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온 가족이 일정을 맞춰 휴가를 내고, 학원 일정을 조정하고, 일찌감치 고가의 항공권과 호텔까지 예약했다. 드디어 휴가 출발일.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차타고 비행기 타고 다시 차타고 먼 길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는데, 이런!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멀쩡하던 발바닥까지 욱신거린다. 난데 없는 두통에...어라, 열까지 난다!
큰 맘 먹고 떠난 휴가에 벌어진 이런 낭패는 운이 나쁜 이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놀랍게도 제법 많은 이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레저 시크니스(Leisure Sickness)’라는 명칭까지 있다. 의학적 질환명은 아니지만, 네덜란드 심리학 연구진이 제시한 개념이다.
업무나 학업 등 긴장된 일상에서 벗어나 막상 휴식을 취하려고 하니 오히려 몸살이나 두통, 피로감 같은 질병 증상이 나타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꽤 빈번하니 레저 시크니스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만들어졌을 터.
급격한 '모드 전환'은 고장의 원인…사람도 마찬가지
사실 레저 시크니스는 재수가 없어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엄연히 원인이 존재하는 결과물이다. 몇 달간 과도한 업무와 학업, 육아 등으로 정신적 부담과 수면 부족까지 시달리면 우리 몸의 신경계는 오랫동안 ‘경계 모드’로 유지된다.
이 경계 모드는 스위치 하나로 온-오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휴가를 떠났다고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이 즉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란 의미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코르티솔 수치가 안정되기까지는 통상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휴가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첫날부터 휴가지로 떠난다. 심지어 휴가 전날 퇴근 직후 출발하는 사례도 있다. 내 몸에는 가혹한 일이다. 갑자기 휴가 모드로 전환되면 각성 수준이 낮아지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피로와 근육 긴장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평소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신체가 이완되면서 자율신경계와 면역체계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것이다.
심지어 휴가철에는 장거리 이동과 무거운 여행 가방 운반, 평소 하지 않던 물놀이와 등산 등으로 활동량이 평소보다 늘어난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근육과 관절이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리, 어깨, 발 등 근골격계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캐리어와 맛집 탐방은 혹사의 원흉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캐리어 증후군’이다. 온갖 짐을 때려 넣은 캐리어는 든든한 운반 도구지만, 몸을 혹사시키는 원흉이기도 하다. 무거운 캐리어를 오랜 시간 한 손으로 끌고 다니면 몸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척추와 골반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 손목과 팔에 가해진 부담은 어깨와 목으로 이어지고, 특히 계단이나 턱을 넘기 위해 캐리어를 갑자기 들어 올리는 동작은 허리 근육과 인대에 순간적인 과부하를 줄 수 있다.
평소에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근육이 이러한 부담을 어느 정도 보상해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레저 시크니스 상태에서는 근육의 피로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회복 능력도 일시적으로 떨어져 같은 자극이라도 더 큰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휴가철 민감한 부위는 바로 ‘발’이다.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하루 보행량이 평소보다 3~4배 늘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과정에서 발바닥 충격을 흡수하는 족저근막에는 미세 손상이 반복적으로 쌓일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즐겨 신는 샌들이나 슬리퍼는 쿠션이 부족해 발바닥에 가해지는 부담을 키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족저근막염 환자는 28만9338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름철인 7월 환자는 4만6183명으로 연중 가장 많았으며, 환자가 가장 적었던 2월(2만8157명)보다 60% 이상 많았다. 휴가철 활동량 증가와 신발 선택이 발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휴가 망치지 않으려면 휴식부터 취해야
이런 레저 시크니스를 겪지 않고 휴가를 온전히 즐기려면 도착하자마자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보다 몸의 긴장을 충분히 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동으로 지친 첫날부터 관광이나 레저 활동 대신 충분한 수면과 휴식,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굳어 있던 근육과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좋다. 휴가는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아니라 몸이 쌓인 피로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목과 허리, 발바닥 통증 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단순한 휴가 후유증으로 넘기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환자들에게 먼저 추나요법으로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준다.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손이나 신체 일부를 활용해 틀어진 척추와 관절의 정렬을 바로잡고 경직된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는 수기치료법이다.
아울러 유독 통증이 심한 부위가 있다면 침·약침 치료를 진행한다. 일례로 한의학에선 족저근막 통증 시 침으로 종아리와 발바닥의 뭉친 근육을 풀어 해당 부위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인다. 여기에 꿀벌 독액 성분을 정제해 병변 부위에 주입하는 봉약침으로 항염 치료에 나선다.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 ⓒ자생한방병원
실제 자생한방병원이 ‘척추신경추나의학회지’에 게재한 임상증례 연구에 따르면, 족저근막염 환자의 통증 숫자척도(NRS; 0~10)가 봉약침 치료 전 10에서 치료 후 2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은 “레저 시크니스로 나타나는 통증은 단순히 휴가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몸에 누적된 피로와 긴장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며 “휴가 중에는 몸의 회복 속도에 맞춰 충분히 쉬는 것이 중요하고, 휴가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방치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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