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기록 지워주면 뭐하나…'신용사면' 남발 후폭풍 [기자수첩-금융]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입력 2026.07.31 07:00  수정 2026.07.31 07:00

체력 없이 신용만 복원 '일회성' 그쳐

형평성·자생력 놓친 구제책

'자립 패키지' 지원 병행돼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부가 '포용금융' 기조 아래 추진한 대규모 신용회복 지원, 이른바 '신용사면'이 다시 검증대에 올랐다.


연체 이력이 삭제된 6명 중 1명은 불과 석 달 만에 또다시 연체의 늪에 빠졌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NICE평가정보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사면 수혜자는 개인과 개인사업자를 합쳐 292만8000명이다.


이 가운데 16.5%인 48만3000명은 올해 1분기 신규 연체가 발생했다.


신용사면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000만원 이하를 연체했지만 지난해 말까지 이를 모두 갚은 차주의 연체 이력을 삭제해 신용점수를 회복시켜 주는 제도다.


정부는 '포용금융'을 핵심 기조로 내세우며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활동 복귀를 돕기 위한 방안으로 제도를 추진했다.


이번 조치로 차주들의 신용이 개선되면서 개인 3만8000명이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 받았고, 11만명은 은행 신규 대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제도권 금융 재진입이라는 정책 명분과 취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연체 기록 삭제만으로는 취약차주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용 점수는 끌어올렸을지 몰라도 빚을 감당할 '체력'까지 회복되진 않았다.


결국 상환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차주들이 다시 대출을 받아 연체를 거듭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셈이다.


금융권이 이번 조치를 '일회성 시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자리와 연계한 안정적 소득원 확보를 돕고, 맞춤형 채무관리 컨설팅과 금융 역량을 키워줄 교육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제공해 실질적인 상환 능력을 끌어올리는 등의 지원책이 병행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본적인 소득 개선이나 상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연체는 언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와 금융 시스템 왜곡 문제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빚을 제때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견디면 정부가 해결해 준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만 남았다.


연체 기록은 단순한 낙인이 아니라 금융사가 차주의 위험을 판단하는 핵심 정보로 활용된다.


차주의 위험을 측정하는 지표인 연체 이력을 일괄 삭제하면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도 어려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취약계층 전체의 금융 문턱을 더 높이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48만명 재연체'라는 뼈아픈 숫자는 단순히 연체 이력을 지우는 작업만으로는 금융 취약계층을 자립시킬 수 없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요한 건 차주가 다시 돌아온 금융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버틸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을 다잡고 근본적인 상환 능력 개선을 끌어낼 고민이 빠진 구제책은, 결국 '일회성 선심성 지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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