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의 한마디가 국가 예산”…농진청의 파격 실험 [농업현장ON③]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5.15 07:30  수정 2026.05.15 07:30

이상호 기획조정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혁신으로”

파편화된 현장 목소리 모아 R&D·시범사업 근거로 활용

백동민 지도사 “농업 혁신 잇는 디지털 고속도로 만들 것”

농촌진흥청에서 농업인의 한마디로 연구개발과 시범사업, 국가 예산 반영으로 이어지는 ‘현장ON’의 파격적인 실험이 시작됐다. 이상호 농촌진흥청 기획조정관은 현장ON을 공급자 중심 기술 보급에서 수요자 중심 혁신으로 전환하는 장치라고로 설명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농촌진흥청이 농업 현장의 의견을 연구개발과 기술보급, 시범사업으로 연결하는 ‘현장ON’을 현장 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키운다. 그동안 개별 부서와 민원 채널을 통해 흩어져 들어오던 농업인 의견을 한곳에 모아 데이터화하고, 이를 연구과제와 현장지원, 제도개선 수요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상호 농촌진흥청 기획조정관은 현장ON을 공급자 중심 기술 보급에서 수요자 중심 혁신으로 전환하는 장치로 봤다. 농업인이 제기한 불편과 요구를 단순 민원으로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년도 연구개발 예산과 신규 시범사업 기획의 근거로 삼는 체계라는 설명이다.


실제 운영은 고객지원담당관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백동민 농촌진흥청 고객지원담당관실 농촌지도사는 현장 의견이 접수되면 5일 이내 시스템에 등록하고, 기술적 타당성과 현장 적용 가능성 검토를 거쳐 정보제공, 현장지원, 연구과제, 현장사업, 제도개선으로 분류한다고 소개했다.


관리자는 현장ON의 정책적 방향을, 실무자는 현장의견이 후속 조치로 이어지는 작동 방식을 짚었다. 공통분모는 확실하다. 농업인의 한마디가 사라지지 않고 농진청 내부 검토와 전문가 판단을 거쳐 연구와 지원, 사업 개선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점이다.


상호 기획조정관은 기존 민원 처리 방식과 달리 현장ON은 농업인의 요구를 ‘농업 혁신의 자산’으로 관리하는 체계라며 수요자 중심 전환의 의미를 강조했다. ⓒ배군득 기자
사라지던 현장 아이디어, 농업 정책 ‘나침반’으로 깨어나다


현장ON이 도입된 배경에는 기존 의견 수렴 방식의 한계가 있었다. 농업 현장의 목소리는 기관장 현장활동, 부서별 업무, 전화상담, 간담회, 민원 채널 등을 통해 들어왔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정책으로 연결하는 속도에는 제약이 있었다.


이상호 기획조정관은 “과거의 농업 현장 의견 수렴은 개별 부서를 통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되거나 정책으로 연결되는 속도가 더디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ON은 이 같은 흐름을 바꾸기 위한 통합관리 체계다. 농업인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와 불편을 빠르게 포착하고, 이를 연구개발과 기술보급 사업에 반영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기획조정관은 이를 농업 현장의 ‘페인 포인트’를 실시간으로 잡아내기 위한 현장 중심 소통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ON을 농진청의 업무 방식 변화와도 연결했다. 농진청이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보급하는 공급자 중심 역할을 넘어, 농업인 등 정책 수요자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이를 정책과 사업에 반영하는 기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이 기획조정관은 “우리 청이 단순히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농업인 등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수요자 중심의 혁신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라고 밝혔다.


