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선창한 거국적 분노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27 07:01  수정 2026.05.27 07:01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뉴시스

일국의 대통령이 민간기업, 그것도 커피 전문점의 홍보방식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온 국민 앞에서 격렬하게 비난을 가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사또 재판을 한 셈인데, 대통령이면 고을사또와는 격이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직무의 차원에서 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의 관심사와 그 처리 범위와 방식 등일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 언론뉴스 등에서 지적됐다고 해서 당장 파르르 떨며 분노의 말과 저주의 언어를 퍼붓는 것은 사또로서도 금기시해야 할 언행이다. 하물며 대통령으로서야.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마케팅 이벤트가 이 대통령의 분노를 사서 벌어진 ‘탱크데이 대소동’을 보는 느낌이 그렇다. ‘책상에 탁’ ‘탱크데이’ ‘5/18’ 등의 카피가 광주민주화운동 열성지지자들의 분노를 샀는데 그 감정이 이 대통령에게까지 급속히 확산돼 격렬한 공명현상을 일으켰다고 하겠다.


정부의 기업 응징 분위기 광속 확산


이 대통령은 ‘5․18’ 당일 X(엑스)에 스타벅스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역사적인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광주 희생자들과 광주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5·18 탱크데이’ 이벤트라니….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보도 기사의 인용부분을 재구성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즉각 스타벅스코리아 손정현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을 경질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 20일 청와대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그는 다시 탱크데이 이벤트를 가리키며 “광주 5‧18 또는 피해자들에 대한 참혹한 표현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나. 어떻게 인간사회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인륜과 도덕이라는 것도 있다”고 격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23일에는 다시 X를 통해 스타벅스코리아를 심하게 힐난했다. 같은 날 민주당 정진욱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공유하면서 “세월호 참사 추모일(4월 16일)에 싸이렌 이벤트 개시라니.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인두겁을 쓰고서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들이 벌이는 짓은 저질 장사치의 막장 행태가 아니라 악질 장사치의 패륜 행위 같다”고 규정했다.


스타벅스코리아 홍보 관계자 및 책임자의 생각과 감각이 많이 모자랐던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광고 담당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먼저 격분하고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각료들이 그 분노를 공유했다.


삽시간에 분노가 전 정부적으로 확산되고 빛의 속도로 불매운동과 각종 계약 파기 등이 선언됐다. 시민단체들의 고발에 따라 경찰은 대단히 신속하게 정용진 신세계 그룹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및 유족 등에 대한 모욕,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아무리 봐도 기업의 마케팅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 인 것 같은데 이처럼 거국적 분노가 표출되고 징벌이 가해지는 게 맞는지 의아해진다. 아무리 광주민주화운동,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세월호 참사가 성역화됐다고 해도 그게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다. 국민들이, 아픈 기억 속에서도 마음으로 추모하고 기리는 날이어야지 국민 징벌의 꼬투리로 쓰여서야 되겠는가.


지방선거 제단에 스타벅스 올렸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26일 오전에 탱크데이 대소동에 대해 다시 사과하고 해당 광고 기획에 고의성을 찾지 못했다는 그룹 감사팀의 감사 결과를 밝혔지만 무슨 대역죄인이나 된 것 같은 행색이다. 무신경 무감각도 죄라면 죄이겠으나 국사범 다루듯 온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까지 알도록 조리돌림 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와 사회 일각의 분위기는 민망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것도 정부·여당 측의 6․3지방선거 및 보궐선거의 분위기 전환용 ‘분노 소동’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이를 명분으로 한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안’ 발의(4월 30일)로 인해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그게 선거 현장에 그대로 반영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 대통령이 특검법안 국회 본회의 처리를 만류하는 시늉을 했지만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선거를 넘기고 하라는 뜻으로 읽혔다. 국민이 그 속셈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국민의 분노를 자극할 만한 핑계가 저절로 굴러들어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분노의 표적이 됐다. 정 회장은 지난 2021년 말~2022년 초 SNS에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 ▲“난 공산주의가 싫다” ▲“좌우 없이 다 같이 멸공을 외치자”는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올렸었다. 논란이 커지자 사과를 하기도 했는데 그런 이미지가 좌파 정부의 조준선에 제대로 오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자연스럽다.


저의가 있어 보이면 반발이 있게 마련이다. 정용진 회장으로서는 난처한 국면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통령 선창으로 정권적 차원의 신세계 짓밟기에 대해 사회 일각에선 반감을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보도다. 스타벅스 구매 인증, 텀블러 인증, “오늘은 일부러 스타벅스 간다”, “탈벅 안 한다”, “멸공 커피”, “5·18이라고 탱크도 못 쓰느냐” 등이 그 예다.


논란의 중심이 된 제품은 ‘SS 시그니처 탱크 텀블러 503ml’였는데 스타벅스는 이미 지난 2023년에 이를 출시했었다. 탱크는 캐터필러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포신을 과시하는 무기 탱크가 아니라 물탱크의 그 탱크다. “책상에 탁”을 박종철 고문치사와 연계시키는 그 상상력이 오히려 소름 돋는다. 튼튼한 탱크 텀블러이니까 쏟아질 염려가 없다. 책상에 탁 놓아두고 일하면 멋있겠다는 MZ적 언어 같은데?


스타벅스. ⓒ뉴시스
남의 로고까지 시비 걸고 나서다니


사이렌(Siren)은 스타벅스가 1971년 창업 당시부터 사용한 로고다. 처음엔 ‘쌍 꼬리 인어’였으나 점점 바뀌어 얼굴 형태의 아이콘으로 정착됐다. ‘세이런’, ‘사이런’ 비슷한 발음인데 우리나라에선 일본의 영향으로 사이렌이 됐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을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전해지고 있다. 회사의 근거지인 시애틀이 커피 원두를 실은 배가 들어오는 항구인데다 사람들을 홀리는 커피 향과 커피 문화를 이미지화하고자 해서 스타벅스 창업자들이 이를 로고로 택했다고 한다.


오래도록 아무 거부감 없이 쓰였던 사이렌 로고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 상상력이 어이없다. 정 의원이 그랬다고 해서 대통령이 덩달아 ‘인두겁’ 운운하며 화를 냈다는 데까지 이르면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탱크 텀블러와 ‘책상 위에 탁’으로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한 건 보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성급하고 격앙된 판단과 반응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대통령은 ‘맨 뒤에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남들이 다 말하게 한 다음에 정제된 언어로 결론을 짓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인터넷 기사의 댓글, SNS의 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위험하다. ‘닥치고 공감․공분’의 리더십이 고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사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고 판단해서 개선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장점이 아니라 포퓰리스트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구름 속에서 예수나 석가모니를 쉽게 본다. 온갖 형상도 구름에서 찾아낸다. 구름만이 아니다. 바위나 나무 등에서도 쉽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나 동물을 본다. 파레이돌리아(Pareodolia) 혹은 착각상(錯覺像) 현상이다. 집단적 파레이돌리아도 있을 수 있다. 스타벅스 대소동은 대통령의 선창으로 조성된 파레이돌리아 현상이 집단적 심리 전염으로 이어진 인상이다.


이 대통령은 갈수록 정의와 도덕의 화신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그 많은 형사적 혐의를 원천적으로 지워버리려는 정부·여당의 공소 취소 기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흠을 찾아내 질타하는 언어는 아주 격렬하고 매몰차다. 도덕적 자기 정당화, 인지부조화, 도덕적 이원화 심리의 표출인가 하는 느낌도 있지만 어쨌든 이 대통령의 불의에 대한 분노가 격해질수록 정치의 전도는 어두워진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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