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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장애예술인②] 장애·비장애 넘어선 ‘무장애’…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의 의미


입력 2022.05.11 11:25 수정 2022.05.11 17:28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장애' 프레임 강조하지 않은 수작

"'농인 배우'라는 꼬리표...배우 그 자체로 인정받길"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 등의 예술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장애예술인들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차별 문제를 꼬집으면서도, 가장 깊은 곳에선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다고 하소연한다. ‘장애’ ‘비장애’가 아닌 ‘무장애’라는 타이틀을 붙인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다.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무대 사진 ⓒ세종문화회관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무대 사진 ⓒ세종문화회관

지난달 19일과 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은 농인 배우 7명과 청인 배우 6명이 한 배역을 두고 2인 1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최근 농인들을 위한 수어통역사를 무대 한쪽에 배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연극은 농인과 청인이 동일한 조건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대부분 농인들이 어떠한 작품에 출연할 경우 맡는 역할을 대부분 농인 역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 작품엔 ‘농인’ 역할 자체가 없다. 그저 농인의 언어인 ‘수어’와 청인의 언어인 ‘한국어’(음성)이 섞여 자신들이 맡은 인물을 연기한다. 그렇다고 작품이 장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장애라는 프레임 자체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박경식 연출은 “상당히 많은 고정관념과 싸우고 부딪혀야 했다. 연출을 하는 저부터도 ‘이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과 싸우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품을 창작하려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 순간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농인과 청인이 함께 무대를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농인, 청인 배우들만의 새로운 수신호를 만들어 무대에 등장하고 움직여야 한다. 이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배로 걸리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박경식 연출의 말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소통의 장벽이 이들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배우 이혜진은 “공연을 하면서 언제 무대로 나가면 되는지 타이밍을 알아야 하는데, 무대 앞에서 어떤 대사가 나오고 있는지 무대 뒤에서는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어서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다”면서 “마침 저의 서브배우가 무대 뒤에서 눈 맞춤으로 알려준 덕분에 타이밍을 맞춰 무대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순간 든든함을 느꼈고, 여운이 남는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호흡으로 완성된 이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겼다. 1장 ‘주인 없음’은 외모부터 다른 두 나라, ‘묶은 머리 나라’와 ‘풀은 머리 나라’가 하나의 땅을 두고 권력과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전쟁하는 비극을 표현한다. 2장 ‘달빛 도망’에서는 괴한의 침입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던 타인의 희생을 방관하고 도망치려는 마을 사람들과 타인의 희생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는 청년의 균열을 그린다.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무대 사진 ⓒ핸드스피크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 무대 사진 ⓒ핸드스피크

두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하다. 인간의 이기심과 소통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그 균열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경식 연출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서로를 죽고 죽이며 도망간다.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부터 시작 됐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피해자의 모습 역시 인간 사회의 아이러니를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인간이 모인 사회 속에서 상항과 무관하게 생겨나는 권력과 지배 본능은 동시대에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부조리가 우리를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고 본인을 위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무지한 상태가 되며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며 “어디서 생겨 난지도 모른 채 분노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도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두 자녀와 함께 동행한 김경희(여·45) 씨는 “지인이 이 공연에 출연해 초대를 받았는데, 내용을 찾아보니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아이들 역시 ‘농인 배우’ ‘청인 배우’를 나누지 않고, 작품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도 이런 평만큼 뿌듯한 순간도 없다. 배우 김우경은 “작품을 하다 보면 ‘농인 배우’라는 꼬리표가 늘 붙는 것 같다. 농인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 김우경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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