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보유 지분 9.6% 풋옵션 행사
외부 주주 빠지며 로봇 투자·생산·사업화 속도
아틀라스, 2028년 HMGMA 부품 서열 작업 시작
훈련 영상에서 아틀라스가 패스 동작을 훈련하는 장면ⓒ현대자동차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던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에 대한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로봇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사실상 완전히 확보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2021년 인수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기술을 그룹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추가 지분 인수는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던 로봇을 실제 자동차 공장과 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한 ‘사업화 전환점’으로 풀이된다.
16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2020년 현대차그룹과 체결한 계약에 따라 보유 중인 보스턴다이나믹스 보통주에 대한 매도청구권을 최근 행사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보스턴다이나믹스 주주들은 각사 내부 절차를 거쳐 추가 지분 인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처분하는 지분은 약 9.6%로, 인수 금액은 약 5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거래가 완료되면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모두 보유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말 기업가치 11억달러를 기준으로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현대차가 30%, 현대모비스가 20%, 현대글로비스가 10%, 정의선 회장이 20%를 각각 인수하는 구조였다.
이후 추가 투자와 지분 변동을 거치며 소프트뱅크의 보유 지분은 줄었지만 여전히 주요 주주로 남아 있었다. 이번 풋옵션 행사는 당초 계약에 포함된 권리를 소프트뱅크가 행사한 것으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계약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남은 지분을 넘겨받게 된 셈이다.
이번 거래의 핵심은 단순히 보유 지분율을 높이는 데 있지 않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연구개발 중심 기업에서 제조업 기반의 로봇 사업자로 전환하는 시점에 외부 주주가 빠져나가면서 투자와 생산, 기술 제휴, 기업공개 등 주요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해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로봇 사업은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분야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제조 현장에 투입하려면 제품 개발뿐 아니라 안전성 검증과 소프트웨어 학습, 생산 설비 구축, 유지·보수 체계 마련 등에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구동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동안 기술력에 비해 상업화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물류 로봇 ‘스트레치’를 판매하고 있지만 회사의 기업가치를 본격적으로 끌어올릴 만큼 대규모 판매 기반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그룹이 추가 지분 인수를 의사결정과 사업 실행 속도를 높이는 계기로 설명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주주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대신 현대차그룹의 제조 인프라와 투자 계획에 맞춰 제품 개발부터 공장 투입까지 일관된 로드맵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20일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공개한 영상에서 아틀라스가 연구원들의 방해에도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보스턴다이나믹스 유튜브채널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날 곳은 자동차 생산 현장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투입할 계획이다. 공정별 안전성과 작업 신뢰도를 검증한 뒤 2028년부터 부품 서열 작업에 활용하고, 2030년에는 부품 조립으로 업무 범위를 확대한다.
현대차그룹이 아틀라스의 첫 임무로 이 공정을 택한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검증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휴머노이드는 기존 생산라인을 대폭 바꾸지 않고도 사람을 위해 설계된 통로와 작업대를 활용할 수 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제조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자동차 공장은 생산 차종과 사양이 다양해질수록 공정이 복잡해지는데, 기존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위치에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데 특화돼 있다.
인공지능을 적용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작업 조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계획대로 상용화된다면 신차 투입이나 생산 차종 변경 때 설비 전체를 새로 설치하는 부담을 줄이고 공장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효과를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이유도 세계 각지에 대규모 자동차 공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을 시험하고 개선할 실증 현장을 확보할 수 있고, 현대차그룹은 외부 업체보다 먼저 로봇을 생산성 향상에 활용할 수 있다.
HMGMA는 단순한 로봇 도입 공장을 넘어 아틀라스의 첫 번째 대규모 고객이자 시험장이 될 전망이다. 공장에서 축적된 작업 데이터는 다시 로봇의 동작과 인공지능 모델을 개선하는 데 쓰이고, 개선된 로봇은 다른 현대차·기아 공장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로봇 생산 규모도 빠르게 키울 방침이다. 그룹이 제시한 목표는 2028년 연간 3만대 생산 체제다. 아틀라스를 현대차그룹 공장에 우선 적용한 뒤 물류와 건설, 에너지 등 외부 산업으로 판매처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오세욱 현대모비스 로보틱스추진실장 상무(왼쪽), 잭 재코우스키보스턴다이내믹스 아틀라스 개발 총괄이 아틀라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릴 전망이다.
현대모비스는 모터와 감속기, 센서, 제어기 등 자동차 부품에서 축적한 기술을 로봇용 액추에이터와 제어 시스템으로 확장하고 있다. 로봇의 관절과 구동계는 전기차의 모터·전력전자 기술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어 부품 내재화가 진행될수록 현대모비스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11.25%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는 물류센터와 완성차 운송 현장을 로봇 실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물류 로봇 스트레치와 아틀라스를 물류 자동화에 접목하면 로봇 기반 물류 서비스 사업자로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자동차를 판매한 뒤 끝나는 기존 사업 구조를 넘어 로봇의 생산과 판매, 유지·보수, 데이터 관리까지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이 로봇을 자동차 이후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보는 것도 이 같은 확장성 때문이다.
외부 인공지능 기업과의 협력에서도 현대차그룹의 협상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하드웨어부터 대규모 제조시설, 부품 공급망, 실제 작업 데이터까지 확보하고 있다. AI 기업들이 피지컬 AI 기술을 현실에서 검증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스턴다이나믹스와 구글 딥마인드의 협력이다. 양사는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보유한 로봇의 운동·제어 기술에 구글 딥마인드의 로봇용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결합해 아틀라스가 새로운 작업을 더 빠르게 익히고 주변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로봇의 ‘몸’을 담당한다면 구글 딥마인드는 범용적인 ‘두뇌’를 공급하는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자동차 공장이라는 실제 훈련장을 제공할 수 있다. 아틀라스가 HMGMA에서 수집하는 부품의 형태와 무게, 작업자의 동선, 공정별 돌발 상황 등의 데이터는 AI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 된다.
AI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실이나 가상환경에서 얻기 어려운 산업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현대차그룹은 외부 AI 기술을 자사 제조 환경에 맞게 우선 적용할 수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8일 현대차그룹 양재사옥에서 비공개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공장을 가상공간에 구현하고, 아이작 로봇 개발 플랫폼을 통해 실제 배치에 앞서 로봇의 작업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 로봇을 투입하기 전에 디지털 트윈 공장에서 다양한 작업 조건을 학습시키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생산라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도 낮출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구글이나 엔비디아의 기술을 단순히 구매하는 고객이 아니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사업 파트너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조가 자리 잡으면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효과도 현대차그룹 내부의 생산성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공장에서 검증한 아틀라스를 물류와 건설, 에너지, 시설관리 등 외부 산업으로 판매하고 로봇 운영과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HMGMA에 아틀라스를 투입해 공정 단위별 검증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2028년부터 부품 분류를 위한 서열 작업에 투입해 현장 운영을 검증하고 신뢰도를 확보한 뒤 2030년부터는 부품 조립까지 작업 범위를 넓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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