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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59>] 술과 경제


입력 2022.11.23 14:10 수정 2022.11.23 14:10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59화 술과 경제


“2006년도에 보건복지부에서 ‘비둘기 플랜 2010’을 발표했었는데요. 매년 11월을 ‘음주폐해 예방의 달’로 정하고, 유관기관과 단체 등으로 비둘기포럼을 구성하여 음주문제 개선 및 음주폐해 대국민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절주학교도 운영하고 자율적인 건전음주서약도 유도합니다. 청소년과 여성들을 위해 방과 후 예방프로그램을 보급하고 교육 및 홍보자료를 개발하여 지원합니다. 자가검진도구를 보급하고 알코올 협력병원을 지정하여 문제 있는 음주자의 조기진단 및 조기발견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알코올중독자들을 위해선 전문치료센터와 상담센터도 운영합니다. 2010년까지 알코올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을 위한 국가알코올종합계획의 개요입니다. 또, 2011년에는 ‘비둘기 플랜 2010’을 수정·보완하여 ‘비둘기 플랜 2020’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계획이 국가 차원에서 입안되고 추진된 데 대하여 관계 공무원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제가 조금 과하게 말씀드리자면, 훌륭한 계획이긴 합니다만 보여주기 식의 캠페인에 의존하다 보니 성과 역시 목표치에 크게 밑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입안된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기만 해도 정책효과는 상당할 텐데 조금 의지가 부족한 측면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가령 금주․절주 캠페인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중파 방송의 술 광고에 못 당하거든요. 서유럽 국가처럼 공중파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등 술 광고를 규제하고 캠페인을 전개해야 효과적인데, 한 마디로 정부의 금주․절주 캠페인이 기업의 술 광고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쇼윈도우식 캠페인은 사실 절실함이 없어 보입니다.”


김석규가 단정적인 어투로 비둘기 플랜을 깎아내리자 민정호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김석규는 이즈음에서 민정호의 표정이 어두워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어조를 높였다.


“저는 비둘기 플랜이 진전을 이루고 심화되어서 앞으로 확대 추진되었으면 합니다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러하질 못합니다. 저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경제효과만을 고려하는 경제부처의 힘에 밀린 결과는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과문한 저도 금연정책의 경우 경제부처의 반발에 부딪혀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듣고 있는데 술은 오죽할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술은 담배에 비해 경제적 파급효과가 무척 크죠. 유통 소비단계 스펙트럼이 담배에 비해 훨씬 넓으니까요. 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해서 말씀드리니까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술의 파급효과가 워낙 크다보니까 경제부처에서는 국민의 음주 활성화로 경제 지표를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을 할만도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을 경제부처에서 하고 있다면 우리 보건복지부에서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경제적 관점에서 국민을 바라볼 게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최우선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사실 음주로 인해 고통 받는 국민들이 있다면 그들의 불행을 바탕으로 경제 활성화를 이룬들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여담입니다만 경제도 인간을 최상의 가치에 두어야지 돈에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천민자본주의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백보 양보해서 술을 못 마시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적당히 마시고 과도한 음주를 경계하게 하는 정책, 술 마시기가 지금처럼 쉽지만은 않은 사회, 알코올중독자는 돈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가정이 지옥 되고 풍비박산 나는 건 막아야 합니다. 가정은 우리 인간에게 최초이자 최고의 복지시설입니다.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금주․절주 정책을 펼쳐주시길 진심으로 당부 드립니다.”


김석규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자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뜨거운 박수가 한 동안 장내에 울려 퍼졌다. 김석규는 다시 한 번 청중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민정호의 뒤를 따라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김 선생님께서 우리 복지부의 비둘기 플랜을 좀 더 호의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요. 그렇다고 원망하는 건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민정호가 찻잔을 들다말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투였지 정색하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아마 김석규를 배려하는 차원인 듯 했다.


“저도 처음에 비둘기 플랜을 대하고는 내심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금주․절주 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까요. 물론 제가 주장하는 국가 책임주의까지는 한참 못 미치긴 하지만 그래도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그런 정책으로 보여서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추진한 내용을 살펴보니까 실망스러웠는데요. 그렇다고 비난하려 한 건 아니고요,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심도 있는 계획을 입안하여 추진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김석규 역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김 선생님. 애정을 가지고 우리 부를 대해 주시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까 강연에서 4대강을 언급하실 땐 같은 공직자로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우리 부서에서 추진하고 있는 금연정책은 부처 이기주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거나 담배 광고를 규제하는 것, 그리고 담뱃값을 8천원 이상으로 올리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담배 한 갑에 8천원이나요?”


김석규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모 연구원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까 8천원 이상은 되어야 실질적인 금연 효과가 나오는 거예요. 하지만 재정부에서 금연정책을 완강히 반대하는 군요.”


“그게 혹시 경제적인 면과 연관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담배소비세가 연간 7조원이 들어오니까요.”


“그럼 금주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게 경제활성화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의심도 합리적일 수 있겠군요?”


김석규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민정호를 응시했다. 민정호가 식은 찻잔을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 부서의 금연정책 추진 과정을 복기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금주정책까지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민건강상 금연보다는 금주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정책의 무게중심을 금주에 둘 것이냐 금연에 둘 것이냐는 문제인데요. 현재 우리 부서에서는 금연정책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금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게 쉽지는 않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김 선생님께서 금주정책에 대한 군불을 좀 때주세요. 사실 지금은 금연정책으로 재정부와 씨름하는 것만도 힘에 부치니까요.”


민정호가 자괴감을 토로하며 대답했다. 김석규는 자신의 주장을 계속 늘어놓는 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어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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