현장ON이 기존 민원 처리와 구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민원은 접수와 답변으로 끝나기 쉽지만, 현장ON은 접수된 의견을 데이터로 남기고 분석해 연구와 사업의 기초자료로 삼는다. 농업인이 제기한 요구가 차년도 연구개발 예산 편성이나 신규 시범사업 기획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기획조정관은 “기존에는 민원을 접수하고 답변하는 ‘민원 해결’에 중점이 있었다면, 현장ON은 이를 ‘농업 혁신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적극적 관리 체계”라며 “농업인의 한마디가 국가 농업 정책과 기술 개발의 나침반이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호 기획조정관은 현장ON 성과 관리가 단순 접수 건수가 아니라 현장 애로 해소와 연구과제·정책 개선으로 이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성과 지표의 대전환…‘접수 건수’보다 ‘해결 수준’


현장ON은 올해 시범운영 단계에서 의미 있는 출발을 보였다. 2026년 1분기까지 모두 377건의 현장 의견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269건이 반영됐다. 반영률은 71%다.


이 기획조정관은 숫자 자체보다 현장 의견이 실제 반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그는 “단순 숫자로만 보면 적지만, 4월 20일부터 시작한 시범운영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의견이 활발히 접수되고 실제 반영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는 현장의 갈증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며, 동시에 우리 청 직원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덧붙였다.


성과 관리의 기준도 접수 건수에서 문제 해결 수준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된다. 의견을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는 현장 체감도를 높이기 어렵다. 농업인이 제기한 요구가 실제 현장 애로 해소, 정책 개선, 연구과제 반영으로 이어져야 제도가 안착할 수 있다.


이 기획조정관은 “앞으로는 단순 접수 건수보다도 얼마나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 정책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업인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속도와 연결성이다. 농업인은 기존처럼 익숙한 경로로 의견을 제시하면 된다. 농촌진흥청 내부에서는 현장ON을 통해 관련 부서와 전문가가 함께 의견을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연구와 기술지원, 사업 개선으로 연결한다.


이 기획조정관은 “농업인은 기존처럼 늘 하던 대로 익숙한 경로로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면 되고, 청 내부적으로는 현장ON을 통해 관련 부서와 전문가가 함께 검토하여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는 사례 축적과 확산이다. 현장 애로기술이 전문가 기술지원으로 해결된 사례, 반복 제기된 의견이 신규 연구과제나 시범사업으로 이어진 사례, 제도개선으로 연결된 사례를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


이 기획조정관은 “현장ON을 통해 현장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한 사례, 연구와 사업으로 연계된 사례, 제도개선으로 이어진 사례 등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며 “현장ON이 단순 민원 관리 시스템이 아니라 현장 문제 해결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완·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백동민 농촌지도사는 현장ON에 등록된 의견을 정보제공, 현장지원, 연구과제, 현장사업, 제도개선으로 분류하며 기술적 타당성과 농가 적용 가능성을 함께 검토한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전문가 손 거쳐 맞춤형 솔루션으로 진화


현장 의견은 접수 이후 일정한 절차를 거친다. 현장방문, 간담회, 전화상담 등에서 의견이 나오면 발굴자가 사전검토를 거쳐 5일 이내 현장ON 시스템에 등록한다. 이 단계에서 의견은 담당 부서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다.


백동민 농촌지도사는 “발굴자가 현장의견을 현장방문, 간담회, 전화상담 등 다양한 경로에서 청취·발굴하면 사전검토를 거쳐 5일 이내 현장ON 시스템에 등록한다”고 설명했다.


등록된 의견은 기술수요 담당자의 검토를 받는다. 기술적 타당성, 현장 적용 가능성, 기존 연구성과 활용 가능성 등이 판단 기준이다. 단순 문의나 자료 안내처럼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의견은 정보제공으로 분류된다. 현장방문이나 전문가 기술지원이 필요한 사안은 현장지원으로 이어진다.


반복적으로 제기되거나 기술개발·정책개선 필요성이 높은 의견은 중장기 검토 대상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농업기술 개발이나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경우는 연구과제, 현장 실증이나 보급 확대가 필요한 경우는 현장사업, 제도나 행정 절차 개선이 필요한 경우는 제도개선으로 구분한다.


