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황산 인플레이션’ 먹구름 몰려온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6.05.10 08:08  수정 2026.05.10 08:08

中 당국, 황산 생산업체에 이달부터 수출 중단 지시

중국 내 비료 생산 위한 원료 확보가 표면적인 이유

中 올해 1분기 황산 수출량 전년 동기보다 50% 급감

이란전쟁·中수출중단 겹쳐 공급난 위기로 가격급등


중국의 비료 공장 직원들이 비닐로 쌓아놓은 비료 더미를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글로벌 원자재·비료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대(對)이란전쟁 여파로 '화학공업의 꽃'으로 불리는 황산의 공급난이 가중되고 있는 마당에 세계 최대 황산 수출국인 중국이 5월부터 수출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 내 황산 생산 업체에 수출 물량을 줄이고 이달부터는 아예 수출을 중단하라고 지난달 통보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지난 1일 보도했다. 다만 당국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구체적인 시행 시점도 별도로 공지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후 중동 지역의 황산 수출량이 급감한 데다 세계 황산 수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의 수출 금지에 따른 대체 시장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만큼 글로벌 원자재·비료 시장이 사실상 ‘패닉(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산은 염산·질산과 더불어 3대 강산성을 띠는 물질이다. 물과 모든 비율로 혼합 가능해 다양한 농도의 수용액 형태로 활용된다. 원유·천연가스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원료나, 구리·납·아연·니켈 등 비철금속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를 회수해 만드는 황산은 인산비료 생산과 구리 생산·정유·배터리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핵심 기초 소재 또는 공정용 시약으로 이용된다.


이 덕분에 황산 소비량은 한 국가의 산업화 수준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로 활용될 만큼 중요한 기초 화학 원료로 평가받아 ‘화학산업의 꽃’으로 불린다. 중국은 세계 최대 황산 생산·소비국이다. 황산 생산의 경우 비철금속 자원 기반이 형성된 중국 서남부 지역과 수입 유황 공급이 집중된 화동(華東)·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생산 지역이 분포한다.


2018년 3월 22일 중국 장쑤성 난퉁의 한 항구에서 수입 유황을 쏟아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생산은 윈난퉁예(雲南銅業)와 장시퉁예(江西銅業), 진촨(金川)그룹 등 비철금속 제련기업과 윈난윈톈화(雲南雲天化)·후베이이화(湖北宜化)그룹 등 비료생산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제련 기업은 부산물 형태로 황산을 생산하고 비료 기업은 유황 또는 유황철광석을 직접 가공해 생산한 황산을 안산비료 생산에 활용한다.


중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WIND)에 따르면 2025년 중국 황산 생산량은 전년보다 6.9% 증가한 1억 1081만 6000t 규모에 달한다. 황산 생산은 지역 별로 윈난(雲南)성(1665만 1000t)과 후베이성(河北)성(1232만 7000t)이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인다. 다음은 산둥(山東)성(856만 9000t), 안후이(安徽)성(831만 1000t), 광시좡쭈(廣西壯族)자치구(716만 4000t) 등이다.


지난해 중국의 황산 소비량은 전년보다 4.3%로 증가한 1억 530만t으로 집계됐다고 화징(華經)산업연구원 등이 밝혔다. 중국의 지난해 황산 수출량은 전년보다 73.3% 늘어난 435만t이며 수출액은 2억 9000만 달러(약 4300억원)로 각각 집계됐다. 전 세계 수출의 23%를 차지했다. 대부분 칠레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인도 등지로 수출됐다.


중국의 올해 1분기 황산 수출량은 52만 8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이미 50% 가량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글로벌 원자재 전문가들은 중국의 황산 금수 조치가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5∼12월 황산 333만t을 수출했음을 감안하면 수출 중단 조치가 완전히 시행될 경우 최소 300만t에 달하는 수출량이 증발하는 셈이다.



