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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56>] 아침방송


입력 2022.11.11 14:01 수정 2022.11.11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56화 아침방송


인터뷰 기사가 실린 J신문을 챙겨들고 이철백과 한종탁은 눈 덮인 미천(美川) 산골로 김석규를 찾아갔다. 김석규는 기사를 읽어보고 난 후 장영철 기자가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석규가 제기한 의혹을 깡그리 거두절미해버리고 마지막의 질문 하나로 뭉뚱그려 놓았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질문을 제기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생략되어 버려서 다소 뜬금없어 보인다는 느낌도 들었다.


김석규는 인터뷰 당시 장 기자에게 담배소비세는 지방세라서 국가가 금연 정책을 전개하고, 반면 주세는 국세라서 금주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남의 주머니에 들어갈 돈으로 선심성 정책을 펴고 내 주머니에 들어올 돈은 그대로 챙기겠다는 심보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그러자 장 기자는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1% 남짓만 금연사업에 사용되고, 우리나라 금연정책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 거론할 여지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김석규는 국세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1.5% 정도인데 국가에서 세수를 위해 금주 정책을 도외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다시 제기했고, 장 기자는 싱긋이 웃기만 했다. 김석규는 음주 인구로 인해 관련 산업과 서비스업이 활발해지는데 특히 놀라운 점은 음주와 관련 없어 보이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받는 분야가 있다며 그건 바로 의료산업이라고 했다. 김석규는 과문한 탓인지 우리나라 자료를 못 찾고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인용한다며 2006년 한 해 동안 과도한 음주에 따른 의료비로 28조원 이상이 지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음주의 저변 확대와 심화는 우리사회 거의 전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음주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며 김석규가 의혹을 재차 제기했다. 장 기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쓴 웃음을 지었고, 김석규는 그런 의혹까지도 기사화 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고맙다. 니들 덕분에 유명인사가 다 되었구나.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얼굴도 나오고.”


“네가 훌륭한 모델이라서 책이 주목받는 거지, 뭐.”


“훌륭한 모델? 술 많이 마신다고 훌륭하다는 소린 칭찬이냐 욕이냐.”


김석규의 말에 이철백과 한종탁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김석규는 J신문 기사로 말미암아 바쁘게 연말연시를 보내게 되었다. 다른 신문은 물론 라디오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김석규는 술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거절하지 않고 모조리 응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발언했다.


“술을 즐기는 사람에겐 술만큼 좋은 음식이 없으나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사람에겐 마약이나 독약과 다를 바 없습니다. 술과 궁합이 맞으면 음식이 되지만 궁합이 맞지 않으면 몸에 독이 되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술이 내 몸과 마음에 맞는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습니다. 그냥 마십니다. 술이 뭔지도 모르고 마십니다. 그래서 술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은 무척 중요합니다. 특히 어릴 때의 교육은 장차 술을 대하는 마음부터 바로잡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육처럼 정규 교육과정에 술과 음주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소학을 통해서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쳤었습니다.”


“술이란 아주 위험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해치는 건 물론이거니와 가족, 나아가서는 타인의 생명과 행복까지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다툼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요. 헤어진 여성의 집에 술 취한 채 찾아가 그 부모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도 비일비재합니다.”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었을 때 안절부절 못하던 박정희에게 술은 대담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박정희는 술기운으로 과감하게 쿠데타를 밀어붙여 헌정질서를 파괴했습니다. 이처럼 술은 사람을,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미천 산골에도 벚꽃이 활짝 핀 봄이 되었을 무렵 김석규는 금주전도사, 음주상담사, 금주․절주연구소 소장 등으로 일컬어지며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역전의 용사 ‘주경(酒鯨)이라는 못 말리는 알코올중독자에서 금주운동가로 화려한 변신을 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이철백․한종탁의 공저 덕분이었다.


김석규는 아내 박미옥과 상의하여 휴직하고 있던 경찰서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금주 전도사의 길에 들어섰다.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쓰고 라디오에서는 술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담도 해주었다. 애주가 모임이나 단주 클럽 같은 곳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강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TV출연 섭외가 들어왔다. 주부들이 많이 본다는 토크쇼 형식의 아침방송이었다.


김석규가 처음으로 전국방송에 등장하는 날 이철백은 아침밥상을 물리고 방선희와 함께 TV 앞에 앉아있었다. ‘아침 참새’라는 프로그램 로고가 화면 가득 떠오름과 동시에 귀에 익은 이지리스닝 계열의 오프닝 송이 울려 퍼졌다. 이철백은 마치 자신이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것처럼 손에 땀이 배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참말로 세상은 요지경이야. 석규 씨가 저리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자, 그만. 방송 시작한다.”


방선희의 은근한 시샘을 이철백이 대번에 무질렀다. 이철백의 책 출간으로 김석규가 엉뚱하게도 수혜를 받고 유명세를 타게 되자 방선희가 종종 시기하는 투로 말하곤 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침참새 이짹짹, 김짹짹입니다.”


MC 두 명이 차례로 인사하자 출연자와 방청객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남자MC 이짹짹과 여자MC 김짹짹이,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우리 주부님들 ‘아침참새’ 못 지나갑니다. 우리 주부님들의 성원으로 아침참새가 벌써 30년째 방송되고 있네요. 주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고는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하자 100% 주부로 구성된 방청석에서 또 다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수요 상담 코너입니다. 의뢰인은 주당 남편 때문에 결혼생활 30년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50대 주부 고생녀 씨입니다.”


이짹짹의 소개에 이어 카메라는 스크린 뒤 실루엣으로 앉아 있는 여성을 줌인 했고, 화면 아래엔 ‘고생녀(가명, 55세)’라고 자막처리 되어 있었다.


“오늘 상담 전문가로 김석규 소장님을 모셨습니다.”


김짹짹이 소개하자 김석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막 소개는 ‘김석규 음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되어있었다.


“상당히 여유 있어 보이는데. 방송체질인가 봐.”


방선희가 의외라는 듯 놀라워하자 이철백은 ‘원래 개그맨이야. 말빨 좋아, 저 친구.’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김짹짹이 계속 말을 이었다.


“김석규 소장님은 소설 ‘역전의 용사’ 실제 모델이시고요. 본인 스스로 알코올중독, 그로 인한 편집망상까지 겪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금주에 성공한 후 금주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아마 피부에 와 닿는 상담이 될 거라 믿습니다. 그렇죠, 소장님?”


김석규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이번엔 이짹짹이 고생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당 남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죠?”


“어휴, 말도 마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술을 드시든가요?”


“결혼할 때부터요.”


“그런데 결혼을 하셨어요? 술 드시는지 아시면서.”


김짹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그땐 술만 많이 마시는 줄 알았지, 때려 부수고 하는 건 몰랐죠. 그리고 옛날엔 남자가 술 많이 마시는 거 흉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옛날엔 술에 대해서 관대했죠, 소장님?”


이짹짹이 김석규에게 시선을 던졌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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