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 이어 차기작은 이준익 감독 ‘반딧불이’…스크린 행보 계속
박해일은 한국영화계가 사랑하는 배우다. ‘살인의 추억’, ‘괴물’, ‘최종병기 활’, ‘덕혜옹주’,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까지 20여 년간 한국영화의 굵직한 작품마다 존재감을 보였다. 봉준호, 박찬욱, 김한민, 허진호 등 여러 감독의 영화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이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2022년 ‘헤어질 결심’과 ‘한산: 용의 출현’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는 박해일의 새 얼굴은 기자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에서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영부인 저격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하는 신문사 부장 재환을 맡았다.
‘덕혜옹주’ 이후 다시 허진호 감독의 시대극에 들어선 박해일은 이번에는 권력의 통제와 검열이 편집국까지 파고들던 1970년대를 통과한다. 사건의 진실을 향해 조금씩 깊숙이 들어가는 재환을 통해 4년 만에 다시 스크린의 중심에 섰다.
박해일ⓒ하이브미디어코프
데뷔 26년 차 배우에게도 완성된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작품을 하고 이 시점쯤 영화를 보면 굉장히 부끄러워요. 잘했든 못했든 전체를 보기보다는 제 것만 보게 되는 시점이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부끄럽럽네요.”
기자라는 직업뿐 아니라 후배들을 이끄는 ‘부장’이라는 재환의 위치도 박해일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편집국의 작동 방식을 알아갈수록 그 자리가 지닌 무게도 체감했다.
“감독님이 신문사라는 공간을 그 시대처럼 굉장히 리얼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저를 포함해서 신문사 기자로 나오는 배우들이 꽤 많은 부분을 담당하잖아요. 여러 부서를 거쳐 하나의 기사가 결과물로 나오고, 편집부까지 넘어가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싶었어요. 설명을 들으면서 알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부장으로서 갖는 집착 같은 것도 생각하게 됐어요. 그냥 배우로서 역할 하나를 맡았다고 생각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자리더라고요. 큰 사건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내가 이제 이런 역할을 맡을 나이가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후배 기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생각해봤고요. 신문사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각자 취재한 자료와 인터뷰를 놓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그때 서로 굉장히 수평적으로 대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선배, 부장 같은 호칭을 쓰면서도요. 조직사회가 다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점도 좋았어요.”
데뷔 후 26년 동안 수많은 기자들과 마주해온 박해일에게 기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연기로는 경험하지 못한 직업이었다. 허진호 감독에게 ‘암살자(들)’을 제안받으면서 그 익숙한 직업을 새롭게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제가 2000년에 데뷔했거든요. 적어도 1년에 한 편씩 작품을 했다고 치면 기자분들을 굉장히 많이 만난 셈이죠. 그런데 왜 이 직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하는 영화는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허진호 감독님에게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이거구나. 이건 해야겠다’ 싶었어요. 제가 따로 기자라는 직업을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계속 만나왔던 직종이잖아요. 저한테는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로 기억돼 있었던 것 같아요.”
재환을 구체화하는 출발점은 특정 기자가 아닌 1974년이라는 시대였다. 박해일과 허진호 감독 모두 작품으로는 처음 마주하는 시기였던 만큼, 자료를 함께 살피며 당시의 공기와 사건을 알아가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따로 어떤 기자분을 만나서 구체적으로 참고하기보다는 감독님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1974년에 벌어진 사건이고, 저는 사건 이후에 태어났으니까요. 물론 1970년대에 태어나긴 했지만 그 시대를 직접 기억할 수는 없죠. 성인이 된 뒤에는 한국 현대사에 이런 굵직한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제안받으면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 ‘70년대를 작품으로 다뤄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여쭤봤는데 감독님도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도 이 시대가 굉장히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같이 알아가면서 추적극이라는, 감독님에게도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했죠. 자료도 많이 넘겨주셔서 그 시대의 공기를 간접적으로 느껴보려고 했어요.”
‘덕혜옹주’에 이어 다시 허진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박해일은 재환이라는 인물에서 감독의 기질을 읽었다. 차분하게 사람을 이끌고 답을 정해두기보다 질문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허진호 감독의 방식이 재환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바라봤다.
