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서 ‘드론 혈투’ 벌이는 美·中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6.08.02 07:08  수정 2026.08.02 07:08

美, 에베레스트 드론 물자 운송권 따내기 위해 총력전

‘극한 환경’ 에베레스트, 기술력 검증하는 상징적 무대

中 DJI, 현지서 보급품 운송 등 수행하며 선점한 상태

네팔, 美 드론 사용허가 않겠다며 DJI 드론 허가 철회


지난 5월 중국 드론 업체 DJI의 장거리 운송 드론 ‘EV50’ 모델이 에베레스트 상공을 시험 비행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드론(무인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에베레스(Everest·티베트명 초모랑마·중국명 珠穆朗瑪峰)에서 펼치는 드론 전쟁은 ‘세계 최고봉’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기술력을 검증하는 ‘시험’을 통해 근미래(近未來) 등산지원뿐 아니라 재난구조와 물류, 지도제작, 군사안보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미·중 세계 드론 시장과 기술 주도권 다툼의 축소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네팔 에베레스트의 물자 운송권을 따내려는 자국 드론 업체 프리플라이 시스템즈(Freefly Systems)의 산업용 드론을 홍보하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중국과 네팔 국경에 걸쳐 자리잡고 있는 에베레스트는 남사면이 네팔, 북사면이 중국 영토에 각각 속한다.


세르지오 고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앙·남아시아 특사 겸 인도 주재 미국 대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로 만든 미국산"이라며 프리플라이 시스템즈의 산업용 드론을 직접 소개하고 발로 뛰며 널리 홍보하고 나섰다. 프리플라이 시스템즈의 본사는 미 워싱턴주 우딘빌에 있다.


미국은 올해 처음으로 미국산 고산 물자 운송 드론의 성능 검증에 나섰지만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자국 영토인 에베레스트 북사면에서 드론과 관련한 다양한 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 에베레스트 남사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네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준비하고 있는 산악인들. ⓒ 로이터/연합뉴스

고르 대사는 지난 5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직접 방문해 프리플라이 시스템즈의 화물용 드론인 ‘울트라 X 2세대’(Ultra X Gen 2)를 소개하고 “미국 혁신의 강력한 상징”이라며 “미국과 네팔이 히말라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간곡한 요청에도 네팔 정부는 ‘드론 비행 절차’와 ‘안보상 민감성’을 이유로 들어 허가가 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은 기어코 네팔 당국의 물자 운송 드론의 승인을 받아내 시험 비행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이 주목하는 시장은 드론을 활용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고지대 캠프를 오가며 보급품을 운반하고, 등반객들이 남긴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업이다. 네팔 드론업체 에어리프트 공동 창업자인 밀란 판데이는 “프리플라이 드론은 중국 드론보다 물자 운송 능력은 떨어지지만 기체가 가벼운 덕분에 긴급 구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야심차게 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중국 드론업체 DJI(大疆創新)가 이미 현지에서 보급품 운송과 쓰레기 수거, 지형 측량 등을 수행하며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무거운 중량의 물체를 운반하는 산업용 드론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며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DJI는 2024년부터 네팔 에어리프트와 협력해 등반가, 셰르파(등반 안내인)를 지원하고 있다.


깊은 크레바스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빙하, 잦은 눈사태 위험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등반구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쿰부 빙폭. ⓒ BBC방송/뉴시스

이들 두 회사의 협력으로 배치된 DJI의 드론은 5334m 고도에 있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6065m 지점으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등반가들이 남긴 쓰레기를 수거해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올해 봄에 배치된 DJI의 산업용 드론 '플라이카트(FlyCart) 100'은 에베레스트 네팔 남사면과 중국 북사면에서 영하 15도부터 영상 5도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적재중량, 전송거리, 초정밀측위(RTK·위치 오차를 센티미터 단위로 줄이는 기술)를 활용한 위치 정확성 등을 검증했다.


