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후보군 재제청 vs 추천위 재구성…갈림길 선 조희대
재제청 절차 법적 공백…대법관 인선 갈등 장기화 불가피
대통령 임명권·대법원장 제청권 충돌…초유의 반려 후폭풍
법조계 "기존 후보 재제청시 靑요구 따라 제청권 제한 논란"
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를 사실상 반려하면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절차로 후보자를 재제청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중 다른 인물을 재제청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현행 법에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재제청 절차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난 28일 손 후보자에 대해서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손 후보자의 제청이 "절차적 완결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청와대와 사전 조율이 이뤄진 김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청와대와 여권은 기존 추천위가 이미 추천한 후보군을 존중해야 한다며 손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가운데 1명을 재제청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법원 안팎에서는 재제청을 위해서는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후보 추천 절차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법원조직법이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정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제청이 이뤄지는 경우 새로운 추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군 가운데 다른 후보를 선택한다면 별도의 추천 절차 없이 비교적 신속하게 대통령에게 재제청할 수 있다. 반대로 추천위를 새로 구성할 경우 위원회 구성과 후보자 천거·심사, 후보 추천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해 인선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재제청 후보가 정해지면 공은 다시 청와대로 넘어간다.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면 대통령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순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재제청 이후에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견이 다시 엇갈릴 경우다. 현행 법에는 재제청된 후보자까지 청와대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후속 절차 역시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이 요구하는 대로 기존 후보군에서만 재제청하도록 하는 방식이 굳어질 경우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특정 후보자의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다른 후보자의 제청을 요구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에게는 임명권을, 대법원장에게는 제청권을 각각 부여한 구조다. 재제청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단순한 인선 문제를 넘어 헌법상 두 권한이 실제 인선 과정에서 어디까지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재제청 절차와 관련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31일 조 대법원장이 부친상을 당한 까닭에 일정은 당초 예정보다 연기될 전망이다.
익명을 전제로 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안은 단순히 후보자 한 명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할 헌법적·법률적 장치가 충분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자 중 한 명을 재제청할 경우 신속한 인선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제청권이 사실상 제한됐다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로 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면 제청권의 독립성을 강조할 수 있지만 대법관 공백을 장기화하고 인선 지연의 책임을 대법원에 돌리는 정치적 공방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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