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정규 2집 ‘퓨어플로우 파트1’ 발매…“영원한 건 없기에 두려움도 영원하지 않아”
르세라핌이 3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정규 2집 ‘퓨어플로우 파트1’(‘PUREFLOW’ pt.1)은 데뷔 이후 줄곧 두려움과 맞서온 이들이, 이제는 두려움을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앨범이다. 이전의 르세라핌이 “두려움 없이 나아가겠다”고 외쳤다면 이번 앨범은 “두려움을 알아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르세라핌 ⓒ쏘스뮤직
“가수한테 정규 앨범은 특별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정규 1집 때는 그 소중함을 잘 몰랐는데 지난 3년 동안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이번에 준비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좋게 보여드리려고 노력했고, 볼거리도 정말 많은 앨범이 완성됐죠”(홍은채)
“이번 앨범 주제가 나오기 전부터 저희끼리 지금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얘기해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던 감정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두려움이었어요. 저희가 가진 마음가짐도 비슷했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더라고요. 그렇게 진솔하게 나눈 대화들이 앨범의 주제가 되고, 앨범명으로도 발전한거죠.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확실해진 게 있어요. 두려움은 사랑의 증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간관계에서도 ‘나만 진심인가’,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그게 마냥 부정적인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만큼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멤버들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더 끈끈해졌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결국 내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는 증거라고 느꼈어요”(허윤진)
타이틀곡 ‘붐팔라’(BOOMPALA)는 그런 두려움을 축제처럼 풀어낸 곡이다. 글로벌 히트곡 ‘마카레나’를 샘플링해 라틴 리듬과 반야심경에서 받은 영감을 함께 녹였다. 후렴구에 ‘마카레나’의 메인 비트가 깔리는 만큼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멤버들은 곡의 의도와 장르적 맥락을 설명했다. 익숙한 리듬이 들어간 만큼 접근성이 높아졌고, 동시에 동양적인 사유와 르세라핌의 메시지가 더해지며 새로운 색이 생겼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받은 영감도 곡의 중요한 축이다. 허윤진은 ‘공’(空)과 ‘무’(無)의 개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 르세라핌이 이번 앨범에서 말하고자 한 두려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저희가 ‘붐팔라’의 메시지에 맞게 신나고 즐거운 축제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장르가 라틴 쪽이다 보니까 리듬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실제로 샘플링한 구간은 마카레나의 특정 부분이고, 그 안에 저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퍼포먼스를 더했어요. 반야심경에서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 없이 존재하고, 붙잡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실체도 없다는 가르침이 있잖아요. 거기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저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느꼈고,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외로움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인드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이 곡의 장점이에요”(허윤진)
“‘붐팔라’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있는 단어는 아니에요. 주문을 걸듯이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즐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멜로디에서도 계속 주문처럼 반복돼요. 저는 그게 이너피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고, 지금의 저희 마인드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사쿠라)
르세라핌 카즈하 ⓒ쏘스뮤직
곡의 가사가 모두 영어인 점도 특징이다. “데모를 받았을 때는 다 스페인어였어요.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었는데, 가사를 맞춰보다 보니까 영어가 곡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리는 언어라고 느꼈어요. ‘붐팔라’에는 두려운 감정을 인정하고 지금을 즐기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영어는 전 세계에서 많이 쓰이는 언어니까 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거죠”(카즈하)
르세라핌이 말해온 ‘독기’의 형태도 달라졌다. 데뷔 초의 독기가 앞으로 달려가는 힘이었다면, 지금의 독기는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단단함을 보여준다.
