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개발국 시절 '스포츠로 국위선양' 목적성 희석
국민은 물론 선수 스스로도 병역특례 목적 이해 못해
병역특례는 일종의 국민정서법…정서 바뀌었으니 폐지해야
ⓒ 박승수 SNS
"메달, 트로피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저희가 보상 받는 거는 군 면제(병역특례)라는 보상이 있으니까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트로피나 메달에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축구대표팀에 속한 양민혁 선수가 밝힌 소감입니다.
또 다른 축구대표팀 선수인 박승수는 결승전 직후 라커룸에서 '전역모'를 착용한 사진을 자기 SNS에 업로드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 나선 경기를 '군 면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양민혁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군 면제 만을 목적으로 뛰었고, 그 목적을 이뤄냈다고 기뻐하는 이들을 보는 대다수 국민의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이렇습니다.
"아, 이제 이 친구들에게 병역특례를 주면 안 되겠구나."
사실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특례는 일종의 국민정서법입니다. 모든 국민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면제해 주려면 의무를 이행한 이들의 정서적 공감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엔 그랬습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획득하는 메달 개수가 곧 국가 위상의 업그레이드이자 국민적 자부심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한 빈국으로 불리던 시절, 심지어 국가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던 시절엔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세계 1위의 자리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일이 곧 국위선양이자 애국이었습니다.
대규모 국제 경기 때마다 온 국민은 우리 대표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브라운관TV로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고, 좋은 성적을 내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큰일을 해내는 훌륭한 선수들을 군대에 3년씩 묶어 놓을 필요가 없다는 데 대부분 동의했습니다. 운동선수들에 대한 병역특례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돼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그렇게 없을까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K-팝이 울려 퍼지고 한국 제품이 흘러넘칩니다.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한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를 받아 가기 위해 줄을 서 있고, 지정학적 위기에 둘러싸인 국가들은 한국산 무기를 빨리 공급해 달라며 아우성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방탄소년단(BTS)이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들보다 국위선양에 더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찬성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운동선수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혜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야구 대표팀의 경우 매회 주요 경쟁국들이 아시안게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을 제외한 아마추어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군미필 프로 선수들로 구성해 손쉽게 금메달을 따냅니다. 대표팀 구성 단계에서부터 마치 병역면제 TO를 배분이라도 하듯 팀별 주력 군미필 선수들을 대표팀에 밀어 넣고 당연하다는 듯 '군필'로 세탁합니다.
5연패에 성공한 야구대표팀. ⓒ 연합뉴스
'군 면제만 보고 뛰었다'는 축구대표팀 선수의 말은 국제대회 병역특례를 바라보는 운동선수들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대변합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자긍심도, 국가를 대표해 국제무대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는 책임감도, 심지어 승부 자체에 열정을 다하는 스포츠맨십도 이들에겐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20대 초반 청년들의 철없는 실수'였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오히려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진중함이 없기에 진심이 드러난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군 면제는 생각지도 않았다, 오직 금메달을 획득해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는 잘 포장된 말이 오히려 진실성을 의심케 만듭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본인 커리어의 일정 기간을 희생하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운동선수 뿐 아니라 연예인, 심지어 일반 직장인이나 학생에게도 경력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현역 복무 기간도 1년6개월로 과거 3년에서 2년 몇 개월씩 복무하던 때에 비하면 경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습니다. 더구나 운동선수들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경력과 기량 공백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감수하는 희생에서 '열외'를 인정하려면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운동선수 병역특례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국민적 정서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심지어 본인들도 왜 특혜를 받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이런 제도가 존치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국민정서법'은 국민의 정서에 변화가 생긴다면 폐지하는 게 맞습니다.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에게도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를 살피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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