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현황 및 비전 발표
박민우 사장 “어정쩡한 L2++ 양산하기 싫었다”
2028년 엔비디아 먼저 양산…데이터 자체 ‘아트리아 AI’에 활용
2029년 자체 AI L2++ 승부…“5년 내 경쟁사 누적 데이터 추월”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지금 상황에서 총력을 다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늦췄습니다.”
자율주행 상용화에 있어 늦다는 평가를 받아온 현대차그룹이 이례적으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체 자율주행 인공지능(AI) ‘아트리아 AI’의 양산 목표를 2029년 하반기로 잡은 것은 기술 개발이 늦어서가 아니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2028년부터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먼저 양산해 데이터와 경험을 축적한 뒤 자체 AI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본격적인 자율주행 양산이 시작되면 5년 안에 경쟁사들이 누적한 데이터 규모까지 추월할 수 있다는 목표도 내놨다. ‘빨리 따라가는 것’보다 제대로 준비해 ‘판을 뒤집겠다’는 자신감이 깔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이같은 자율주행 개발 전략과 양산 로드맵을 공개했다.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는 이날 “아트리아 AI는 사실 총력을 다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일정을 늦췄다”며 “지금 서둘러 양산하면 우리가 가야 할 완전한 ‘노스 스타’보다 거리가 먼, 어정쩡한 레벨2++를 양산하게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양산 시점을 앞당기기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자체 기술의 완성도를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박 사장은 “시장에 빠르게 내놓는 것만을 목표로 기술의 완성도나 품질을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서둘러 제공해 고객이 실망하면 이후 신뢰를 다시 확보하기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위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자체 개발을 동시에 가져가는 ‘투 트랙’ 전략을 택했다.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플랫폼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2028년 상반기 레벨2+, 같은 해 하반기 레벨2++를 양산차에 순차 적용하고, 2029년 하반기 현대차·기아 AVP본부와 포티투닷이 공동 개발한 아트리아 AI 기반 레벨2++를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것을 자체 기술 개발의 후퇴가 아닌 ‘시간을 사는 전략’으로 봤다. 검증된 외부 기술을 활용해 양산 경험과 실제 도로 데이터를 먼저 확보하는 동안 자체 AI 개발진은 아트리아 AI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사장은 “엔비디아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아트리아에 리소스를 집중하자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2029년 하반기”라며 “엔비디아와 협업하면서 나오는 데이터도 우리가 모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정현 현대차·기아 자율주행개발센터장 부사장도 “엔비디아 솔루션으로 먼저 양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대부분이 아트리아 양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그 노하우와 데이터를 아트리아 개발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외부 기술을 활용하는 동시에 자율주행 핵심 기술을 내부에 쌓고 있다. 현대차·기아 AVP본부와 포티투닷이 하드웨어부터 차량 운영체제, 소프트웨어 스택, AI까지 SDV 전반의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트리아 AI 역시 두 조직이 사실상 하나의 팀으로 공동 모델을 개발하는 구조다.
아트리아 AI는 센서 입력부터 차량 제어까지 하나의 AI 모델이 학습하는 E2E 방식이다. 기존처럼 개발자가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움직인다’는 규칙을 하나씩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운전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주행 방식을 찾아내는 시스템이다.
포티투닷 판교 본사에 전시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및 SDV 실증 페이스카 ⓒ 현대차그룹
엔비디아를 통해 확보한 3년은 단계적으로 활용한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주행·주차·능동안전 기능을 제품 수준으로 완성하고, 2028년에는 대규모 엣지 케이스 데이터를 확보해 안전성을 끌어올린다. 2029년에는 한국과 북미,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안전 인증을 준비한다는 구상이다.