중국 베이징시 둥청구 둥창안제에 위치한 중국 상무부 청사. ⓒ 신화/연합뉴스

이에 따라 황산 가격은 큰 폭으로 치솟을 전망이다. 대이란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황산공급 부족 현상은 한층 악화할 수밖에 없다. 황산 원료인 원유·가스 주요 생산지가 중동 걸프 국가인 데다 세계 황산 관련 해상 수송량의 절반이 호르무즈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산 원유는 황 함량이 높은 고유황 중질유 비중이 크다. 올해 1월 1000위안(약 21만 3000원)을 밑돌던 t당 황산 현물 가격은 지난달 28일 기준 약 1800위안까지 급등했다. 연초 가격 역시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이른바 ‘황플레이션(황+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황산 공급 차질로 빚어지는 연쇄적으로 파급될 악순환 효과다. 중국의 황산수출 통제가 본격화하면 먼저 비료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료 생산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황산 가격 상승→비료 가격 인상→농업 생산 감소→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막시모 토레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한 에너지 충격이 아니라 전 세계 농식품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이라고 진단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이 황산 수출을 금지한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자국 내 비료 생산을 위한 원료 확보, 즉 ‘식량 안보’다. 황산은 인산염 비료 생산에 필수적인 성분으로 곡물 수확량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원자재 가격이 두 배로 뛰면서 비료 공장들이 가격 인상을 시작했다.


ⓒ 자료: 중국 중상산업연구원(WIND)

중국은 이란 전쟁으로 인해 글로벌 유황 공급이 차질을 빚자 국내 비료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출 할당량을 줄여왔다. 이 때문에 수출 중단 조치는 농사철이 다가오는 가운데 식량 안보가 중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국에는 “식량이 천하를 평안케 한다”(糧安天下)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지도부는 곡물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로써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행정부)은 앞서 올해도 농업·농촌·농민 등 이른바 ‘삼농’(三農) 문제를 1호 문건으로 채택했다. 1호 문건은 해마다 중국 당정이 공동 발표하는 첫 공식 문서로 해당 연도의 최우선 국정 과제를 보여주는 지표다. 2004년 이후 23년 연속 삼농을 1호 문건에 담아왔다.


더욱이 중국은 2024년 6월부터 식량안보보장법을 시행해 식량 자급률 제고와 식량 안보 강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비료 공급이 몇 달씩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러시아가 (세계 주요 밀 생산국인) 우크라이나를 공습한 2022년 곡물값이 급등했을 당시보다 더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올해 1호 문건은 식량안보 확보를 목표로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의 융합을 촉진하고 드론, 로봇 등 첨단 기술의 활용을 강조하는 “농업 농촌 현대화를 확고히 하고 농촌의 전면적 진흥을 추진하는 것에 관한 의견‘이다. 시장 정보 제공업체 아거스 미디어의 사라 말로우 글로벌 에디터는 SCMP에 "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식량 안보이며, 이에 따라 자국 내 비료 산업에 집중해왔다"며 "황산은 인산질 비료 생산에 필수 원료"라고 강조했다.


황산이 자동차 배터리에 사용된다는 점도 중국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전기차·배터리업계로의 피해 확산이 불가피하다. 황산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정에 필수적으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전기차와 배터리의 원가 부담 역시 높일 것으로 보인다. 황산은 도금과 석유 정제 등 거의 모든 제조 산업에 필수적이어서 중국의 움직임이 글로벌 산업계에 미칠 악영향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 자료: 중국 화징산업연구원 등

중국이 국내 배터리 기술과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의 하나라는 관측도 나온다. 황산은 납축전지 제조와 배터리급 니켈 추출(침출 과정)에 필수적이다. 수소금속 가공에 의존하는 구리와 니켈, 은 광산들이 황산 부족으로 작업중단 위기에 처했다. 구리 산화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데 황산은 필수 투입물이다.


황산을 이용한 구리 제련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구리는 스마트폰부터 자동차와 건설 등 제조업 각 분야에 빠지지 않고 쓰이는 소재다. 경기 흐름을 먼저 짚어줘 ‘닥터 코퍼’(구리 박사)로 불릴 정도다. 골드만삭스는 “황산 부족이 전 세계 구리 생산의 약 17%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리 생산 비용이 오르면 전기차·배터리 산업 전반의 원가 부담도 커진다. ‘보이지 않는’ 기초 소재 가격급등이 부른 공급망 위기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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