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58>] 음주·금주문제 전문가


입력 2022.11.18 14:01 수정 2022.11.18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58화 음주·금주문제 전문가


공중파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불현듯 김석규는 명실상부한 음주․금주문제 전문가로 등극하게 되었다. 강의와 원고 요청은 물론이요 공중파 및 케이블 방송의 출연 섭외가 잇달았다. TV뉴스 시간에도 음주와 관련한 사건․사고 시엔 전문가 논평으로 김석규의 짤막한 코멘트가 빠지지 않았다. 김석규는 유명세와 입담에 힘입어 마침내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의 프로그램 하나에 각각 고정출연하게 되었다. J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로 거의 1년 만의 일이었다.


김석규는 방송 출연과 강의 등으로 분주해진 이후엔 미천 시골집을 떠나 가족이 살고 있는 시내의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방송과 강의를 위해 전국을 다니는 일이 워낙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내 박미옥은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하기는커녕 하루하루 행복에 겨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김석규가 금주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기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금주전도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는 유명인이 된 것에 박미옥은 눈물겹도록 고마움을 느꼈다.


김석규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얘기하며 알코올중독자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금주해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반면 가족들에게는 환자를 격리치료 시켜야 한다고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차갑게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음주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금주․절주정책을 추진하여 가정에서부터 술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월에 들어서자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술과 음주에 관한 기사와 프로그램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또다시 연말연시 음주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것이었다. 때맞춰 음주문제 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김석규에게 강의를 요청해 왔다. 김석규가 줄기차게 주창해 온 금주․절주정책에 대한 화답 차원의 강의 요청이었다. 요청자인 보건복지부 민정호 서기관은 직원들의 금주․절주 관련 마인드를 혁신할 수 있는 강의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울러 정부에서 음주와 관련하여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 ‘비둘기 플랜’이라는 국가 차원의 알코올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김석규는 보건복지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기쁨에 앞서 처음 들어보는 ‘비둘기 플랜’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제껏 정부에서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이미 국가 차원에서 알코올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었다니 심히 난감할 따름이었다. 만약 정부를 비판하며 강력하게 내세웠던 주장이 비둘기 플랜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면 김석규는 무지했거나 경솔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정도에서 끝난다면 천만다행한 일이고, 심지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다한들 뭐라고 변명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김석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민정호가 보내온 메일을 열어보았다. 첨부물은 두 개였다. 2006년도에 발표된 『국가알코올종합대책 ‘비둘기 플랜 2010’』은 술 권하는 문화를 건전하게 바꾸어 나가고, 알코올중독의 치료 및 재활, 더 나아가서 예방을 모색하여 2010년까지 알코올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를 위하여 캠페인과 교육, 알코올 상담센터 및 전문치료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2011년에는 ‘비둘기 플랜 2010’을 수정·보완하여 ‘비둘기 플랜 2020’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비둘기 플랜은 김석규의 기대치에 다소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계획은 마련되어 있는 셈이었다.


“부처이기주의라고 있습니다. 흔히 소속 부처만 생각하고 다른 부처는 배려하지 않는 편협한 자세를 일컫는 말인데요. 저는 이걸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정책적인 면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4대강 사업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국토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환경부에서는 당연히 환경을 위해 자연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반대를 합니다. 이게 정상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환경부에서는 부처 정체성을 망각하고 4대강을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해 버렸어요.


부처 간에는 기본적으로 협조적인 관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배려할 건 배려하고 도와줄 건 도와주어야죠. 하지만 부처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봉착하면 절대 호의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철저하게 긴장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의의가 없어지고 존재의의가 없는 부처에서 일으키는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정부와 국회가 긴장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존재 의의를 망각하고 적당히 야합이나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귀에 거슬릴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은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경청했다. 김석규는 반응은 물론 미동조차 없는 청중들을 대하며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듯 당황스러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노트를 곁눈질해가며 강의를 계속해 나갔다.


“제가 부처이기주의를 언급하는 건 우리 복지부에서는 제발 정책적인 면에서만큼은 다른 부처에 배려나 협조를 하지 말고 부처이기주의 소리를 듣더라도 정체성을 가져주십사 부탁을 드리기 위해섭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팩트에 근거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제 나름의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점 감안해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한해 주세 세입은 대략 3조원, 주당들이 쓰는 술값은 21조원쯤 됩니다. 그리고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건데요. 과도한 음주로 인하여 2006년도에 지출한 의료비가 28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조 1천억이라고 하는데, 술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주류회사에서부터 도매상, 소매상, 노래방, 음식점, 약국, 병원 등 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그래서 경제 활성화를 생각한다면 금주정책은 상상도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과도한 음주로 인해 파괴되는 개인과 그 가족 공동체, 즉 가정을 생각한다면 금주정책은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는 과제입니다. 과도한 음주로 국민 건강과 가정이 위협받는다면 그 많은 복지정책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가정 하나 지킬 수 없는 복지정책이 대체 무슨 소용 있나요. 단란한 가정이 사실 최고의 복지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결코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복지부에서만큼은 결코 경제효과를 따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석규는 단상 아래 한쪽의 사회자석에 앉아있는 민정호를 일별하며 강의를 이었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