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장 개입에 혼란만 심화
대책 피해는 돈 없는 서민만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걸려 있다. ⓒ뉴시스
“정부가 주택시장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지금도 없는 전월세 물량이 더 줄어들 텐데요.”
지난 12일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유예 대상 주택을 세입자가 있는 모든 주택으로 확대한 후 한 부동산 전문가가 한 말이다. 세입자가 있는 주택이 거래되면 해당 주택에 거주하던 임차인은 계약 종료와 동시에 새 집을 구해야 해 또 다른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동대문구에서 보증금 7억원에 세입자가 있는 집이 거래되면 전세 계약 만료와 동시에 새 집을 구해야 한다. 이 경우 수요자는 매매와 전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는 전세 수요를 매매로 옮기려는 듯하다. 실거주 유예 대상을 무주택자로 제한한 만큼 이번 대책에 따라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이 개선됐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전월세를 살던 무주택자가 시장에 나온 주택을 가져가는 구조라 전월세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빠지는 효과”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전월세 매물이 줄어들면 새로 주택시장에 진입하는 수요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부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학생, 직장 근처 전월세를 구하려는 사회 초년생. 이들 모두 새로 전월세를 구해야 한다. 서울 전월세 시장에 수요 감소는 허상이다.
서울에 있는 집을 살 만한 재력이 있다면 별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만한 돈이 있는 청년과 신혼부부가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적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도 어렵다.
정부는 공급을 늘려 수요를 감당하겠다고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전혀 없다. 지난해 3월까지 서울 인허가·착공 물량은 지난해보다도 적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공사원가가 상승하고 있어 극적인 공급 증가도 기대하기 어렵다.
공급이 감소하니 전월세 매물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수급 불균형에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자금이 부족한 수요자는 높아진 임대료에 더해 집값까지 오르며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진다.
현 서울 주택시장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다. 전월세 공급을 늘리고 실수요자가 쉽게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만 외곽까지 매수세가 번지는 현 시장을 고려할 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외곽까지 매수세를 번지게 한 원인 제공자 역시 정부다. 대출 한도를 줄이고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으면서 집값이 저렴한 외곽 주택을 중심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 손댈 때마다 집 없는 서민 고통만 커지는 아이러니다.
정부가 전월세 상승 등 부작용을 또 다른 대책으로 해결하려고 할수록 시장은 더 꼬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창의적인 대안이 아니라, 시장 원리에 대한 인정이다. 끊임없이 내놓은 대책으로 시장을 왜곡시킨 실수를 인정하고 보다 나은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