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수요 회복에 K배터리, 적자폭 축소와 수주 확대
화재와 중국 LFP 공세에 빼앗긴 K배터리 ESS 주도권
AI 전력망 타고 커지는 ESS…북미·비중국 공급망 기회
삼성SDI의 대한민국 기술대상 수상 제품 'SBB(Samsung Battery Box)'. ⓒ삼성SDI
국내 배터리 3사가 전기차 수요 둔화의 돌파구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다시 키우고 있다. 한때 ESS 시장을 주도했던 K배터리는 북미 생산망 확대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향 수요 대응을 앞세워 중국 업체에 내준 주도권 회복을 노리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ESS 사업은 올해 들어 실적 방어와 북미 생산체계 구축, 국내외 수주 확보라는 성과로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SDI는 3사 중 ESS 성과가 실적에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된 사례다. 삼성SDI의 올해 1분기 배터리 사업 매출은 3조3544억원, 영업손실은 176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력용 ESS와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백업유닛(BBU), 전동공구 등 전방시장 수요가 회복되면서 배터리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5% 늘었고 영업손실은 61.0% 줄었다.
전사 기준으로도 개선세가 나타났다. 삼성SDI의 1분기 매출은 3조57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했고 영업손실은 1556억원으로 64.2% 축소됐다. 당기순이익은 561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ESS와 UPS, BBU 수요가 수익성 방어 역할을 한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생산능력과 매출 비중 확대를 앞세우고 있다. 회사는 올해 1분기 매출 6조5550억원, 영업손실 2078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자체는 적자였지만 ESS는 전략 고객 신규 수주를 바탕으로 전사 매출의 20%대 중반 비중까지 확대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말까지 북미에서 ESS 생산능력 50기가와트시(GWh) 이상을 확보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북미 ESS 생산망을 확대하며 유틸리티급 ESS와 전력망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2월에는 한화큐셀 USA와 2028년부터 2030년까지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5GWh를 공급하는 계약도 맺었다.
SK온은 후발주자지만 국내외 레퍼런스를 빠르게 쌓고 있다. SK온은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에서 전체 물량 565메가와트(MW) 중 284MW를 확보해 50.3%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1차 입찰에서 수주를 따내지 못했던 것과 달리 단숨에 최대 물량을 확보하며 국내 ESS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이번 수주는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포트폴리오로도 의미가 있다. ESS는 대형 전력망 프로젝트 특성상 가격뿐 아니라 운영 이력과 안전성, 공급 안정성이 수주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SK온이 국내 중앙계약시장에서 확보한 실적은 북미 등 해외 시장에서 LFP ESS 공급 역량을 설명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된다.
SK온은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최대 7.2GWh 규모 ESS용 LFP 배터리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회사는 2026년 하반기 ESS 전용 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하고 미국 조지아 전기차 배터리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국내 수주를 기반으로 검증 이력을 쌓고 이를 북미 공급 계약으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국내 위축 틈탄 중국 공세…전기차 쏠림도 주도권 약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 ESS는 낯선 시장이 아니다. 2018년 삼성SDI와 LG화학은 글로벌 리튬이온 ESS 시장에서 각각 43%, 3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두 회사 합산 점유율은 80%에 달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전지 사업부문이던 시기다.
그러나 K배터리의 ESS 주도권은 국내 시장 위축을 계기로 흔들렸다. 2017년 이후 국내에서 ESS 화재가 잇따르며 안전성 논란과 보급 둔화가 나타났고 초기 성장을 이끌던 내수 기반이 약해졌다. 그 사이 CATL과 BYD 등 중국 업체들은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과 장수명, 컨테이너형 ESS 솔루션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급성장하던 전기차용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투자와 생산능력을 집중한 점도 ESS 주도권 약화로 이어졌다. ESS 시장의 경쟁 기준이 고성능 셀 중심에서 가격, 안전성, 수명, 대량 공급력, 시스템 통합 역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국내 업체들의 대응 우선순위는 전기차 배터리에 쏠려 있었다.
AI·북미 수요로 잡은 반전…관건은 원가 경쟁력 확보
하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 같은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예상보다 더디게 늘고 공장 가동률 부담이 커지자 국내 업체들은 기존 생산설비를 활용할 수 있는 새 수요처가 필요해졌다. ESS는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셀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력망,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등으로 수요처가 넓어 생산라인 전환과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와 북미 전력망 투자 확대도 ESS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AI 서버 확대로 전력 수요가 늘면서 ESS는 전력망 안정화와 데이터센터 백업 전원 인프라로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비중국 공급망 수요와 현지 생산 요구가 커지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에 맞춰 북미 현지 생산과 AI 데이터센터향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북미 ESS 생산망과 LFP 공급 계약을 앞세우고 삼성SDI는 UPS와 BBU 등 AI 데이터센터향 전력 솔루션을 강화하는 흐름이다.
다만 ESS는 아직 국내 배터리 3사의 주력 매출원이라기보다 전기차 캐즘을 보완할 성장축에 가깝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ESS 매출 비중이 20%대 중반까지 올라오며 전환 속도가 가장 빠르지만 삼성SDI와 SK온은 각각 실적 방어와 수주 레퍼런스 확보 단계에 있다는 평가다.
시장 확대에도 가격 경쟁력은 과제로 남아 있다. ESS는 전기차 배터리보다 가격 민감도가 높아 중국 업체와의 원가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기 어렵다. ESS 사업이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수주 물량의 매출 인식 확대와 생산라인 전환에 따른 원가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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