권 부사장은 “어느 정도 E2E 자율주행의 기반은 마련한 상태”라며 “2028년 한 해는 수많은 엣지 케이스 데이터를 모아 정말 안전한 수준의 제품을 만드는 기간이고, 2029년은 국내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에서 안전 인증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감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압도적인 양산 규모도 자리한다.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19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연간 700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회사는 향후 이 거대한 글로벌 차량 기반을 자율주행 AI를 고도화하는 데이터 경쟁력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정성균 포티투닷 아트리아 그룹 GL은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면 5년 이내 경쟁사들이 누적한 데이터의 양을 추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재 격차 자체를 부인하는 대신 현대차그룹이 가진 제조·판매 규모를 AI 경쟁력으로 전환하면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데이터의 절대량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승부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같은 100만개의 샘플이라도 중요한 단 하나의 샘플이 전체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현대차그룹 시험·검증 조직이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한 코너 케이스를 타깃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포티투닷이 운영하는 데이터 수집 전용 차량은 40여대다. 차량 한 대가 주당 80시간 이상 도로를 달리며 도로공사와 악천후, 급격한 차로 변경, 이면도로 주정차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단순히 차량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쓸모 있는 데이터’를 빠르게 찾아내는 데도 무게를 싣고 있다. 자율주행 중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전후 15초간 데이터를 기록하는 ‘SER(Special Event Recorder)’을 개발한 이유다. 차량 센서와 신호뿐 아니라 아트리아 AI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까지 서버로 전송해 개발진이 곧바로 문제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학습시킨다.
박 사장은 “자율주행 개발에서는 고부가가치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쉽게 찾아내느냐가 핵심”이라며 “데이터를 다 모아놓고 나중에 찾는 것이 아니라 주행하는 순간 핀포인트로 잡아내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현대차그룹
데이터 경쟁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붙이기 위한 준비도 시작됐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출시되는 최대한 많은 신차에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10’을 기반으로 한 동일한 센서 체계를 적용할 계획이다. 카메라 10개, 전방 레이더 1개, 초음파 센서 12개가 기본 구성이다.
박 사장은 “2028년부터 만들어지는 최대한 많은 차종에 동일 센서를 적용하려 한다”며 “고객이 차량을 구매한 뒤 7~8년이 지나도 최신 모델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최소 하드웨어 사양을 확보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센서 표준화가 이뤄지면 차종별로 서로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다시 가공할 필요가 줄어든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와 포티투닷, 모셔널부터 센서와 데이터 구조를 통일하고 향후 같은 하드웨어 생태계를 사용하는 외부 기업까지 데이터 활용 범위를 넓히는 ‘데이터 유니언’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아트리아 AI를 탑재한 아이오닉 6 기반 SDV 테스트베드가 서울 도심을 주행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갓길 주정차 차량을 피해 달리고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차량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비보호 좌회전, 보행자 통행, 좁은 이면도로의 대향 차량 등 복잡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주행했다.
정 GL은 “최근 6개월 동안 주정차 차량 회피와 차로 변경 시점, 좁은 골목길 통과 등 국내 도심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까다로운 상황의 성능 개선에 집중했다”며 “축적된 데이터와 이를 다루는 노하우는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하는 해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셔널 로보택시가 라스베가스 거리를 주행하는 모습ⓒ현대차그룹
현재 기술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포티투닷은 아트리아 AI와 별도로 차세대 VLA 자율주행 AI도 개발하고 있다. VLA는 차량이 카메라로 주변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를 기반으로 상황을 추론해 행동까지 결정하는 기술이다. 차량 스스로 “왜 지금 차선을 변경하는지” 설명하거나 운전자가 “빨간 차 뒤에 세워줘”라고 말하면 이를 이해하고 수행하는 형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말까지 VLA의 실차 테스트를 포함한 전체 개발 과정을 구축하고 내년부터 실제 차량에서 다양한 이슈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은 완성도가 앞선 E2E 아트리아 AI 양산에 집중하면서 VLA를 차세대 선택지로 동시에 키운다는 전략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레벨2++ 이상으로 제시했다. 아트리아 AI를 기반으로 레벨4까지 기술을 단계적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말 광주 실증사업에 아트리아 AI 기반 레벨4 기술 요소를 투입해 국내 실제 도로에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다시 AI 학습에 활용한다.
박 사장은 “앞으로 자율주행이 없는 자동차는 판매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마치 바퀴 없는 자동차를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자율주행은 자동차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본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율주행 경쟁은 더 이상 특정 기능의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다”며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그 결과를 얼마나 신속하게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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