“이 시기에 재환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감독은 허진호 감독님이 아닐까 싶어요. 감독마다 인물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생각해보면 ‘덕혜옹주’의 김장한이라는 캐릭터도 그랬어요. 감독님 안에 재환이 가진 기질 같은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장에서도 감독님은 어른 같아요. 감정적으로 크게 뭔가를 하기보다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하게 디렉션을 하고 스태프들과 공유하세요. 그러니까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어요. 특징이라면 질문을 많이 하세요. 제가 연기한 걸 보시고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연기한 거예요?’라고 굉장히 친절하게 물어보시죠.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는 절대 친절한 질문으로만 들리지 않아요.(웃음) 저는 그냥 해본 것뿐인데요. 결국 같이 공유하자는 태도였던 것 같아요. ‘같이 만들어가자’는 방식으로 연출자가 다가오면 배우는 무장해제돼요. ‘나를 믿어주는구나, 끝까지 같이 만들어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서로 최대치를 끌어내게 되죠. 그게 감독님의 장점이고, 어쩌면 재환스러움이 아닐까 싶어요.”
박해일은 촬영 전부터 현장을 찾아 재환이 오랫동안 몸담아온 신문사 공간을 익히는 데 공을 들였다. 직접 동선을 살피고 타이핑을 해보는가 하면, 후배 기자 영일 역의 이민호가 첫 촬영에 나선 날에는 현장을 찾아 상대 대사를 맞춰주기도 했다.
“저는 현장에 조금 미리 가보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저한테 유리한 방식인 것 같아요. (이)민호 씨가 첫 촬영으로 공중전화 장면을 찍었어요. 사건이 터진 초반에 영일이 신문사에 전화를 거는 장면인데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재환이잖아요. 제가 미리 가서 옆에서 대사를 쳐주면 리허설도 할 수 있는 거죠. 신문사 세트도 미리 가봤어요. 전주에 있는 실제 오래된 건물에 만든 공간이었는데, 건물 자체가 1970~80년대에 지어진 곳이라 굉장히 리얼했어요. 재환은 부장이고 오랫동안 그 공간에서 결과물을 만들어온 사람이잖아요. 공간에 대한 익숙함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리 내려가서 걸어보고, 앉아보고, 공간을 이해해보고, 타이핑도 쳐보고, 대사도 해봤어요. 혼자 상상도 해보고요. 촬영이 시작되면 정신없을 것 같았거든요. 영화 자체가 사건이 계속 펼쳐지고 속도감도 있기 때문에 그런 준비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재환은 처음부터 기자로서의 신념과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다. 문제를 발견하면 목소리를 내고 진실을 좇으려 하지만, 기사가 편집국에 닿기도 전에 검열에 가로막히고 권력의 압박과 조직의 현실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사건을 파고들수록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분명하게 낸다. 박해일은 이러한 재환의 흐름을 살리되, 초반부터 감정을 앞세워 돌진하는 인물로 그리지는 않으려 했다.
“제가 하나 염두에 뒀던 건 너무 경직되지 말자는 거였어요.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 자체가 폭발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장면들이 준비돼 있잖아요. 다행히 감독님이 그런 장면들을 뒤쪽에 찍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그 시대의 공기였어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지켜져야 하는 공간인데 검열관이 빨간 펜을 들고 기사가 편집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재단하고 있잖아요. 그 공간에 앉아 있는 재환이라면 머뭇거릴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고, 눈치도 볼 수 있겠죠. 그런 현실적인 느낌도 살리고 싶었어요. 허진호 감독님도 인물을 다룰 때 ‘꼭 이래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분이에요. ‘사람이라면 다르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요. 그래서 배우가 한 방향만 준비해서 갈 수 있는 현장은 아니었어요. 이렇게도 갈 수 있고 저렇게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둬야 했죠.”
박해일ⓒ하이브미디어코프
재환의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이다. 박해일에게도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촬영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쌓인 배우들 사이의 연대감이 힘을 보탰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장면마다 개인적으로 난이도를 체크해놓는 편이에요. 이 작품에서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 장면이 네다섯 군데 있었는데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도 그중 하나였어요. 신문사 안에 유해진 선배, 김대명 씨, 배성우 선배를 비롯해 다른 부서 배우들과 보조출연 배우들까지 계속 함께 있었거든요. 촬영을 이어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배우들 사이에 연대가 생기더라고요. 마지막 절정에 이르는 장면에서는 서로 한두 마디 하지 않아도 끈끈한 느낌이 있었고, 선언문을 외칠 때는 오히려 다른 배우들의 온도가 저보다 더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런데 뜨거운 상황이라고 해서 저까지 계속 뜨겁게 가기보다는 오히려 냉정하게 던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카메라가 돌기 직전에 만들어진 상황의 온도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서퍼라면 오는 파도를 그대로 한번 타보자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선언문은 외워서 준비했지만 앞에서 실제 상황이 펼쳐지면 여러 감각이 동시에 들어오니까 그걸 같이 느끼면서 외쳤어요. 그러다 보니 대사가 조금 씹히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하셨어요. 테이크도 많이 가지 않았어요. 많이 갈수록 오히려 인위적이 될 수 있는 장면이었거요.”