백 농촌지도사는 “단순 문의나 자료 안내 등으로 해결 가능한 사항은 정보제공으로, 현장방문이나 전문가 기술지원이 필요한 경우는 현장지원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반복적으로 제기되거나 기술개발·정책개선 필요성이 높은 의견은 연구과제, 현장사업, 제도개선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무 검토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실제 현장 문제 해결 가능성이다. 의견이 기술적으로 타당한지, 기존 연구성과를 활용할 수 있는지, 농가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이 과정에는 관련 부서와 전문가가 참여한다.


백 농촌지도사는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현장 의견이 실제 현장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라며 “기술적으로 타당한지, 기존 연구성과를 활용해서 해결 가능한지, 실제 농가에 적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직 전문가인 기술위원도 실무 검토에 힘을 보탠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활용해 대응 방향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백 농촌지도사는 “퇴직 전문가인 기술위원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활용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응 방향을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동민 농촌지도사와 고객지원담당관실 직원들이 '현장ON' 시스템 개선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2027년 연구 시스템과 ‘자동 연계’…정책 속도 높인다


현장ON의 작동 방식은 사례에서 확인된다. 농업인이 제기한 의견은 연구과제, 시범사업, 현장지원으로 각각 맞춤형으로 분류됐다.


딸기 시들음병 문제는 연구과제로 이어졌다. 농업인이 제기한 딸기 시들음병 문제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표현체 데이터를 활용한 비파괴 조기진단 기술 개발로 연결됐다. 백 농촌지도사는 이 과제가 2026년 현안대응과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설하우스 안전 문제는 시범사업 지침 보완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전기화재에 취약한 시설하우스에 스마트 전기화재 감지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접수됐고, 농진청은 2026년 맞춤형 안전관리 실천 시범사업의 지원 가능 품목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지침을 보완했다.


순환식 수경재배 농가의 우려는 현장지원으로 연결됐다. 폐양액을 재사용할 때 생육이 부진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자 맞춤형 기술지원과 설비 점검, 원수 오염도 분석, 급·배액 모니터링이 이뤄졌다. 기술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조치다.


백 농촌지도사는 “순환식 수경재배 농가에서 폐양액 재사용 시 생육 부진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맞춤형 기술지원과 설비 점검, 원수 오염도 분석, 급·배액 모니터링 등으로 현장 애로사항 해결과 기술 조기 안착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다시 돌려주는 작업도 병행된다. 순환식 수경재배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원수 수질, 배액 분석, 설비 작동 여부 등의 문제는 카드뉴스로 제작해 현장에 공유하고 있다. 한 농가의 애로가 다른 농가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자료로 바뀌는 방식이다.


2027년 시스템 고도화의 핵심은 연구개발 체계와의 연계다. 농진청은 연구개발 기능이 큰 기관인 만큼 현장에서 들어오는 의견 중 연구과제와 연결할 수요가 많다. 현재는 연구과제 기획을 위해 농촌진흥사업 종합관리시스템인 ATIS에 기술수요조사를 별도로 등록해야 한다.


백 농촌지도사는 현장ON 고도화를 통해 중복 입력 부담을 줄이고, 연구 필요성이 높은 현장 의견이 연구과제 기획 단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길 기대했다. 현장의견이 연구개발 정보와 맞물리면 실무 처리 속도와 정책 활용도도 높아질 수 있다.


백 농촌지도사는 “현장ON에 등록된 현장의견 중 연구 필요성이 높은 수요는 별도의 중복 입력 없이 연구과제 기획 단계와 자동 연계될 수 있도록 하여, 실무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현장의견이 실제 연구개발로 이어지는 체계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 민원 데이터가 아니라 현장의 수요와 연구개발 정보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되면, 현장의견이 실제 연구개발과 정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ON의 성패는 접수 건수보다 환류의 질에 달려 있다. 농업인의 불편이 연구자의 과제, 지도기관의 기술지원, 시범사업 지침 보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쌓일수록 제도에 대한 현장 체감도도 높아질 수 있다. 농진청은 현장 문제 해결과 연구·사업 연계 사례를 지속 발굴해 농업인과 국민에게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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