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약 '미프진' 도입 앞두고 의료계 우려…"법·제도 정비 선행돼야"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9.18 11:15  수정 2026.09.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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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신 9주 이내 사용 허용…내년 1분기 도입 추진

처방 거부·배우자·미성년자 동의 등 의료현장 쟁점 남아

의료계 “처방 기준·의료진 보호 위한 명확한 근거 필요”

이재명 대통령 ⓒ뉴시스

정부가 임신중지약인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관련 법·제도 정비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큰 부작용이 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약물 도입이 구체화되는 만큼 처방 대상과 동의 절차, 의료진의 책임과 보호 범위 등 실제 의료현장에서 적용할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낙태약 도입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는 지난 16일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하고 초기 2년간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관련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1분기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의약품으로,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허가된 이후 2024년 기준 약 100개국에서 사용이 허용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중지에 사용되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식 도입되지 않아 온라인 등을 통한 미허가 의약품의 불법 유통과 안전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하면서 국내 도입 논의도 본격화됐다.


문제는 임신중지를 둘러싼 입법 공백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상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국회에 2020년 12월 말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지만, 시한을 넘긴 뒤에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7년째 법적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행 모자보건법에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허용 요건과 동의 절차가 규정돼 있는 반면,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강간·준강간에 따른 임신이나 임신 지속이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일정한 사유에 한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수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완벽한 대책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좀 더 나은 결정"이라며 미프진 도입에 속도를 낼 것을 재차 강조해 자칫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졸속 시행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의료계에서는 미프진 도입에 앞서 처방 대상과 동의 절차, 의료진의 책임 범위 등을 명확히 할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에게 약을 처방하도록 하는 것은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며 “행정 지침만으로는 의료진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출산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이미 출산율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낙태약 도입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현장에서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도 과제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현행법에는 임신중지 약물 사용에 대한 근거 조항이 없어 의료진 입장에서는 처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 개정 없이 약물만 허가될 경우 처방 체계 밖에서 유통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처방 거부와 배우자·미성년자의 동의 여부도 풀어야 할 쟁점이다. 특히 미성년자에게 보호자 동의 없이 약물을 처방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미성년자가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가이드라인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의료진이 처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배우자 동의 여부나 미성년자의 부모 동의 문제도 국회와 사회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미프진 관련 진료지침도 마련할 계획이다. 처방과 복용 이후 관리 방법을 비롯해 의료진과 환자가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담을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의료계가 제기하는 법적 불확실성에 대해 약물 처방 자체로 의료진이 처벌받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약의 처방 자체로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한 정부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료진의 처방 선택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정 장관은 “의료행위를 강요하기는 어렵다”며 응급의료가 아니라면 개별 의료진이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복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해 처방 기관이 직접 대응하거나 응급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안전관리 체계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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