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물·스릴러·SF의 뒤엉킨 폭주…‘호프’가 만든 광기와 혼란 [칸 리포트]

데일리안(프랑스, 칸)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20 15:44  수정 2026.05.20 15:45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는 쉽게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다. 스릴러 같다가 괴수물이 되고, 어느 순간 다시 추격 액션의 얼굴을 뒤집어쓴다. 장르를 정의하려는 순간 영화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낯선 혼란스러움이 반갑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배경은 작은 마을 호포항이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시골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알고, 대부분 친척 관계로 얽혀 있다. 폐쇄적이고 평화롭던 마을의 일상은 어느 날 기괴하게 훼손된 소 사체가 발견되면서 무너진다.


호포항 파출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사건을 쫓기 시작하고, 범석의 사촌이자 마을 사냥꾼 무리를 이끄는 성기(조인성 분)와 청년들은 원인을 찾아 숲으로 향한다. 맹수의 습격 정도로 여겼던 이들이 마주한 건 인간이 이해 가능한 영역 밖의 존재다. 벽을 그대로 부수고 돌진하고, 주민들을 날려버리거나 자동차를 통째로 집어던지는 정체불명의 존재 때문에 호포항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거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한다.


특히 영화 초반 약 40분은 범석이 정체 모를 무언가를 추적하고, 또 그 존재로부터 도망치는 과정만으로 밀어붙인다. 영화는 왜, 무엇이, 어디서 같은 질문에 쉽게 답을 해 줄 생각이 없다. 이에 관객 역시 범석과 같은 상태로 끌려간다. 그런데도 이 긴 추적은 전혀 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이 더 커진다. 여기서 나홍진 감독은 정보를 설명하는 대신 통제한다. 관객에게 보여줄 것과 숨길 것을 끝까지 계산하면서 불안을 증폭시킨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참상이 어두운 밤이 아니라 대낮에 벌어진다는 점이다.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과 동물의 사체, 박살 난 차량, 사방으로 흩어진 건물 잔해는 피와 괴물의 점액, 땀 냄새가 스크린 밖까지 번져 나오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16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호프'는 단 한 번도 멈칫하지 않는다. 한국형 SF에 '매드 맥스'(Mad Max)식 광기와 추격 에너지를 밀어 넣은 듯한 영화인데, 이를 나홍진 감독 특유의 집요함으로 끝까지 끌고 간다. 단순히 속도감만 빠른 작품이 아니다. 관객을 끊임없는 불안 속으로 밀어 넣고, 다음 장면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며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긴장감만으로 질주하지 않는다. 폐쇄적인 시골 공동체 특유의 생활감과 인물들 사이의 능청스러운 농담, 어딘가 B급 정서가 섞인 블랙 유머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며 숨통을 틔운다. 웃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비명을 삼키게 만드는 리듬감 역시 '호프'가 가진 독특한 에너지다.


초반부를 사실상 홀로 끌고 가는 황정민의 장악력이 압도적이다. 범석은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끝내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인물인데, 황정민은 그 혼란과 집념을 쉼 없이 밀어붙인다. 관객 역시 그의 숨소리와 발걸음을 따라 미지의 존재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간다.


그동안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사랑 받았던 조인성은 나홍진의 손에서 거칠고 야생적인 사냥꾼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대낮의 숲속을 가르는 조인성의 거침없는 말타기와 총기 액션은 날 것의 본능 그 자체를 보여준다.


성애 역을 맡은 정호연의 첫 등장 역시 강렬하다. 미지의 존재 앞에서 두렵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는 성애는 거친 욕설과 함께 총을 발사하며, 뤼미에르 대극장의 첫 번째 환호와 탄성을 이끌어냈다.


CG 표현을 두고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기술적으로 아쉽다는 반응도 분명 존재한다.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이 구현한 외계 존재들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익숙한 다른 크리처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흥미로운 건 이런 호불호 자체가 오히려 영화의 화제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압도됐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과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두 결국 '호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거 '곡성' 개봉 당시처럼, 영화 밖에서도 끝없이 해석과 논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10년 만에 돌아온 나홍진 감독의 여전한 파괴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호프'가 칸 경쟁 부문에 초청돼 뤼미에르 대극장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인상적이다. 비교적 정적이고 차분한 작품들이 많았던 올해 경쟁 부문 안에서 '호프'는 유독 거칠고 육체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현지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렸지만, 적어도 홍경표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이미지와 초반부의 긴장감에 대해서만큼은 이견이 많지 않았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객석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환호와 당혹, 감탄과 혼란이 한 공간 안에 뒤섞였다. 반응은 끝내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호프'라는 영화가 가진 힘이다. 러닝타임 1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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