을 주고받는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던 그와 관련된 각종 의혹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빌딩 컨벤션홀에서 '피지컬 AI, K-제조의 대전환'을 주제로 열린 2026 데일리안 글로벌 경제산업 비전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뜬금없이 진보 진영의 발작버튼을 누른 한 의원에게 역풍이 휘몰아쳤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은 깊기도 하지만 넓이도 상당합니다. 망자에 관대한 국민 정서도 더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 의원이 언급하기도 전에 ‘노무현’은 소환된 상태였고, 그를 둘러싼 논쟁에 서로 맞서는 진영까지 갖춰진 상태입니다. ‘한동훈이 노무현을 소환해 진보의 성역을 공격했다’는 공세를 홀로 감당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애초에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에 민주당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되지 않았다면, 검찰청 폐지가 결정된 지 한참이 지나 문을 닫는 시점에 굳이 한 의원이 노 전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진보 진영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가 아픈 게 싫으면 남도 아프게 하지 말아라.” 어릴 때부터 배우는 윤리 교육의 기본입니다. 보수의 성역을 건드리면 반격의 칼날이 진보의 성역을 향하는 건 뻔한 이치인데, 그걸 간과한 민주당이 자신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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