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칼부림’ 사건
동료 대원과 갈등에 흉기 휘둘러
고립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빈번한 폭력 사건에 대책 급선무
장보고과학기지 모습. ⓒ극지연구소
남극 장보고 기지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폐쇄적 환경 탓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실상 한 달 가까이 함께 지낸 것으로 드러나 안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해양수산부 산하 극지연구소가 운영하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월동 연구대원 A 씨가 흉기로 다른 대원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지난달 13일 오후 7시 20분께 발생했다. 당시 A 씨가 흉기로 동료 대원을 위협하는 모습을 또 다른 대원들이 목격하고 A 씨를 설득해 다행히 큰 피해는 막았다.
이후 기지는 A 씨를 분리 조치하고 비상 이송을 결정했다. 하지만 남극이 겨울에 접어들면서 기상 악화로 항공기 운항이 불가능했다.
이에 대원들은 A 씨를 연구동과 50m가량 떨어진 비상대피동에서 지내도록 했다.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 현장 책임자 한 명이 A 씨와 함께 지냈다.
A 씨는 사고 발생 한 달 가까이 지난 이달 11일에야 국내로 복귀했다. 현재 경북경찰청에서 A 씨를 대상으로 범행 동기 등을 수사 중이다.
남극기지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한 건 처음이 아니다.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2009년에는 세종과학기지에서 총무 B 씨가 주방장 C 씨를 폭행했다. B 씨는 C 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를 집어던졌다. 도망치는 C 씨를 쫓아가 주먹으로 때렸고, 다시 쓰러진 C 씨를 발로 밟았다.
B 씨는 주변에서 말리던 다른 대원에게 식당 집기를 집어던지고 주먹 등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인 C 씨 주장에 따르면 2년 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C 씨는 다른 대원들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라면서 총무 B 씨가 술에 취해 동료 대원을 폭행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C 씨는 “세종(기지)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었나 보다”라고 했다.
남극기지는 지리적 특성상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다. 좁은 장소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며 각자 담당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이 다치면 병원으로 이송조차 어렵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대장으로 활동했던 유규철 극지연구소 박사는 당시 중앙일보 기고에서 “장보고기지는 3월부터 10월까지 출입이 전면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이 시기에 대원이 말썽을 부리고 대원 간 폭행 사건이라도 발생한다면 대장으로서 상상하기도 싫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A 씨처럼 흉기 난동을 부려도 피해자와 불과 50m 떨어진 공간에 따로 머무르게 하는 게 전부다. 심지어 A 씨를 통제하기 위해 다른 동료 대원이 A 씨와 함께 지내야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이런 문제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남극의 환경적인 특수성인지,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구조적 부분인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그래서 일단 경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원인에 대해 더 파악해서 사고 예방력을 키우는 쪽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사람 사는 곳이니까 갈등이 생기는 건데, 이런 갈등에 관해서도 유형, 단계별로 나눠서 지침을 만들려고 한다”며 “시기적으로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고립감이 심해지는데 대원 간 갈등이 격화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고립·혹한보다 더 힘든 건 ‘동료’와의 갈등 [위태로운 극지 생활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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