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수술실에 '로봇 막내'가 왔다…의사 옆에 선 '휴머노이드'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9.17 12:00  수정 2026.09.17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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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수술 보조 로봇' 시연 최초 공개

음성 지시에 내시경 조정하고 수술 기구 전달

AI·수술 데이터 학습해 의료진과 협업 고도화

138억원 투입해 2029년 임상…상용화까지 추진

오남기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가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으로 시연을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가까이. 아래로. 툴 가위 주세요.”


집도의의 말이 떨어지자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수술 기구를 건넨다.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의료진이 집도의의 시야 확보를 위해 내시경을 움직인다. 흔히 떠올리는 수술실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가지 낯선 점이 있다면 집도의를 보조하는 이들이 사람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것이다.


집도의 한마디에 ‘척척’…수술 보조 나선 로봇
삼성서울병원이 16일 오후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 B동 9층. 삼성서울병원이 마련한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 현장에 들어서자 수술대와 그 주위를 둘러싼 로봇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술대 양옆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2대가 서 있었고 원격수술 로봇도 자리를 잡았다. 그 주변으로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빼곡히 둘러섰다.


이날 시연은 대표적인 복강경 수술인 ‘담낭 절제술’을 가정해 두 차례 진행됐다. 먼저 원격수술에서는 집도의의 손동작을 수술 로봇이 그대로 따라가며 수술을 수행했다. “가까이”, “위로”, “아래로”라는 음성 지시에는 내시경을 든 휴머노이드가 약 2초 뒤 반응해 시야를 조정했다.


이어진 시연에서는 집도의와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2대가 함께 수술을 진행했다. 한 대는 내시경을 잡아 시야를 확보하고, 다른 한 대는 필요한 수술 기구를 건네고 정리하는 간호사 역할을 맡았다. 사람과 휴머노이드 로봇 2대가 하나의 수술 과정에서 협업하는 모습을 구현한 것은 세계 최초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이 16일 오후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 행사를 진행했다. 수술간호사 역할의 보조로봇이 집도의에게 수술기구를 전달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집도의가 “가위 주세요”라고 요청하자 간호사 로봇이 수술 기구를 건넸고, 사용이 끝난 뒤 “가져가”라는 말에는 다시 받아 제자리에 정리했다. 그 사이 반대편 로봇은 내시경 시야를 맞추며 수술을 보조했다. 집도의의 지시에 맞춰 두 로봇이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어가자 현장을 지켜보던 취재진 사이에서도 감탄 섞인 반응이 나왔다.


주변 소음으로 음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로봇이 곧바로 움직이지 않고 의료진의 지시를 다시 확인했다. 연구진은 “명령이 모호하거나 잘못 인식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로봇이 임의로 판단해 움직이지 않도록 설계했다”며 “수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로봇이 수술 기구를 집어 건네는 데 쓰이는 ‘손’도 시연장 한쪽에 전시돼 있었다. 에이딘로보틱스가 개발 중인 ‘2지 그리퍼’와 ‘다관절 로봇핸드’다. 현재 휴머노이드에 적용된 2지 그리퍼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수술 기구를 집어 전달한다. 수술실에서 기구를 안정적으로 쥐고 의료진에게 건네는 역할을 한다.


그 옆에 놓인 다관절 로봇핸드는 모습부터 달랐다. 여러 개의 손가락이 달린 형태로 사람의 손과 흡사했다. 각각의 손가락과 관절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동작까지 구현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에이딘로보틱스가 개발한 에이딘 핸드 2세대 다관절 로봇핸드.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하지만 로봇이 의료진과 손발을 맞추려면 손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 기구를 건네고 어느 방향으로 내시경을 움직여야 하는지 등 수술 과정과 의료진의 협업 방식도 익혀야 한다.


이를 위해 실제 수술실에서 의료진의 움직임과 수술 과정을 데이터로 쌓고 있다. 정규환 지능형의료로봇연구센터 교수는 “손의 움직임은 영상 센서를 활용해 데이터로 만들고, 수술실에 설치한 카메라로 여러 의료진의 동선과 협업 상황을 기록한다”며 “내시경 영상에는 수술 장면과 사용 도구, 수행 동작 등을 구분하는 정보를 붙여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실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 절차도 함께 마련했다. 정 교수는 “수술실 참여자의 동의를 받아 데이터를 수집하고 영상 속 얼굴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제거한다”며 “향후 데이터를 외부로 반출하거나 AI 학습에 활용할 경우 데이터심의위원회(DRB) 심의·승인과 필요한 동의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K의료+로봇’ 결합…2029년까지 기술 고도화
(왼쪽부터)정규환 지능형의료로봇연구센터 교수, 정용기 이비인후과 교수, 오남기 이식외과 교수가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이 같은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개발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이 지원하는 ‘2025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레인보우로보틱스, 에이딘로보틱스, 하해호, 삼성융합의과학원, 서울대, 국립암센터, 전북대병원 등과 컨소시엄 ‘오케스트라(ORchestra)’를 꾸렸다. 연구는 지난해 7월부터 2029년 12월까지 54개월간 진행되며, 정부로부터 138억350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는다.


목표는 의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닌, 수술실에서 사람이 해오던 보조 업무 일부를 휴머노이드가 나눠 맡는 것이다. AI와 실제 수술실 데이터를 활용해 의료진과 협업하고, 향후 의료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현장에서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적용 범위는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업무부터 단계적으로 넓힌다. 이비인후과·신경외과 수술에서 내시경을 잡아주는 역할부터 시작해 복강경 시야 조정, 조직 견인 등으로 확대한다. 2029년에는 담낭절제술과 뇌하수체종양절제술 등을 대상으로 4개 병원에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술보조로봇의 3대 핵심 개발기술.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연구 책임자인 정용기 이비인후과 교수는 “로봇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느냐에 따라 적용 시점이 달라진다”며 “내시경을 잡고 수술에 맞춰 위치를 조정하는 역할부터 임상 적용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개복수술에서 조직을 잡아당기는 등 복잡한 역할은 더 많은 개발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엿다.


실제 의료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준비도 함께 진행한다. 정 교수는 “로봇이 한 사람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면 인력 확보와 운영 비용 측면에서도 경제성을 기대할 수 있다”며 “아직 법적·제도적 준비가 충분하지 않지만 과제 2단계에서는 여러 기관과 협의해 관련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화 방안도 구체화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참여 기업들이 향후 판매 또는 임대 방식으로 사업화를 추진하고, 범용 구조와 국산화를 통해 의료기관의 도입 부담을 낮출 계획”이라며 “삼성전자와의 연계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 모델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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