자유언론실천선언과 함께 박해일이 높은 난도로 꼽은 장면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 현장이다. 재환이 물러서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는 이 장면은 후반부 인물의 방향과 연기 톤을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 장면도 제가 난도가 높다고 생각했던 장면 중 하나였어요. 전날부터 가서 준비했어요. 결정적인 순간부터 재환이 계속 치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끊이지 않고 질문하고, 거의 추궁하는 데까지 가야 하는 굉장히 센 장면이라 부담이 컸어요. 테이크도 많이 갔고 대사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괜찮아요’ 하면서 끝까지 지켜봐 주셨어요. 용기를 내서 한 장면이죠. 그 장면의 온도는 저한테도 굉장히 뜨거웠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무서운 장면이기도 해요. 기자가 취재하고 질문을 했을 뿐인데 잡아가라고 하잖아요. 물어볼 질문을 했을 뿐인데요. 그런 공포가 이 영화가 가진 결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재환의 톤을 많이 잡았어요. 배우가 작품 초반부터 센 장면을 찍으면서 캐릭터의 톤을 잡을 수도 있고, 가벼운 장면부터 하나씩 쌓아갈 수도 있는데요. 이건 촬영 중반 이후였지만 앞으로 펼쳐질 재환을 잡는 계기가 됐어요.”
재환의 곁에서 진실을 좇는 또 다른 축은 신입 기자 영일이다. 선후배 기자로 만난 박해일과 이민호는 서로의 촬영 현장을 찾아 호흡을 맞추며 관계를 쌓아갔다. 박해일은 재환에게 영일이 막혀 있던 취재의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바라봤다.
“저는 촬영에 들어가면 상대를 역할로 보게 되는 편이에요. 동료 배우로 생각하는 거죠. 민호 씨도 프로 배우이기 때문에 서로 정중함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각자의 캐릭터로 바라봤어요. 민호 씨도 자기 촬영이 없는 날 몇 번 현장에 왔어요. 워낙 세계적으로 알려진 배우니까 현장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왔다는 건 배우로서 본인에게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을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겠죠. 그만큼 이 작품과 역할에 잘 녹아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끝까지 파이팅이 좋았고 몸도 아끼지 않았어요. 재환의 입장에서 영일은 우리가 열 수 없었던 하나의 문을 열 수 있는 키를 어디선가 가져다주는 캐릭터예요. 민호 씨가 그걸 굉장히 잘 넘겨줬다고 생각해요. 고맙죠.”
재환은 영화 내내 사건과 신문사 안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에 가깝다. 가족 등 사적인 배경을 덜어낸 대신 동료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취재를 이끄는 방식을 통해 오랜 경험을 쌓은 부장 기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재환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결혼했을까요?’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요. 인물을 만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감독님이 가족 같은 사적인 배경 없이 재환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게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캐릭터로 봤으면 좋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신문사 팀원들이 재환의 가족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직장 안의 사람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인물로 접근했죠. 재환은 경험치가 많은 기자이기도 하잖아요. 조직 안에서 앞뒤 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영일에게 과감하게 취재해보라고 던지기도 하고, 기사를 한번 써보라고 하기도 하죠. 그런 것도 재환이 가진 기술이라고 생각했어요.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지만 계산을 꽤 많이 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수가 있어야 후반에 결정적인 인물을 직접 취재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이 그런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심어놓으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6년간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박해일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여전히 자신에게 낯선 것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이미 경험한 역할과 소재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선택은 ‘최종병기 활’과 ‘헤어질 결심’을 거쳐 ‘암살자(들)’의 기자 재환으로 이어졌다.
“제가 이미 다뤄봤던 소재나 역할을 조금 비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됐구나 싶어요. ‘최종병기 활’도 그랬어요. 활이라는 건 조선시대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부차적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소재잖아요. 그런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하셨어요. 그게 궁금했어요. ‘헤어질 결심’의 형사도 박찬욱 감독님이 설명해주시는데 시민들에게 친절하고, 품위가 있고, 문학적인 태도도 있는 형사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전까지 형사 역할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대부분의 남자 배우들이 한 번씩 해보는 역할인데 저는 그것도 이상하게 안 해봤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내 기질로 한번 뛰어들어 볼 만하다, 용기 내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 재환도 그런 결에 속해요. 기자라는 역할로 영화의 기승전결을 만들어보자는 허진호 감독님의 제안이 저한테 호기심으로 다가왔어요. 다른 배우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하는 저 나름의 발버둥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임순례, 김한민, 봉준호, 박찬욱, 허진호 등 다양한 색깔의 연출가들과 호흡해온 박해일은 감독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배우다. ‘암살자(들)’ 이후에는 이준익 감독의 ‘반딧불이’로 또 다른 연출가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에게 감독은 캐릭터와 작품의 방향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 중 하나다.
