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평일에도 붐빈 창신동 완구 거리…‘말랑이’ 찾아온 2030 [말랑한 어른들①]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7.22 14:01  수정 2026.07.22 14:01

틱톡·쇼츠·ASMR로 먼저 보고, 직접 만져보려 완구거리로

비가 쏟아지던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 거리. 120여 개의 점포가 즐비한 좁은 골목은 평일 낮이었음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우산을 접고 매장 안으로 들어선 손님들은 말랑이(쫀득한 실리콘 등이 채워진 몰캉한 촉감 완구)와 스퀴시(스펀지 소재로 만들어져 복원이 가능한 완구), 왁뿌볼(말랑한 점토 겉면을 왁스로 코팅해 굳힌 완구)이 놓인 진열대 앞에 오래 머물렀다. 어린이 손님보다 20대 여성들이 눈에 띄었고, 친구와 함께 온 남성 손님도 적지 않았다. 중국인 관광객 등 외국인 손님도 매장 곳곳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며 제품을 고르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 거리 전경.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진열대 중심은 말랑이와 스퀴시였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말랑한 공 모양 완구, 캐릭터가 그려진 스퀴시, 누르고 주무르는 주물럭볼, 깨뜨리는 재미를 앞세운 왁뿌볼, 키캡과 키링류가 매대 앞쪽을 차지했다. 일부 손님들은 제품을 집어 직접 눌러보고, 다른 매장과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다시 골목으로 나섰다. 거리 곳곳에서는 “리락쿠마 모양의 말랑이 어딨냐”고 묻거나 원하는 캐릭터 제품을 찾아 매장을 옮겨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완구 거리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손으로 촉감을 느끼는 이 같은 장난감들이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고, 이런 내용들이 SNS를 통해 소비됐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최근 몇 달 사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완구 거리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승진완구 직원 A씨는 “작년과 비교하면 손님이 3~4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스퀴시, 슬라임, 말랑이, 키캡 같은 제품을 찾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확실히 20~30대 여성 손님이 많아졌고, 남성 손님도 보인다”며 “대부분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온다”고 말했다.


A씨는 유행이 온라인에서만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 방문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그는 “비가 오지 않는 주말에는 오픈런하듯 손님이 몰리고, 평일보다 훨씬 사람이 많다”며 “근처 동묘에서 구제 옷을 보러 오는 흐름과도 맞물려, 동묘에 왔다가 창신동 완구 거리까지 들르는 손님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유행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3~4개월째 이어지고 있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창신동 완구 거리 내 상가 전경. ⓒ전지원 기자

다른 상인은 유행의 이면도 짚었다. 오뚜기 상무완구 직원 B씨는 “말랑이와 스퀴시가 유행하면서 원래 팔던 장난감은 거의 안 팔린다.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다 보니 완구 거리 매장들이 다 유행을 따라 말랑이와 스퀴시 위주로 진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출 증가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B씨는 “작년보다 매출이 늘긴 했지만, 오는 손님 모두가 많이 사가는 것은 아니다. 몇몇 손님이 한 번에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람이 많아 보인다고 무조건 많이 팔린다고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행으로 시작했지만 스테디 상품처럼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외국인 손님도 눈에 띄었다. 상인들은 외국인 관광객이 원래부터 완구거리를 찾는 편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최근에는 SNS와 영상 콘텐츠를 보고 특정 제품을 찾는 경우도 생겼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 여행 중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찾은 아비가일(26) 씨는 유튜버 ‘라이옹’의 자율 감각 쾌락 반응(ASMR) 영상을 보고 촉감형 완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영상으로만 보던 왁뿌볼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직접 와봤다”고 말했다.


아비가일 씨는 한국 완구 거리의 가격과 접근성도 매력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에는 이런 완구 거리가 거의 없고, 비슷한 제품을 찾더라도 15달러(약 2만 2000원) 정도에 팔리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서는 4000원 안팎에 살 수 있어 여행 온 관광객들도 가볍게 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틱톡 유행은 미국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제품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다기보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는 것 같다”며 “현장을 보니 20‧30대도 많고, 확실히 어른들이 좋아하는 제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찾은 사람들. ⓒ전지원 기자

한국인 20대 소비자들도 SNS를 주요 방문 계기로 꼽았다. 전남 순천에서 서울 여행을 왔다가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찾은 황채린 씨는 “SNS에 계속 떠서 궁금해 왔다”며 “그냥 생각 없이 만지기 좋고, 무엇보다 다들 사니까 따라 사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층도 적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찾은 강승한(23·서울 노원구) 씨는 촉감형 완구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가볍게 만지기 좋고, 갖고 다니기도 편하다. 어디서든 주물거리며 스트레스 완화가 되니까 어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강 씨는 유행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봤다. 그는 “요즘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말도 있어서 오래갈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요즘은 직접 만들어 쓰는 DIY 방식도 보인다. 그런 식으로 스테디화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창신동 완구 거리에서 만난 상인과 손님들은 공통적으로 SNS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상인들은 “틱톡, 쇼츠,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온다”고 말했고, 소비자들은 “계속 떠서 궁금했다”, “영상으로 보던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싶었다”고 했다. 제품 자체의 기능보다 영상으로 먼저 소비되고, 이후 실제 촉감을 확인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하는 흐름이 만들어진 셈이다.


말랑이와 스퀴시는 어린이용 완구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창신동 완구 거리에서는 성인의 호기심과 감각 소비를 자극하는 물건으로 팔리고 있었다. 누르고, 주무르고, 깨뜨리는 행위는 오래 갖고 노는 장난감보다 짧고 즉각적인 반응에 가깝다. 비 오는 평일 낮에도 매장을 채운 20·30대의 모습은 장난감 소비의 주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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