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까지 통했다…칸·베니스가 선택한 이창동의 영화세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9.13 04:49  수정 2026.09.13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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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버닝’ 거치며 인간과 시대 질문…29년간 장편 7편 연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에 이어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며 거장의 귀환을 증명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거둔 성가다.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지 24년 만에 다시 베니스 본상 수상자로 호명되며, 세계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독보적인 무게감을 재확인했다.


1997년 데뷔작 ‘초록물고기’부터 올해 ‘가능한 사랑’까지, 그가 29년간 연출한 장편은 단 7편이다. 다작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칸과 베니스 등 세계 주요 영화제들은 그를 경쟁작으로 초청했다. 작품 수보다 한 편의 영화가 남기는 깊은 영향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해 온 셈이다.


이창동 감독ⓒ뉴시스/AP

이창동 영화의 힘은 사회를 바라보면서도 이야기를 거대한 담론에 가두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의 카메라가 끝내 향하는 곳은 시대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이다. ‘박하사탕’은 한 남자의 파괴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마주했고, ‘오아시스’는 사회에서 밀려난 두 남녀를 통해 편견과 사랑을 들여다봤다. ‘밀양’에서는 상실을 겪은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물었고, ‘시’에서는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과 외면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한 인물 안에 겹쳐놓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질문의 대상도 움직였다. ‘버닝’이 청년 세대의 무력감과 계층 간 격차를 미스터리 안에 담아냈다면, ‘가능한 사랑’은 노동과 계급, 부부 관계와 욕망을 두 부부의 삶을 통해 바라본다. 사회 문제를 직접 설명하거나 해답을 내놓기보다, 그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흔들리고 선택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세계 영화제가 그에게 꾸준히 반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밀양’은 200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2010년에는 ‘시’로 칸 각본상을 직접 거머쥐었으며, ‘버닝’ 역시 2018년 칸 경쟁 부문에 올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2관왕에 올랐다.


그의 이력 또한 독특하다. 국어 교사로 시작해 소설을 썼고, 이후 영화 각본 작업을 거쳐 마흔을 넘긴 나이에 연출에 입문했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각본과 조연출을 맡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각본을 쓴 뒤 1997년 ‘초록물고기’로 첫 장편을 냈다. 문학에서 출발해 영화로 옮겨온 이력은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구축하는 작품 세계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행정가로서의 경험도 눈에 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참여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복귀 후 ‘밀양’, ‘시’, ‘버닝’, ‘가능한 사랑’까지 네 편의 장편을 내놓으며 세계 영화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선명히 했다.


'가능한 사랑' 스틸ⓒ넷플릭스

신작 ‘가능한 사랑’ 역시 이창동이 오랫동안 붙들어온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가 만나면서 서로 다른 삶과 감춰진 욕망이 드러나는 과정을 그린다.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이 두 부부를 연기했으며 오정미 작가와 이 감독이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특히 이번 작품은 이창동 감독이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처음 작업한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감독은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 영화가 향하는 지점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이 상은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전했다.


이 말은 이창동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영화를 만들어온 방식을 압축한다. 29년 동안 장편 7편을 만들며 시대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일곱 번째 장편마저 베니스의 선택을 받은 이번 수상은 과거의 명성을 재확인한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영화가 여전히 세계 영화계와 뜨겁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국내 극장에서 먼저 개봉해 관객들을 만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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