플라이카트 100은 해수면 기준 최대 100kg을 운송할 수 있는 중량물 운송 드론이다. 시험 결과 플라이카트 100은 최대 47kg 화물을 싣고 해발 6300m 이상까지 비행했다. 베이스캠프와 캠프 1 사이에서 운송한 물자와 폐기물은 모두 1만73kg으로 이 중 등반 물자가 7215kg, 수거 폐기물이 2858kg이었다. 편도 비행시간은 8분에 그쳤다. 이 구간은 셰르파가 6~8시간 도보로 운반해야 했던 곳이다.


DJI는 오는 2027년 네팔등반협회의 ‘제로 웨이스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기 별로 한 번씩 에베레스트 고지대의 베이스캠프에서 폐기물 1만kg를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란 환경을 위해 쓰레기 생산을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을 강조하는 사회적 운동이다. 크리스티나 장 DJI 대변인은 “DJI는 셰르파와 전 세계 등반가들을 위해 세계 최고봉을 더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으로 만드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DJI의 플라이카트 100이 히말라야 상공에서 물자를 실어나르고 있다. ⓒ DJI 홈페이지 캡처

DJI 드론이 현재 에베레스트 현지에서 활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론 배치 허가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네팔 정부는 봄 등반 시즌이 시작되는 올해 3월 DJI 드론 사용을 허가했다가 4월 이를 취소했다. WSJ이 확보한 4월30일자 서한에 따르면 네팔 내무부는 미국 드론의 비행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며 DJI 드론 사용허가도 철회했다.


하지만 등반 캠프 관계자 등이 강하게 항의하자 네팔 정부는 5월 DJI 드론 사용을 3개월 동안 조건부로 허용했다. 당시 네팔 정부는 중국과의 국경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허가받은 구역 밖에서는 촬영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에베레스트는 중국과 네팔 국경에 위치해 있고, 중국이 최근 네팔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온 점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 육군 소장 출신인 전략 분석가 비노즈 바스냐트는 "미·중의 드론 사용을 모두 금지한 네팔 정부의 초기 결정은 전략적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며 "중국 DJI 드론 사용을 다시 허용한 것은 전략적 중립성과 실질적 필요성의 긴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팩트 엠알(Fact. MR)

DJI가 에베레스트와의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창업자 왕타오(汪滔)와 지도교수였던 리쩌샹(李澤湘)이 자체 개발한 비행제어 시스템을 탑재한 무인 헬리콥터를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시험했다. 이듬해에는 ‘에이스 원’ 비행제어 시스템을 해발 4700m 이상의 고도에서 운용했고, 2022년에는 매빅3로 해발 8848m의 정상부를 촬영하기도 했다.


에베레스트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된 것은 세계 최고봉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상징적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는 깊은 크레바스(Crevasse·틈), 빙폭(Icefall·冰瀑) 등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고 높이에 따라 강한 바람과 산소의 양과 온도가 급격히 달라지는 극단적인 환경을 갖춘 곳이다. 탁 트인 자연 환경인 덕분에 드론을 띄우고 운전하는 데도 큰 제약이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형 화물을 안정적으로 운송할 수 있다면 앞으로 험준한 산악·도서(島嶼)지역의 물류는 말할 것도 없고 재난구조와 군사작전 등 최악의 조건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만큼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는 최고 수준의 드론 기술력을 입증하는 셈이다. DJI가 20년 가까이 에베레스트를 기술력 검증 무대로 삼아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에베레스트 등반과정에서 위험천만한 '쿰부 빙폭‘ 등을 건너며 산소통, 식량, 장비를 나르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은 셰르파들의 희생에 의존해 왔다. 쿰부 빙폭은 깊은 크레바스와 끊임없이 움직이는 빙하, 잦은 눈사태 위험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등반구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자료; 중국민항국/중상(中商)산업연구원

이 때문에 미 정부는 한 발 앞선 DJI를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하며 견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국 내 신형 외국산 드론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는 중국산 드론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 세계의 DJI 드론이 시장 90%가량 점유하며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중국 당국이 항공기 운항을 조작하거나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측 주장이다.


DJI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것이며 보호 무역주의의 일환이라고 반박한다. 네팔과 중국 국경이 걸쳐 있는 에베레스트는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에 ‘의미’가 있는 곳이다. 티베트 반군은 냉전 시기인 1960년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에베레스트 서쪽의 산악지대인 무스탕을 거점으로 중국에 맞서 티베트 지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도 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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