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클라르와 3,421미터 [조남대의 은퇴일기(99)]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19 14:05  수정 2026.05.19 14:05

양평의 봄은 황금빛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노랗게 가득 채워진 산수유의 물결은 개나리의 가벼움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것은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생명의 끈기이며, 70여 년 전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막아낸 기억을 머금은 찬란한 빛이다.


양평군 개군면 산책로에 핀 노란 산수유 꽃 ⓒ

매년 이맘때면 사람들은 노란 꽃그늘 아래서 봄의 화사함을 탐닉한다. 나 역시 군중 속에 섞여 양평 끝자락 지평의 이웃 마을인 개군의 산책로를 걷는다. 발길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한다. 그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 잔치가 아니었다. 산수유 축제의 흥겨운 소음 사이로 정적처럼 박혀 있는 낯선 이름 하나, '몽클라르'와 '3,421'이라는 숫자가 여운처럼 남아서다. 산책로의 이름은 '몽클라르의 길'이다. 안내판에는 프랑스군을 이끌고 이곳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한 장군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꽃잎이 바람에 날려 안내판 위로 내려앉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밟고 선 이 화창한 봄날의 흙바닥이 누군가의 처절한 겨울의 대가였음을. 노란 꽃잎들은 70여 년 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젊은 영혼들의 헌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산수유꽃 산책로를 따라 만들어진 ‘몽클라르의 길’ 안내문 ⓒ

나는 '권위'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잘 안다. 수필가라는 내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수식어 하나도 때로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몽클라르 장군은 어떠했는가.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던 프랑스 육군의 3성 장군으로 전쟁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어깨에 별이 세 개나 박힌 견장을 내려놓고 스스로 중령의 계급장을 달았다. 이유는 단 하나, 한국전쟁에 참전할 프랑스 대대의 규모가 중령급 지휘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프랑스의 장군이었다는 자부심보다, 최초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라고 한 그의 말은 내 가슴에 예리한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지평리의병,지평리전투 기념관’에 게시된 ‘몽클라르’ 중령에 대한 설명문 ⓒ

장군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간 세 개의 별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지평리의 차가운 밤하늘을 수놓았을 것이고, 이제는 산수유 꽃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몽클라르는 장군의 권위 대신 병사들의 손을 잡는 전장의 책임과 편안한 지휘소 대신 서릿발과 진흙탕이 질척이는 참호를 택했다. 산수유가 화려한 향기 대신 은은한 존재감으로 봄을 알리듯, 장군의 결단은 요란하지 않았으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하다.


황토로 만들어진 ‘몽클라르’ 길과 산수유 꽃 ⓒ

발걸음을 옮겨 3,421미터의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숫자의 의미에 전율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달려온 프랑스 참전용사 3,421명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명의 병사를 떠올리며 명복을 빌어본다. 1951년 2월 13일에서 17일까지의 지평리는 지금의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죽고 죽이는 전쟁 영화 장면처럼 처참했으리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프랑스군을 포함한 유엔군 5,600여 명이 열 배에 이르는 중공군 5만여 명에 포위되어 백병전까지 치르는 사투를 벌였다. 전투는 중공군 참전 이래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거둔 최초로 승리였다. 이후 유엔군은 사기가 충전하여 38 도선을 회복하는 반격의 중요한 기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전쟁의 2대 역전 전투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들은 낯선 동양의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기꺼이 던졌다. 총성이 멎고 포연이 걷힌 자리는 붉은 피로 물든 땅의 통곡으로 질펀하였을 것이다.


지평리 전투 당시 유엔군과 중공군 배치도 ⓒ

이들의 피가 거름이 된 것일까. 산수유의 빛깔이 유독 선명하다. 가을이면 열리는 붉은 산수유 열매는 장군의 어깨에서 떼어낸 별과 병사들이 흘린 선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3,421미터를 걷는 동안 내 시선은 자꾸만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을 붉은 황토로 조성한 당국의 의도는 명확하다. 우리가 누리는 산책의 여유가 누군가가 쉼 없이 버텨냈고 피를 흘렸던 전장 위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지 말라는 경고이자 당부가 아닐까. 장군이 중령으로 강등되기를 자처하며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데올로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자유를 유린당한 타국의 슬픔에 공감하고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달려온 숭고한 이타심이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었을까.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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