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최대한 자제” 인식 62.9%...폭음 문화에서 '소버 라이프'로
연예인 음주 관련 범죄에 '무관용' 잣대
“과거엔 회식자리에 참석하지 않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면박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그런 분위기가 확연히 사라진 느낌이다. 그 시간을 운동이나 영화를 보는 등 개인의 시간으로 보내면서 삶의 질도 높아졌다.”
13년 차 직장인 A씨는 조직 생활 속에서 체감한 음주 문화의 변화를 이같이 설명했다. 과거 밤늦도록 이어지던 강압적인 술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일상의 균형이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한 개인의 일상적 체감을 넘어 한국 사회를 오랜 기간 지배해 온 집단주의적 폭음 문화가 개인의 절제와 건강을 우선시하는 ‘소버 라이프’(Sober Life)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는 강제적 수단으로 여겨졌던 회식과 만취 문화는 해체되고, 각자의 일상과 신체적 균형을 지키려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주류 라이프스타일로 편입된 결과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주류 인식 조사 결과, 한국 성인 사회에서 술을 경계하고 통제하려는 흐름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적 체질 개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 결과 중 “술은 최대한 자제해야 하는 것”이라는 문항에 동의한 비율은 2021년 52.0%에서 2023년 58.9%, 그리고 2025년 조사에서는 62.9%까지 치솟으며 지속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가정과 일상을 바라보는 기준 역시 엄격해졌다. “나는 내 가족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인식은 2021년 38.8%에서 2023년 40.4%, 2025년 43.1%로 매 조사마다 단 한 차례의 꺾임 없이 연속으로 증가했다. 이는 음주가 개인의 유흥 거리를 넘어 일상의 안정성과 주변인과의 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대중 심리 깊숙이 깔렸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편 “술은 백해무익하다”는 전면적 부정 인식의 경우, 2021년 19.1%에서 2023년 15.7%로 소폭 하락했으나 2025년 조사에서는 다시 20.5%로 반등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술이 개인의 웰니스를 직접적으로 저해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안착했음을 방증한다.
실제 오피스 상권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도 이와 일치한다. 서울 여의도의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김민준(34) 씨는 “최근에는 회식 자리가 시작되면 소주나 맥주를 일괄적으로 주문해 돌리는 대신, 각자 원하는 논알코올 음료나 저도주 하이볼을 따로 시키는 분위기”라며 “무조건 취해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고 회의 뒤풀이처럼 대화 자체에 방점을 두다 보니, 1차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일찍 해산하는 것이 당연한 규칙처럼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통계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3사의 무알코올 맥주 및 RTD(Ready To Drink) 하이볼 매출은 매년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4년 약 81억원 수준에서 2024년 700억원대를 넘어섰고, 2027년에는 946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이 술자리 커뮤니케이션은 즐기되, 다음 날 일상에 지장을 주는 숙취는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실리적 선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6월 30일 경기 여주시 소망교도소에서 가석방 출소하는 가수 김호중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사적 영역에서 술을 스스로 자제하고 조율하는 문화가 정착한 것과 달리,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음주 일탈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워졌다.
과거 한국 사회는 연예인을 포함한 공인의 음주운전이나 취중 스캔들에 대해 “술김에 한 실수”라며 관용을 베푸는 경향이 있었다. 술에 취한 상태를 참작해 주던 정서가 법적 처벌이나 사회적 여론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잇따라 발생한 대형 연예인들과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음주운전 범죄 및 은폐 시도 스캔들을 기점으로 이러한 온정주의는 완전히 파기된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발생한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이다. 김호중은 사고 직후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 뒤, 소속사 관계자를 동원한 ‘운전자 바꿔치기’와 핵심 증거인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폐기를 시도했다. 특히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추가 음주를 감행한 이른바 ‘술타기’ 수법까지 동원된 정황이 드러나며 대중의 공분을 샀다. 최근 징역 2년 6개월 형기 중 다섯 달을 앞당겨 가석방으로 출소한 김호중이 지난 4월 복귀 의사를 밝혔을 당시, 대중은 거센 반발을 쏟아냈다. 과거 일정한 자숙 기간을 거치면 슬그머니 활동을 재개하던 연예계의 해묵은 관행에 대중이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공적 영역의 무관용 잣대는 대중문화계 전반의 복귀 불발 사례로도 확인된다. 지난 2022년 만취 운전으로 변압기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배우 김새론은 2024년 5월 연극 ‘동치미’를 통해 활동 재개를 타진했으나, 복귀 소식이 전해진 직후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결국 출연진 명단에서 삭제되며 하차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음주운전 논란으로 자숙 중이던 배우 곽도원이 국립극장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주연으로 무대 복귀를 시도했으나, 캐스팅에 대한 거센 비난에 직면해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출연진이 전격 교체되며 무산됐다. 마약 투약 혐의로 집행유예 기간을 보내던 중 또다시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가수 남태현 역시 지난해 5월로 예정되었던 음악 페스티벌 복귀 무대와 음반 발매 일정이 취소됐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 대중의 공정성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술이 면죄부가 되던 시대’가 끝난 것”이라며 “사적 영역에서는 절주라는 개인의 주권을 존중하는 대신, 공적 영역의 음주 일탈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혹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구조로 사회적 합의가 전환되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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