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비핵심 던지고 미래 키운다…AI·로봇시대 자본 대이동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7.27 12:26  수정 2026.07.27 12:26

SK·삼성·현대차·한화, 미래사업 투자 확대

AI·로봇·방산 중심 자본 재배치 본격화

고금리·지정학 리스크 속 사업 재편 가속

SK실트론 구미1공장 ⓒ연합뉴스

국내 주요 그룹들이 비핵심 사업은 걷어내고 반도체·인공지능(AI)·로봇·방산 등 미래 핵심 사업에 자원을 몰아주는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금리와 지정학적 리스크, AI 투자 경쟁이 겹치면서 무리한 외형 확장보다 핵심 사업 중심의 재편이 경영 화두로 떠오른 모습이다.

SK, 리밸런싱 속 'AI 올인'과 부딪히는 매각 작업

SK그룹은 SK스퀘어의 11번가·원스토어·SK쉴더스 지분 매각,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매각 등을 거치며 비핵심 자산 정리와 계열사 재편을 이어왔다. 다만 지난해 12월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SK실트론 매각은 AI 전략과 충돌하는 사례로 꼽힌다. 반도체 웨이퍼 국내 유일 전문기업인 SK실트론은 당초 몸값이 4조~5조원대로 거론됐으나 AI발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업계에서는 최근 7조원대까지 뛰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태원 회장이 최근 AI 반도체 수요 급증 상황을 "아비규환"에 빗대며 5년 내 메모리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힌 만큼, 핵심 소재사인 SK실트론을 매각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매각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것은 밑에서 결정한다"고 말하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고, 이달 말 SK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매각을 철회하면 신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와, 반도체 전략상 실트론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는 딜레마다.


SK㈜는 전기차 충전기 자회사 SK시그넷에 대해서도 주당 8200원(최근 1개월 가중평균가 대비 20% 이상 프리미엄)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 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 로봇 조직 결집…해외 AI 스타트업 투자도

삼성전자는 로봇을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최근 대표이사 직속 'RX(Robotics eXperience) 사업추진실'을 신설했다. 여러 조직에 흩어져 있던 로봇 인력을 우면동 서울R&D캠퍼스로 집결시키고 구미사업장에는 로봇 데이터 확보를 위한 데이터 팩토리를 짓는다. 현대차그룹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 전략을 이끌었던 이동건 부사장이 로보틱스전략팀장으로 영입된 점도 눈에 띈다.


해외 투자도 병행 중이다. FT에 따르면 삼성은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의 신규 투자 라운드에 약 10억 유로(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AI 데이터센터 냉각기술 기업 주타코어, AI 반도체 기업 그록 등에도 투자한 바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데일리안DB
현대차·한화, 로봇·방산으로 미래사업 베팅

정의선 회장은 최근 미국 AI 서밋에서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로보틱스·AI 팩토리를 아우르는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엔비디아, 웨이모와의 협력이 핵심 축이다. 국내에는 2030년까지 125조원(미래 신사업 50조5000억원), 미국에는 26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새만금에는 로봇 제조와 AI 애플리케이션센터를 아우르는 'AI 밸리'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한화는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에 이어 호주 오스탈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에 올라서며 미국 해양방산 시장 공략의 두 축을 완성했다. 최근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도 공격적으로 매입하며 추가 지분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항공우주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태양광·화학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은 업황 둔화로 신용도 하락 압박을 받자 미국 벤처투자펀드를 1255억원에 조기 매각했고,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과 미국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유동화 등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LG·두산, AI 조력자·로봇 M&A로 존재감

LG는 AI 생태계 조력자 역할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날 LG CNS는 엔비디아·메타 등 48개 기업이 참여하는 AI 신소재 개발 협력체 '커스프AI 머티리얼즈 파운드리'에 국내 IT 대표로 합류했다고 밝혔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인수한 미국 자동화 기업 원엑시아 효과로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90% 늘며 로봇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대미 투자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FT가 기획재정부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는 102억 달러(약 15조원)로 전년 동기의 두 배를 넘어서며 약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대미 직접투자는 257억 달러를 기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이 같은 투자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 아시아 M&A 담당 부사장 수실 바티자는 최근 AI가 전 세계 M&A 거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며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라고 진단했다. JP모건은 강한 현금창출력과 공급망 재편, 미국 시장 접근성 확보 필요성 등을 배경으로 한국 기업들의 미국 M&A가 한층 대형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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