“저는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예요. 배우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감독을 많이 따라가고 흡수하려고 하는 편이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독이 뭘 요구하는지, 이 장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최대한 보려고 해요. 자연인으로서의 제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감독이 원하는 것과 상대 배우와의 호흡 안에서 어떤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요. 장르를 떠나서 태도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 중심에는 저한테 감독이 있어요. 연출가가 그만큼 중요해요.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감독을 많이 흡수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작품 하나 끝나면 진이 많이 빠지죠.”
박해일은 감독과의 작업에서도 충돌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보다 서로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방식을 택해왔다. 작품과 캐릭터에 호기심이 생겨 선택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내놓고, 감독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책과 캐릭터를 제안받았을 때 굉장히 호기심이 생기고 해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감독님도 궁금하고 제안해주신 것도 고맙고요. 그런 걸 종합했을 때 그 작품 안으로 쫙 빨려 들어가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면 제가 해보고 싶은 건 최대한 다 해보려고 해요. 물론 제가 아무리 많이 해봐도 감독님이 원하는 범위가 있을 테니까 다 맞출 수는 없죠. 그래도 다 해보고 그 안에서 서로 만족스러운 것을 취하는 거예요. 그런 작업을 하다 보면 서로 신뢰가 생겨요. 서로의 장점도 알고 한계도 알게 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부분도 알게 되죠. 그 안에서 이 작품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요. 저는 부딪히면서 작업하고 싶지는 않아요. 부딪히면서 에너지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면 제 장점이 덜 나오는 편이더라고요. ‘같이 해봅시다. 힘들더라도 한번 해보고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찾아봅시다’라는 쪽이에요. 대신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어야겠죠.”
박해일은 2022년 ‘헤어질 결심’과 ‘한산: 용의 출현’ 이후 한동안 스크린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작품마다 가진 에너지를 쏟아온 그는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두는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작품 활동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작업 방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작품을 할 때마다 제가 가진 게 그렇게 많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쓰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면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갈 수 있는 기질의 배우가 아니라는 걸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됐어요. 한 작품에 쭉 들어가 있으면 다시 거기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준비가 됐을 때 저한테 주어진 책들 가운데 해볼 수 있는 걸 찾았죠. 그걸 반복하다 보니 시간에 비해 작품 수가 적은 편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작품을 많이 못 하겠구나’ 하는 위기감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기운을 내서, 힘을 쓰는 방식을 다른 시스템으로 전환해서 연달아 작품을 할 수 있도록 세팅을 바꾸고 있어요.”
영화 중심의 필모그래피를 이어온 그는 아직 OTT 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OTT에 선을 그은 건 아니다. 당장은 익숙한 영화의 호흡에 집중하면서도 시리즈 출연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제가 좀 느린 편인데 이제 조금 달려가 볼까 하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안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주어진 영화를 제대로, 연달아서 쉬지 않고 해보자는 데 목적을 맞추고 있어요. 물론 다른 좋은 플랫폼들도 많죠. 그런데 같은 연기라고 해도 호흡의 길이나 매체를 대하는 태도가 미세하게든 크게든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하던 걸 해야 하나, 같이 해야 하나, 아니면 한번 완전히 갔다 와야 하나 같은 것들요. 지금까지는 ‘하던 거나 더 잘하자’에 가까웠죠. 그렇다고 제가 시리즈를 안 한다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열어놓고 있다고 계속 말씀드리는데 매번 모르는 거죠. 저는 언젠가는 할 거고, 하게 되는 시점이 오겠죠. 영화를 지켜내기 위해 다른 플랫폼 작품을 안 한다는 태도는 전혀 아니에요.”
박해일에게 영화와 영화관은 반드시 같은 운명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영화를 만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영화 자체와 배우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저는 ‘로마’를 봤을 때 '영화가 없어질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영화관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플랫폼이 생기더라도 영화를 보여주는 배우로서의 역할은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라도 영화적인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고 제가 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면 저 역시 예외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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