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217년은 연거푸 반란들이 일어났다. 서경에서는 고구려의 부흥을 외치며 최광수가 반란을 일으켰고, 개경과 주변의 사찰 승려들은 타도 최충헌을 외치며 들고 일어났다. 전주의 병사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걸 거부하고 돌아와서 관리를 살해하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전주의 병사들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이웃한 나주의 병사들도 동조했는지 출발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대단히 특이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영동정은 동정직 중 하나로 과거에 합격했지만 아직 관직을 받지 못한 관리들을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쳐서 합격했지만 아직 연수를 끝내지 못한 합격자에 해당된다. 영동정은 동정 중에 1등 합격자를 뜻하고 직장동정은 3등을 뜻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자신을 합격시킨 조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정황상 둘 다 지금의 평택시인 진위현 출신으로 보인다. 거기에 같은 동정인 김례까지 가담한다. 이들은 백성들을 모아서 현령의 부인, 즉 도장을 빼앗았다고 나온다.
도장을 빼앗은 그들은 신나게 결재서류를 찍어댄 게 아니라 관청의 곳간을 열고 곡식을 나눠주었다. 그러자 인근의 굶주린 백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삽시간에 큰 세력을 이뤘다. 전쟁통에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세금은 더 내야 하는데 윗사람들은 일을 해결할 능력은 없고, 어떻게든 삥뜯을 생각만 하면 반란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당시 고려 사회가 얼마나 혹독했고, 힘없는 백성들이 굉장히 큰 원한과 울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장대와 동료들은 과거 합격자답게 굉장히 머리가 좋았다. 진위현을 장악한 그들은 스스로를 정국병마사라 칭하고 반란군을 의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웃 고을에 공문을 보내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그리고 빼앗은 창고에 있던 곡식들을 풀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봤던 창덕궁 영화당ⓒ직접 촬영
반란은 명분이 있어서 시작할 수 있으며, 민심이라는 추진력을 얻어야 진행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권자들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반란을 몹시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그래서 반란을 평정한 이후에도 잔혹한 처벌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따라서 반란을 일으키거나 가담한 것 모두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목숨을 내놓고 반란을 시작한 주모자들과는 달리 가담자들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잘못해서 실패하면 자신들은 물론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과거 합격자인 이장대와 이당필, 그리고 김례는 그런 사실들을 곡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채웠다. 그리고 그곳으로 충분했다. 1217년에 온갖 명분을 내세운 반란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는 것은 이 당시의 고려가 얼마나 희망이 없고 고통스러운 시기였는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라고 해도 반란에 섣불리 가담했다가는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조정과 최충헌에 대한 분노,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곡식 앞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이렇게 민심과 지지세력을 모은 그들의 다음 목표는 광주였다. 북상하려고 한 것을 보면 최종 목표는 역시 개경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부흥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도 전에 제압당한 최광수나 최충헌을 타도하기 위해 개경을 공격했지만 사병들에게 밀려난 승려들과는 달리 이장대는 진위현을 장악하고 반란군을 모아서 북상을 감행했다.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낭장 권득재와 산원 김광계를 안찰사 최박에게 보내서 토벌하라고 지시한다. 이들은 광주와 지금의 수원시인 수주의 군사들을 동원해서 반란군을 공격했지만 패배하고 만다. 패배한 정부군은 충청도와 양주도의 군사를 다시 모아서 이장대의 반란군과 전투를 벌인다.
양주도는 지금의 경기도 양주 지역 일대를 뜻한다. 충원된 지역이 더 커졌으니 동원된 병력의 규모도 커졌을 것이다. 늘어난 진압군의 규모는 좋은 세상을 원한다는 진위현 농민들의 꿈을 짓밟기에 충분했다. 진압군의 두 번째 반격은 성공한다. 패배한 반란군은 흩어지고 만다. 이당필과 김례는 체포당하고, 이장대는 상주로 도망치다가 붙잡힌다. 안찰사 최박은 체포한 세 주동자에게 형틀을 채워서 개경으로 보낸다. 반란을 일으킨 그들은 나란히 복주되었다. 보통 복주는 처형되었다는 뜻인데 아마 곱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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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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