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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57>] 모든 길은 술로 통한다


입력 2022.11.16 14:01 수정 2022.11.16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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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모든 길은 술로 통한다

“두주불사, 말술도 마다 않는 사람이 사내대장부 대접 받고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좀생이 취급 받던 시절이었죠. 그러다보니 술주정하거나 사고치는 건 남자가 술 마시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관대하게 넘어갔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엔 가정문제 사회문제로 이어진 거죠”


김석규가 관록 있는 해설가처럼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짹짹이 계속해서 질문을 해나갔다.


“남편이 술 마시면 폭력도 쓰시나요?”


“많이는 아니고 조금 써요. 하지만 사람은 안 때려요, 물건만 부수지. 그나마 값 안 나가는 거만 때려 부수니 내가 견디지만요.”


“남편 분을 사랑하시나 봐요? 고생녀 씨 말투에 그런 게 묻어나오네요.”


김짹짹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사랑은 개뿔. 죽지 못해 사는 거고 헤어지지 못해 사는 거죠. 미운정이라고 할까요.”


“남편께서 술은 얼마나 자주, 얼마만큼 많이 드시나요?”


김석규가 직접 의뢰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1년 365일 중 360일은 술 마셔요. 사흘거리로 고주망태가 되고요. 1년 중 나머지 5일은 술을 안 마시는 게 아니라 아파서 못 마시는 거예요.”


“남편 분은 무슨 일 하시나요?”


“지금은 백수예요.”


“건강은 어떠시죠?”


“건강이 좋을 리 있겠어요? 겁나서 병원에도 못 가요. 얼마 전에 아들이 종합건강검진을 시켜줄라 했는데 죽어도 안 가겠대요.”


“그럼 술 끊거나 줄일 생각은 있으신가요?”


“이 좋은 걸 왜 끊느냐며 도리어 화내요.”


“김 소장님. 의뢰인의 남편 분이 술을 줄이거나 끊을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요?”


이짹짹이 힐끔 시계를 곁눈질하더니 물었다.


“의뢰인의 남편께서 술을 줄일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보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술을 끊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편께서는 이 좋은 술 왜 끊느냐며 역정을 내실 정도로 스스로 금주할 능력은 없으시거든요. 그렇다면 가족들이 설득해서 남편 분을 병원에 보내든지 그게 안 되면 강제 입원이라도 시켜야 합니다. 술은 즐길 때나 음식이지 남용하게 되면 독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알코올중독환우들의 모든 길은 술로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우들은 술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술 없으면 이유를 막론하고 불안감을 가지게 되죠. 그러니까 금주의 전 단계로 먼저, 술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환우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병원에서의 격리치료를 통해 금주를 시키면서 차츰 환우들의 자긍심과 의지를 북돋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금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환우의 의지입니다. 약물요법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방법이에요. 지속적인 치료법은 본인의 금주 의지와 환경입니다. 환경은 가족과 친구들이 만들어 줍니다. 술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또한 금주하고 있는 당신이 자랑스럽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서 환우의 자긍심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금주에 성공했다면 다음 단계로 금주자들의 모임에 가입해서 동병상련을 겪었던 ‘역전의 용사들’과 대화도 하고 소통을 해서 금주의지를 꾸준히 다지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고생녀 씨의 남편 분께 가장 중요한 것은 입원치료입니다.”


김석규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답변하는 걸 지켜보며 이철백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젠 음주문제, 금주문제의 전문가라 해도 누가 시비 걸 일은 없겠다 싶었다. 항상 술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우스갯소리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술집 개그맨으로 알려진 김석규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이철백은 ‘역전의 용사’가 김석규의 변신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했다.


“김 소장님의 말씀 감사드리고요. 사실 알코올중독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입원치료를 시키고 싶어도 병원비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김짹짹이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의뢰인의 남편 같은 경우 무직이기 때문에 병원비만 부담하면 되겠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경제적 부담이 훨씬 가중되겠죠. 그래서 저는 알코올중독환자의 의료비 정도는 국가에서 부담해야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왜냐 하면 환자 개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다했다 여겨지고요. 국가의 책임 부분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의료비 부담으로 상쇄 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국민 개인의 알코올중독에 따른 국가의 책임은 뭔가요?”


이짹짹이 반문했다.


“술에 대한 규제가 워낙 느슨해서 차라리 음주를 권장하거나 조장한다고까지 생각되는데요. 미국의 사례를 한번 들어보면요 술의 판매와 음주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죠. 알코올중독자들도 공원이나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병을 종이봉투에 감춘 채 몰래 마실 정도니까요. 또한 술 판매도 허가를 받은 지정업소 외에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아무리 단골식당이라 해도 술을 마시고 싶을 때에는 손님이 직접 가져가야 해요. 또한 술 판매허가가 있다고 해서 아무 때나 술을 팔지 않아요. 평일 자정 이후나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죠.


그리고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공중파 방송에서 술 광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술 광고가 넘쳐나죠. 유명 연예인들, 특히 젊고 예쁜 여성들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이래도 안 마실래? 하는 식으로 음주 유혹을 해댑니다.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한 게 말이죠.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술을 구매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죠. 또한 술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 심신미약 사유를 들어 감형까지 시켜주니까 이건 뭐 국가에서 음주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 면에서 국가의 책임이 거론되는 건데요.


저는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형식적이고 보여주기 식의 정책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술 마시는 것을 음주문화로 봐줄 게 아니라 음주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봅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음주문화라는 용어는 달리 말하면 음주를 권장하거나 확산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반면 음주문제라고 명명하면 이건 권장할 게 아니라 규제해야 될 것 같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차원에서 성교육처럼 초등학교 정규교육과정에 술 중독과 음주폐해를 넣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알코올중독자의 가정엔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해서라도 환자를 격리치료 시켜야 합니다. 사실 환자가 있는 가정의 경우 가정폭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아시다시피 가정폭력은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고 그건 사회문제로 직결되니까 음주에 관한 국가의 개입은 아주 절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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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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