“독기의 형태는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독기가 꼭 뾰족하고 공격적인 것만은 아니잖아요. 누군가 ‘넌 할 수 없어’라고 할 때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조용한 확신일 수도 있고,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지키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독기일 수 있어요. 어쨌든 독기는 단단한 마음을 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붐팔라’에도 두려움을 대하는 또 다른 형태의 독기가 존재하고요”(허윤진)
“데뷔 때는 정말 열심히만 할 수 있었던 데서 나오는 독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양한 무대 경험을 하면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즐길 줄 알게 됐어요. 지금은 무대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데서 나오는 독기도 있더라고요”(사쿠라)
르세라핌 허윤진 ⓒ쏘스뮤직
인터뷰 현장에서 허윤진은 질문을 받고 긴 고민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는 평소 사유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태도다. 실제로 허윤진은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며 자신만의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법도 말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면 사람을 찾아가고,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며 시야를 넓히려 한다.
“맞아요. 저는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성격이에요. 생각에 너무 잠긴다는 걸 느끼면 ‘지금 내 세계에 갇혀 있구나,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을 찾아가거나 대화 상대를 찾거나, 그냥 밖에 나가서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사쿠라 언니를 찾아가서 깊은 대화를 하고 고민을 털어놨는데, 해답을 찾아주지 않아도 털어놓는 것만으로 내 세계가 다가 아니구나 느끼게 되더라고요. 또 글을 쓰거나 기록을 남기면서 생산적으로 움직이려고 해요”(허윤진)
멤버들도 저마다의 두려움 해소법을 소개했다. 사쿠라는 잘되고 있을 때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편이라고 했다. 좋은 시기가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감정을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바꿔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카즈하에게 두려움은 새로운 도전과 맞닿아 있었다. 연습생 기간이 길지 않았던 만큼 한계나 벽을 마주할 때마다 불안도 컸다고 털어놨다.
“어떤 한 순간이라기보다 매 순간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붐팔라’ 정신으로 생각하다 보면(웃음)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만 남은 거잖아요. 그래서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멋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카즈하)
르세라핌의 앨범은 늘 이전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이번에는 ‘사키’(Saki)가 그 역할을 한다. 미니 4집 ‘크레이지’(CRAZY) 수록곡 ‘1-800-hot-n-fun’의 가사에 나오는 “사키는 어딨어?”(Where the heck is SAKI?)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구조다.
“일부러 심어놓은 건 아닌데 저희가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이전 곡에서 사키가 어디 있냐고 찾았다면 이번에는 ‘그래서 사키가 대체 누군데?’에 대해 설명하는 곡이에요. 파티에 있는 사람들이 사키에 대해 입소문을 퍼뜨리고, 루머와 빠르게 타는 입소문을 재미있고 위트 있게 표현했어요”(허윤진)
코첼라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도 멤버들은 피하지 않고 답했다. 어떤 팀에게든 쉽지 않은 시기가 올 수 있고,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지다.
“그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더 노력하고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책임 의식도 생겼어요. 저희끼리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지 대화를 많이 했고요. 지금의 저희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좋은 과정이라고 느껴지고, 그런 경험들이 이번 앨범으로도 이어졌다고 생각해요”(허윤진)
르세라핌은 아직도 자신들의 색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톱 걸그룹으로 분류되는 위치에 올랐지만, 다음에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은 계속된다.
“앨범을 낼 때마다 ‘다음에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활동하다 보면 신기하게 하고 싶은 말이 또 생기고, 저희 생각도 달라져요. 그래서 계속 앨범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아티스트든 자기 색깔을 찾는 건 평생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르세라핌다운 건 뭘까’를 고민하면서 계속 르세라핌다운 것을 만들려고 합니다”(허윤진)
르세라핌 홍은채 ⓒ쏘스뮤직
이번 활동은 김채원이 건강 문제로 함께하지 못하게 됐지만, 멤버들은 그 빈자리를 채우며 긴 호흡으로 함께할 날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정규 앨범인 만큼 5명이 다 같이 정성을 갖고 애정을 담아서 준비한 곡인데,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저희도 있고 채원 언니도 있어요. 하지만 언니의 빈자리를 잘 채우는 게 저희 몫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일정도 많기 때문에 길게 보고, 빨리 함께할 수 있도록 지금은 잠시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열심히 ‘붐팔라’ 정신을 많은 분들께 전파하겠습니다”(홍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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